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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Nov 23. 2023

HY 한국야쿠르트 배달매니저 일

9개월 동안의 배달 매니저 일 체험 후기


아이도 커 가고 나도 일이란 게 하고 싶던 차였다. 돈도 벌어야 겠단 생각을 하고 있던 차다. 그렇게 10년 만에 들어가 본 잡코리아, 알바몬, 알바천국, 시 채용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 나이가 이제 한창 나이가 아니라 경단녀에 나이 마흔 중반인 사회적 루저가 돼 있다는 걸 알았다. 10년 만에 써 보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소도 참 어색했다. 뭐라고 써야 되는지도 까 먹는 듯 했다. 

제대로, 오래, 더 멋지게 복귀할 수는 없나 싶었는데 그건 꿈이었다는 걸도 깨달았다. 나이 마흔 중반의 학력이 그리 화려하지 만은 않은 애 엄마에게 채용 정보 란의 현실은 겨울이었다. 냉정한 바닥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뭐라도 도전해 보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쩌다 눈에 띈 한국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채용 정보에 뜬 담당자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만나자고 하셨다. 그렇게 10년 만에 첫 면접을 보게 됐다.


한국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일은 전동 냉장고를 타고 다니며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만 일 할 수 있어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과 애 엄마들이 많이들 한다고 하셨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일할 수도 있어 시간 제약이 크게 없다고 하셨다.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만 일해도 된다고 하셨다. 물론, 개인 자영업자로 신고가 되는 배달 일이라 4대 보험은 되지 않았다. 


나는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일단 일주일 동안 교육을 받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교육을 받고 나면 교육비가 입금 된다. 삼십 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 된다. 교육은 배달 일에 대한 기본적인 것과 내가 배달을 담당할 구역의 위치와 지리, 그리고 배달 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핸드폰 크기의 업무 포스기를 익히는 일이었다. 또한 전동 냉장고 운전을 익히는 일이었다.


평소에 운전을 하고 다녀서 그런지 전동 냉장고 운전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전동 냉장고가 속도가 빨라지면 그 위에 서 있는데 좀 겁이 났다. 안정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고 덜컹거리는 그 느낌이 불안했다. 

더구나 내가 배달할 구역이 내가 사는 곳에서 내 자가용을 끌고 15에서 20분 움직여아 하는 곳이었다. 어린 아들이 학교에 있을 동안, 내 구역의 배달만 하기로 한 나는 결국 지점장님과 의논해 내 차를 몰고 배달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 교육을 그렇게 마치고, 배달 구역의 인수 인계를 기본적으로 마친 뒤 본격적으로 배달 매니저 일을 시작 했다. 내가 배달하는 구역에는 그 동네의 번화가인 식당, 슈퍼, 댄스 학원, 병원, 학습지 학원 등과 아파트 단지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일단 배달할 곳의 주소와 동과 호수 그리고 주소 표를 받았다. 그 표에는 각 배달할 곳의 물품 개수도 적혀 있었다. 그대로 배달을 하려면 핸드폰 크기의 업무 포스기로 적어도 일주인 전에 내가 야쿠르트 몇 개, 우유 몇 개, 기능성 음료 몇 개를 받아서 챙겨 놔야 하는지를 입력해 놔야 한다. 

매일 새벽에 본사에서 지점의 배달 매니저들이 입력한 제품의 통합 개수 대로 지점에 제품들을 배달해 준다. 그러면 지점에서는 지점 안 사무실에 있는 대형 냉장고 안에 제품을 넣어 둔다. 매달 매니저들은 그 전 날 자기가 다음 날에 배달한 제품들을 갯수 대로 담아서 노란색으로 된 세로 30~40cm, 가로 60~70cm, 높이 50~60cm 정도의 제품 가방에 담아서 냉장고에 꼭 넣어 둔다. 아니면 각자 타고 다니는 전동 냉장고 안에 챙겨서 넣어 두고 전동 냉장고가 충전 되도록 콘셉트를 꽂아 놓고 퇴근 한다. 제품의 신선도를 위해서도 꼭 사무실 안 대형 냉정고에 넣어 놓고 가거나 타고 다니는 전동 냉장고 전원을 켜 놓고 퇴근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제품을 가져간 만큼 사무실 제품 표에 꼭 정확하게 표시를 해줘야 한다. 안그러면 사무실에는 비는 제품 갯수를 찾느라 고생을 한다.


배달 유니폼과 배달 유니폼 모자, 제품을 넣어 고객들의 배달 가방에 넣어 주는 비닐 봉지, 빨대, 떠 먹는 야쿠르트 용 수저 등은 사무실에서 다 지원을 해 준다. 배달 유니폼도 계절별로 지원해 준다. 겨울 패딩 잠바까지 유니폼으로 다 똑같이 지원해 준다. 

제품을 넣어 타고 다니는 전동 냉장고도 지원해 준다. 그 전동 냉장고 하나 만드는데 구 백만원에서 천만원이 든단다. 그래서 전동 냉장고를 타고 다니다 망가지거나 사고가 나면 수리비 부담을 줄는 명목으로 매달 받는 수수료에서 전동 냉장고 보험료 5만원 씩을 떼어 간다. 원래 10만원인데 회사에서 5만원, 배달 매니저가 5만원씩 반반 부담이라고 한다. 그 전동 냉장고 이름도 참 귀엽다. 이름이 '코코'다. 부르기도 쉬운 어감이다. 

한국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들의 평균 나이는 60세에서 70세였다. 나보다 어린 애 엄마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동생 딱 한 명이었다. 그리고 처음 알았다. 제품을 담아 두는, 노란색으로 된 세로 30~40cm, 가로 60~70cm, 높이 50~60cm 정도의 제품 가방이 제품을 채우면 꽤 무거웠다. 나는 처음에 낑낑 거리며 겨우 끌다시피해 들어 옮겼다. 물론, 제품이 든 그 노란색 비닐 가방을 싣는 수레도 사무실에 비취돼 있다. 그래도 내 차 트렁크에 실으려면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댜 하는데 허리가 아팠다. 손목도 살짝 부담이 됐다. 그런데 나이 칠 십이신 사무실 여사님은 나보다 더 무리 없이 번쩍 드셨다. 허리 안 아프시냐고 물었더니 하도 들어 버릇해 이력이 나셨단다.



첫 날은 지점장님이 따라 다니셨다. 아무리 인수인계를 받았다 해도 배달 매니저 일도 처음인 초보에다가 집에서 차를 몰고 15분에서 20분 안팎인 거리에 있는 동네의 지리가 낯설 수 밖에 없었다.


새벽 6시 30분에 자명종 울림에 깨서 간단하게 아들의 아침밥과 남편과 나의 간단 아침식을 챙겨 먹고, 남편의 출근을 배웅했다. 설거지를 하고,아들의 등교 복을 챙겨주고, 청소기를 후딱 돌리고, 빨래를 다 집어 넣어 놓은 세탁기를 돌려 놓고, 나도 간단하게 기본만으로 화장을 한다. 그리고 아들을 오전 9시까지 등교 시키고 나는 바로 지점으로 차를 몰았다.


지점에 도착을 하면 일단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다. 전 날에 배달 리스트 목록에 있는 대로 챙겨 놓은 제품 가방 2개도 차에 싣는다. 야쿠르트, 우유, 키즈 야채 음료, 기능성 야채 음료, 기능성 건강 음료 등 만 배달하는 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와 연계돼 있는 프레딧 제품도 배달 매니저들이 배송한다. 그래서 그날 그날 내가 맡은 담당 구역에 프레딧 제품 배달 목록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제품을 꼼꼼히 못 챙겨 가면 다시 지점 사무실로 와 챙겨 가야 번거로움도 생긴다. 


그렇게 챙겨 놓고 나면 내가 일하는 담당 구역으로 바로 차를 몰고 간다. 대문에 걸려 있는 고객들의 배달 가방에 제품을 떨어뜨리지 않게, 한 번에 꺼내기 쉽게 제품을 챙겨 넣을 비닐봉지도 사무실에서 챙겨 간다. 

배달 제품이 신선도가 유지돼야 하는 음료이고, 야쿠르트 같은 건 뚜껑이 손가락으로 잘못 누르면 터질 수도 있다. 먹는 음료를 배달하는 거라 위생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배달할 때 쓰는 손장갑도 나누어 준다. 날이 추워지면 핫팩도 지급 된다.


내가 배달하는 구역은 대형 아파트 단지 두 군데와 두 동짜리 아파트 한 단지와 그 주변의 빌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형 동네 슈퍼, 대형 문구점, 식당들, 개인 병원들이 있었다. 

배달 표를 보며 일단 첫 날은 담당 구역의 지리를 익혀야 했다. 차를 어디에 주차하고 배달을 돌려야 할지도 둘러 봐야 했다. 요즘 주차 문제가 어느 동네나 쉽지 만은 않다. 길거리에 잘못 주차 했다가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빌라나 아파트에도 차단기가 있는 곳도 많고, 차단기가 없어도 잘못 세우면 거주자들의 항의 전화가 걸려 온다.


나는 주차를 어디다 하고 배달을 해야 할지 첫 날은 낯선 동네 지리에 조금 헤맬 뻔 했다. 첫 날은 지점장님이 따라 다니며 대충 알려는 주셨다. 하지만 결국 내가 동선을 잘 짜야 했다. 일주일 동안은 주차를 어디다 하고 어떤 순서로 제품 배달을 해야 하는지 배달표 동선을 다시 짰다. 

일단 그 동네에서 제일 넓은 평수에 제일 비싸고, 그 아파트 고객들이 제일 까다롭다고 지점장님이 걱정하신 단지부터 돌려야 했다.

나는 지역 소장님과 지점장님 과의 면접 때 아이가 학교 가 있는 사이 3시간에서 4시간만배달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일을 해도 된다고 해서 해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지점장님께서 그 아파트 단지는 그 동네에서 제일 비싸고 넓은 평수에 제일 까다로운 고객들이 사는 단지라 새벽에 안 하면 배달 취소하는  고객들 많을 거라고 걱정을 하셨다. 그 단지 만이라도 새벽에 해 주면 안되냐고 하셨다.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면접 때부터 내 상황,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혔고, 그래도 해도 된다면 교육 받고 도전해 보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었다. 그런데 뽑을 때는 그래도 된다고 하더니 뽑아 놓고 은근슬쩍 사무실 입장 대로  요구 사항을 바꾸시는데 나는 냉정하게 거절을 했다. 남편이 집안 일과 아이 케어에 신경 안쓰게 해 달라는 성향이라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까지 다 말하고 교육을 받았다고 재차 말씀 드렸다. 회사 입장도 어느 정도 고려하며 일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내가 맞출 수 없는 상황을 맞춰 가며 무리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고객들에게는 배달 매니저가 바뀌어 오전 9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제품이 배달 되게 되었다고 사무실에서 메모지를 프린팅 해 주셨다. 첫 날과 둘째 날 제품 넣을 때 제품과 함께 그 메모지들을 고객들 배달 가방에 넣어 드렸다. 다행히 배달 매니저가 바뀌었다고 제품 배달을 중지하시는 단지의 고객은 2명 밖에 없었다.


나중에 고객에게 들었지만 중간에 지점장님이 직접 배달을 하신 적도 있는데 그때는 더 늦게 배달을 해 줬단다.


일주일 동안 효율적으로 주차 동선을 짜고, 배달 순서를 다시 짜느라 조금 우왕좌왕 한데다 아직 제품 명이 다 익숙지 않아 제품 한 두 개를 잘못 배달하기도 했다. 

더구나 한국야쿠르트라는 회사 명이야 어릴 때부터 익숙한 기업 명이지만, 한국야쿠르트 제품을 다 먹어 보지는 않은 나였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배달 매니저들이 맛을 알아야 한다고 하나씩 먹어 보라고 무료로 제공을 해 준다. 나는 신입이라 사무실 여사님이 맛을 봐야 하니 먹어 보라고, 본사에서 고객들에게 홍보용이나 서비스 용으로 돌리라고 따로 무료로 제공해 주는 음료들을 하나씩 주시기도 했다.


야쿠르트와 요쿠르트의 차이도 처음 알았다. 야쿠르트는 한국야쿠르트 제품인 거고, 요쿠르트는 서울우유 제품인 차이란다. 그러니까 기업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이름으로 차별화 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알던 한국야쿠르트 기업의 제품들이 일하면서 여러가지 먹어도 보고 남편과 아들 때문에 내가 구입해 집에 가져 오기도 했지만, 제품들은 정말 좋은 제품들이 많다. 오래도록 한 분야의 제품들을 개발하고 인기를 유지해 온 게 그냥 허당이 아니었다. 남편이 한국야크루트 간 케어 음료를 마셔 보더니 여태 숙취 약품도 먹어 보고 했지만 제일 괜찮은 거 같다고도 했다.


어쨌든 처음 하는 노동일에 운동은 됐다. 허리가 좀 아프고 처음엔 손목도 조금 시큰거리긴 했다. 사무실 여사님이 너는 여유 없이 왜 그리 뛰어 다니느냐고 웃으셨다. 나는 일을 해도 아들 케어에 집안 일을 독박으로 다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아들 학교 하교 시간에 픽업 하러 가려면 바쁠 수 밖에 없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여유가 없긴 했다. 


사무실 여사님이 꼭 어머니처럼 챙겨 주시긴 했다. "처음하는 일이라 힘들지?"라는 말도 건네 주셨었다.


배달 매니저라는 건 서비스직 일이라 고객들에게 일단 웃고, 친절히 배달을 해야 하는 제품 영업이기도 했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나 빌라들은 대문에 걸린 배달 가방에 넣어 주고 오는 거라 크게 부딪힐 일은 없었다. 식당이나 개인 병원이나 마트는 무조건 크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방송일 하면서 배운게 일단 무조건 인사 잘 하고 보자였다.

그런데 결제 대금을 받아야 하는 월말에 겪은 건  내가 무슨 빚 받으러 다니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전에 배달하시던 배달 매니저 여사님이 한 달 치를 못 받은 대금이 있으셨다. 그런데다 나도 고객님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연초에 내 담당 구역의 제품 배달비를 단 일 원이라도 채워 넣지 못하면 그 지점의 수수료가 제때 입금 되지 않는다. 나 하나 때문에 다른 배달 매니저들까지 수수료를 늦게 받는 거다. 그래서 월 말에 내 구역의 고객님들의 한 달 치 제품 대금을 다 받아서 정확하게 입금을 해 줘야 한다. 한 달 치 고객들의 대금을 그 지점의 열 명이 넘는 배달 매니저들이 단 일 원 한 푼이라도 정확하게 회사 통장에 입금을 안 하면 본사에서 제품 지원도 못 받게 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나는 아무리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겨도 연락이 안되는 고객님 댁을 찾아 가야 했다. 집에 찾아가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으셨다. 그렇게 그 고객님 댁의 제품 배달 대금이 두 달 반이나 밀렸었다. 계속 연락이 안돼 나는 내 돈으로 일단 그 제품 배달비를 채워서 회사 통장에 입금을 해 주고 두 달 반 동안 끊임없이 연락을 하고 찾아 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화원 일을 하시던 어르신이 큰 수술을 받으셔서 병원에 계셨단다. 세 달 만에야 아드님께서 두 달 반 치 대금을 한꺼번에 입금을 해 주셨다.


다른 한 젋은 남자 고객은 제품을 끊고 나서 한 달 치 대금 결제를 입금을 안하고 전화도 안 받아서 오전에 배달을 하며 집에 찾아 갔었다. 전화를 두 세 번 걸었더니 아예 핸드폰도 꺼 놨었다. 

처음엔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부스럭 대는 소리는 들리는 듯 해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을 조심스레 주먹으로 두드리기도 했다. 그랬더니 대문도 열어 주지 않고 안에서 누구냐고 묻기에 대금 받으러 왔다니까 "입금 할게요,"라고 외치는데 옆에서 쌍 ㅅ 욕을 하는 젊은 여자 목소리가 났다. "집까지 찾아 오고 난리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그러고 나서 입금은 해 주었다.


어떤 주부는 대금 결제를 매달 한 달 치식 밀려서 해 주곤 했다. 어떤 어르신은 대금 결제 때가 다가오면 먼저 전화가 오신다. 가게에 돈 맡겨 놨으니 찾아 가라고 말이다. 어떤 어르신은 대금 결제 영수증을 전송하는 날 항상 초인종을 누르고 바로 받아 가라고 하시기도 한다.


그렇게 받은 한 달치 대금의 25%가 내 수수료로 입금이 된다. 한달에 고객들의 대금을 3백 만원을 회사 통장에 입금하면 나는 그 3백 만원의 25%인 75만원을 버는 거다. 한 달에 내가 이백 만원 넘게 벌으려면 고객들에게 제품을 천 만원 어치는 팔아야만 나한테 떨어지는 수수료 수입이 이백 만원이 넘게 된다. 


평소 걷는 거 빼고는 운동을 잘 안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배달을 하다 보니 저절로 운동이 안될 수가 없었다.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느낌이었다. 

 

오전에 정신없이 남편과 아들 챙기고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서 아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걸 운전석에서 지켜 보고 바로 지점 사무실로 간다. 유니폼을 갈아 입고 사무실 안의 대형 냉장고로 들어가 전날 챙겨 놓은 제품 가방을 챙긴다. 제품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나면 바쁘게 일이 시작한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주차를 하려면 아파트 관리소에서 한 달 치 주차 허락 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운전석 앞에 그 주차 용지를 밖으로 잘 보이게 붙여 놔야 한다. 그래야만 경비 아저씨들께서 아파트용 주차 금지 스티커를 차에 붙이지 않으신다.

원래는 냉장 전동차인 '코코'를 끌고 다녀야 하는데 가끔 지점마다 담당 구역이 집에서 거리가 좀 있고, 일하는 시간이 짧은 배달 매니저들이 자기 차를 끌고 배달을 다니는 적도 있다고는 하시며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냉장 전동차인 '코코'를 몰아보는 경험이 재미있긴 했다. 신기하기도 했다. 평소에 동네에서 한국야쿠르트 배달하시는 여사님들이 왜 이런 큰 전동차를 몰고 다니나 했더니, 그 전동차에 냉장고가 달려 있는 건 줄은 처음 알았다. 한 마디로 냉장고를 끌고 다니는 거였다.

타 보니 신기하고 처음엔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덜컹거리고 속도라 빨라지면 저는 좀 안정감이 덜 느껴져서 겁이 나긴 했다. 차 운전할 때와는 달랐다. 제품들의 신선도를 유지하며 끌고 다니기에는 참 좋은 아이디어인 듯 했다. 그 냉장 전동기 한 대 만드는데 8백만원엣 천만원이 든다는 것도 처음 알고 참 비싼 전동기구나 했다.

어찌 보면 기업에서 고객들에게 제품을 신선하게 배달하기 위해 참 큰 돈 들여가며 이런 냉장 전동기까지 만들고, 기업의 신용을 지키려는 노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게 대기업이니까 이렇게 큰 돈 들여 저런 것도 계발하고 만드는 게 가능하구나 싶어 부럽기도 했다.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싶었다.물론,

그 냉장 전동차는 기업 홍보용이기도 하다. 한국야쿠르트에만 있는 마스코트이기 때문이다. 그 냉장 전동차가 지나가면 한국야쿠르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거다.


여름에는 특히 그 냉장 전동기가 엄청 쓸모 있어 보인다. 그냥 더위도 아니고 이제 폭염이라 유제품에 음료인 제품들의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은 시대니 말이다.


배달 매니저 일은 솔직히 날씨와 상관 없이 일을 해야 한다.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고, 바람이 불어도,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습한 날에도, 다행히 적당한 햇빛과 온도로 날이 좋은 날에도 일을 해야 한다. 날씨의 영향을 받으며 그 날씨의 영향 속에서도 냉장 전동차에 올라타 제품을 실어 날라야 하는게 애로사항이다.


나처럼 자차로 배달하는 배달 매니저도 아주 가끔 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시는 매니저 님들도 계신다. 오토바이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게 아니라 사비로 구입하는 거란다. 사비로 구입해 오토바이 뒤에 수레를 달아서 그 수레에 제품을 가득 싣고 배달을 다니신다.

리고 배달을 안 하는 시간에는 그 냉장 전동기를 거리 한 쪽에 세워 놓고 유동 판매를 하신다. 유동 판매란 건 어찌 보면 길거리 가판 판매와 다를 바는 없다. 불법도 아니다.

사람들이 유동성이 좋은 전철 역 앞이나 번화가 거리에서 냉장 전동기 '코코'를 세워 놓고 유동 판매를 하면 지나다니다 야쿠르트나 우유, 기능성 음료나 야채 음료, 키즈 음료를 사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수입으로 더해져 배달 매니저의 수수료로 연결 된다.


나는 내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에 3시간에서 4시간만 배달 일을 했기 때문에 유동 판매는 한 번도 해 보질 못했다. 9개월 동안 일하면서 느낀 건 그 유동 판매를 해야 판매 수익을 늘릴 수 있고, 수수료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일할 때 지점에서 얘기 듣기론 전국에서 1등하는 배달 매니저 님이 한 달에 7백 만원을 버신단다. 한국야쿠르트에서 한 달에 수수료 7백 만원을 벌려면 적어도 3천 만원 어치 넘게 제품을 팔았다는 거다.


면접 볼 때는 영업이 아니라고 했는데, 한국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일은 배달 반과 영업 반이다. 한국 야쿠르트의 제품을 판매를 많이 해야만 수수료가 높아지고, 영업이란 건 자기가 죽어라 뛰고 시간을 들인 만큼 수수료를 얻어 가는 일이다. 그저 정해진 월급에 정해진 일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배달만 잘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더구나 매달 각 도마다 매출 순 별로 지점의 순위를 매긴다. 지점장들 입장에서는 본사에 이익을 계속 올려 주고 지점 관리를 잘 해야 한다. 한국 야쿠르트는 지점도 외부에 주지 않는단다. 한국 야쿠르트 계역 본사에서 임원까지 한 직원들이 퇴사할 때 지점 하나씩을 맡겨서 더 일을 할 수 있게 한단다. 그래서 지점 관리를 너무 못하고 지점 매출을 높이지 못하면 지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단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에, 유럽 전쟁 사태에, 치솟는 물가과 세금에 다들 수입만 달라지는 게 없고 생활비 지출을 줄이는 시대다. 매출을 올리는 것도 노력만으로는 안 될 수도 있는 시대다. 물론 해 봐서 안 되는 일도 없긴 하다.

내가 일해 보니 지점장 자리도 배달 매니저 일도 다 쉬운 게 아니다. 한 지점에 배달 매니저만 해도 이십 명 가까이 되거나 이십 명이 넘거나 한다. 본사와 소통을 하고, 본사의 눈치를 보고, 몇이십 명 가까이거나 이 십 명이 넘는 나이가 지긋한 아줌마들을 관리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을 잘 해야 한다.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다 얼굴 생김새, 취향, 성격, 성향, 특기가 다 다르듯 고객도 정말 다양한 고객이 많다. 요즘 자동이체로 많이들 하는데 굳이 자동이체를 거부하고 꼭 집으로 와 결제를 받아 가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솔직히 배달 매니저들은 비대면으로 자동이체를 받는 게 편하다. 핸드폰 이체나 모바일이 불편하고 익숙지 않으신 어르신들 입장을 이해는 한다. 매니저들 입장에서는 판매도 해야 하고, 제품 홍보도 해야 하고, 집으로 찾아 가 대금을 받는 것보다는 시간 절약도 할 수 있고, 일적으로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객이 원하는 걸 거부할 수도 없다. 권유는 해 볼 수 있으나, 강요할 수도 없다. 배달 매니저는 고객이 원하는 걸, 불편하지 않게 해결을 해 줘야 매출도 올릴 수 있고 수수료도 챙겨갈 수 있다. 새벽 배달을 안 하면 싫어하는 고개들도 꽤 있다. 아이가 유치원 등원 전에 우유를 먹여야 하는데 나처럼 아이가 학교 가 있는 사이에 오전 9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배달을 하는 경우에는 결국 새벽 배달할 매니저 구한다더니 또 오전 배달이라며 싫어할 수 밖에 없다. 결국엔 제품 배달을 점점 끊는 경우가 생긴다.

배달 매니저로서는 매출도 줄고, 수수료도 줄어 든다.  


처음 배달 시작하는 신입들은 지점에서 지원을 해 주기도 한다. 수입이 그래도 어느 정도 있어야 일도 힘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지원이다.

그렇다고 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회사에서는 배달 매니저들의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더 주기 위해서라며 카드사와 협약 계약을 체결하고 카드 발송 업무까지 플러스 했다. 하지만 영업과 홍보를 겸한, 날씨랑 상관 없이 해야 하는 배달로 돈을 버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건 경험 했다.


특히나 영업에는 취약한 나에게는 점점 수입을 줄고, 몸이 고되면서도 별별 고객들을 겪어야 하는 노동의 경험이었다.


특히나 영업에는 취약한 나에게는 점점 수입을 줄고, 몸이 고되면서도 별별 고객들을 겪어야 하는 노동의 경험이었다.


그 노동의 경험은 9개월 만에 끝나기는 했다. 

솔직히 6개월 만에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지점장님이 새로 배달 매니저를 뽑을 때까지는 일을 해 줘야 한다고 하셨다. 대체할 매니저가 없다고 하셔서 3개월을 기다렸다.

힘들기도 했지만 점심이 되면 여사님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 온 반찬들, 그리고 사무실 여사님이 끓인 찌개나 국과 함께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매일 집에 혼자 있으면서 아침 밥 차리고 남은 국에 반찬 한 두 개만 놓고 적막한 게 싫어 TV드라마를 틀어 놓고 밥을 먹곤 했다. 여사님들과 둘러 앉아 먹는 밥이 소박하면서도 따스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다. 사무실 여사님이나 여사님들의 챙김이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9년 동안 항상 집에 늦게 들어 오고, 쉬는 날에도 아들이나 와이프랑 같이 소소하게 공원 나들이조차 할 줄 모르는 남편 덕에 외롭기도 했나 보다.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쇼핑하는 걸 즐기는 남편 덕분에 나는 항상 혼자였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로는 항상 아들과 둘 뿐이었다. 아들도 이제 엄마랑 둘이 다니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아빠는 집에만 들어오면 된다는 말에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웃펐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9년 만에 사람 사는 것처럼 밥을 먹었다. 일은 점점 힘들었다. 수입도 점점 줄어, 내가 제품 홍보나 영업에 영 소질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3개월을 기다려도 새 매니저 대체해 주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그만 두면 안된다고 하시는데, 나는 미리 퇴사 의사를 밝혔고 3개월을 기다려 드렸고, 내가 힘들면 그만 둘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9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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