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로움을 서로가 알지 못한다.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거 같다.
비가 내렸다. 하필이면 이런 날 날씨도 짓궂은 게 사람의 인생인가 싶어 두 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한 손에 들려 있는 낡고 큰 가죽 가방 위로 빗물이 튀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물보다 경필의 얼굴로 날아드는 담배 연기가 거슬렸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변을 살피는 척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래도 바로 앞에 정차해 놓은 열린 차창으로 뿜어지는 담배 연기는 경팔의 얼굴 쪽으로 날아 왔다.
“원래 돈 없이 살아서 너는 모르지? 돈 때문에 어린 아들 눈에 눈물 나게 하고, 어린 아들 뱃속에서 배고프다고 난린데 먹을 건 없고, 그래서 부모라고 찾아갔는데 뭐랬는지 아니?”
진유는 반밖에 안 피운 담배꽁초를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예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두 팔을 열린 차창 위에 올려놓고 턱을 괬다.
“연락이 끊기던, 애 데리고 노숙을 하던 네 알아서 살라 하더라. 그렇게 가정적이던 사람들이 돈 때문에, 욕심 때문에 그 나이에 딸과 손자를 버리더라.”
진유는 그때가 너무 씁쓸하고 아팠던 듯 썩소를 지었다. 진유의 입술이 제대로 틀어지고 일그러지는 그 순간의 표정을 경필은 놓치지 않았다.
경팔은 진유의 말에 자택을 올려다봤다. 대단해 보이는 부자는 아니어도 빚 하나 없이 산다는 진유 부모의 집은 여유 있어 보였다. 40년 넘게 산 자택이라고 들었는데, 관리를 잘한 거 같다. 색이 조금 바래 보이는 곳은 있어도 40년 넘은 낡은 저택의 느낌은 아니었다. 관리를 잘했다는 건 관리할 돈은 있다는 거다.
“털 수 있지?”
경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CCTV도 그닥 신경 쓰는 집은 아닌 거 같다.
“근데 궁금해서요. 지금 돈 많잖아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예요?”
진유는 큰 소리로 웃었다. 너무 웃긴다는 듯 경필의 말에 뭔가가 터져 버린 듯 큰 소리로 웃었다. 경필은 심플하고 세련된 명품을 빼 입고 이제는 자신도 고고한 척 비싼 차 안에 앉아 있는 진유의 모습이 처음으로 히스테릭하게 느껴졌다. 한 손으로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진유의 모습이 마치, 미친 여자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웃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나도 궁금해서. 딸이랑 손자가 굶주림과 힘듦 속에 버티고 버티느라 고달픈 싸움을 하고 있는데 외면한 그들의 모습이. 그들은 굶주림과 힘듦 속에 놓였을 때 어떤 모습일지.”
경필은 처음 보는 진유의 표정과 손짓과 몸짓들이 낯설었다. 10년 전, 경필과 공사 현장에서 마주쳤을 때 진유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설계도를 손에 들고 다니며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될 현장 일까지 꼼꼼히 점검했다. 인정받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서라고 했다. 굶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두 눈이 촉촉해질라치면 입술을 꽉 깨물고 참는 거 같았다. 울지 않기 위해서 온몸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경필과 밤늦게까지 현장에 남아 마무리를 끝내면, 그 현장에서 조명만 켜 놓고 경필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곤 했던 털털함도 있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 한 봉지에 입안으로 털어 넣는 소주의 쓴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오만상을 찌그리고 “아우, 써.” 하면서도 입안에 털어 넣었었다.
“왜 다시 연애 안 해요? 누나는 동안에다 외모도 어디 가서 나쁘다는 소리 안들을 테고, 돈 많은 남자라도 만나면 아들이랑 생활이 좀 편해질 텐데.”
한번은 경필이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진유가 그랬다.
“나는 있지, TV에서 실화들 재연해 주는 프로그램들 보면서 그런 생각 했다. 한 번 겪었으면 지겹지도 않나? 왜 또 그 상처 속으로 기어들어가 또 그 일을 겪으며 저렇게 힘들어하지? 한 번 힘들었으면 된 거 아닌가? 이기적이고 뻔뻔한 남자 때문에 상처 받은 실수를 왜 반복할까? 남자 없이도 사는데.”
그때 옆에서 쳐다본 진유의 두 눈빛은 외로움 같은 건 어딘가에 묻어 버린 그저 고독함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어깨를 빌려 주기보다는 당신은 꼭 잘 될거라는 말 한마디가 더 절실해 보였었다.
경필이 처음 봤던 진유는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 진유의 두 눈빛에는 서늘함이 서려 있다. 사느라 외로움 같은 건 저 가슴 깊숙이 파묻어 버렸던, 그 깊숙함에서 그 외로움을 꺼내기 싫어 차가워져 버린 서늘함 같은 게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너무 견디었던 걸까. 손 내밀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던 그 혹독했던 버팀의 시간을 지나 배부름이 채워지고 나니 또다시 외면당했던 사랑으로 인정받고 싶은 절망이 뛰쳐나오는 걸까.
경필은 안다. 그 눈빛을 어머니에게서 본 적이 있어서 안다. 중학생이던 그 나이에 경필은 이미 어머니에게서 그 눈빛을 봤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에 갑자기 집에서 사라져 버린 엄마였다. 편지 한 장 없이 사라져 버린 엄마에게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기에, 경필과 여동생은 아빠의 말을 믿었었다. 엄마는 집은 나갔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돼서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아빠도 떠나겠다는 엄마를 길바닥에 버리고 왔다고 했다. 엄마는 더 돈 많은 사람을 따라갔다고 했다. 비싸고 좋은 차 앞에서 가족이 싫어졌다고 말하는 엄마를 길바닥에 버리고 왔다고 했다.
아빠도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빠는 아끼고 아끼며 안 쓰려고 하는 사람이었지 절대 가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말과 달리 엄마의 모습은 굶주려 보였다. 우연히 학교 옆 벽에 몸을 숨기고 경필을 몰래 훔쳐보러 온 엄마의 행색은 초라했다. 엄마는 경필과 눈이 마주치자 쫓기는 사람처럼 도망을 갔다. 그때 경필과 마주친 엄마의 두 눈빛은 이를 꽉 깨물고 뭔가를 버티고, 버텨내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경필이 중학생이 됐을 때 유유히 비싸 보이는 차를 몰고 나타난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지금의 진유 모습이 그때의 엄마 모습과 유사하다.
경필이 대학생으로서 방학 때 공사장에서 알바를 하게 된 것도 변해버린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모든 걸 빼앗아 갔다. 그런데 지금 진유가 11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던 부모님의 모든 걸 빼앗아 보고 싶어 한다.
경필은 거실을 둘러봤다. 깔끔하게 필요한 것만 딱 놓여 있다. 불필요한 것을, 무너가를 쌓아 놓는 것을 싫어하는 거 같다.
“주스 한 잔 들어요.”
경필은 돌아봤다. 나이 팔십에 작은 키,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근육이 섞인 조금은 통통한 체격이었다. 닮았다. 진유와 다른 듯 닮았다. 얼굴은 건강한 듯 그래도 나름 윤기가 도는 피부였지만, 두 눈은 살짝 텅 비어 있다.
방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와 소파에 앉는 진유의 아버지는 짧고 많지 않은 머리숱을 하얗게 놔두었다. 소파에 앉아 리모컨부터 집어 드는 그를 보고 진유의 어머니는 그를 보자 혼자 궁시렁 거리며 한숨부터 쉬었다.
“으그, 오늘은 왜 나가지도 않아?”
그의 두 눈빛에도 뭔가 공허한 게 텅 비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 큰 가방을 한 개씩 든 인부 두 명이 들어 왔다. 나는 어머니인 그녀가 준 주스를 마시며 손짓으로 안방을 가리켰다.
“드레스 룸부터 봐주세요. 그쪽의 옷을 옮겨 놓고 해야는지 그대로 해야는지.”
인부 둘은 당연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와 그녀를 힐끔힐끔 살피듯 쳐다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경필은 주스 컵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경필이 주스를 마시는 동안 식탁 앞에 서서 경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녀였다.
“잘 마셨습니다. 감사해요. 저는 다용도실부터 살펴보려는데 괜찮겠죠?”
그녀는 미소를 짓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경필이 마신 주스 컵을 설거지통에 넣어 놓고 식탁 구석에 있는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가 보고 있는 TV 화면 쪽을 힐끔 쳐다보며 돋보기를 썼다. 한 손을 귀를 살짝 매만지며 TV 화면 속에 나오는 배우들의 입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본 거 같았다. 거실에 적당히 울려 퍼지는 TV 소리가 그녀에게는 잘 안 들리는 눈치였다.
경필은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다용도실의 바깥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개인 저택에 작은 정원이 딸린 곳이라 옆집과도 조금의 거리가 있다. 맞은편 집은 이쪽으로 창문이 없었다.
다용도실의 반대편 창은 안방과 연결돼 있다. 경칠은 안방과 연결된 창을 열려고 했으나 안쪽에서 잠겨 있다. 부엌 쪽을 잠시 살피고 안방과 연결된 창을 살짝 두드렸다. 안에서 잠겨 있던 창문이 열리고 인부의 얼굴이 나타났다. 인부는 눈짓으로 다 돼 간다는 듯 경필에게 신호를 보냈다. 경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안방과 연결된 창을 닫았다.
경필은 다용도실을 나가 다용도실 문을 닫았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그가 안 보이게 등을 돌리고 식탁에 앉아 있다. 특별히 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앉아 있다. 돋보기를 안 쓰면 잘 보이지도 않고, 적당한 볼륨의 TV 소리도 잘 안 들리는 거 같다. 그런 그녀가 식탁에 그냥 앉아 있다. 식탁 위에 놓인 과일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지도 초점이 확실치 않다.
경필은 거실을 둘러보며 그를 곁눈질로 살폈다.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굳이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거 없이 TV 화면에 뭔가를 의지하고 있는 거 같다. 경필은 그와 그녀의 두 눈빛에서 텅 빈 그 무엇이 무엇일까 싶었다.
경필은 찬찬히 훑어 보고 그녀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그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거렸다. 경필은 일부러 점점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방을 하나 없애고 싶어 하시는데, 집에 드나드는 사람은 없나요?”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경필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명절에는 자녀분들 오지 않으세요?”
그녀가 가만히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는데, TV를 보고 있던 그가 끼어들며 리모컨을 들고 TV를 껐다.
“에휴, 저 사람 때문에 집에 아무도 안 와요. 그냥 없애요.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 풀리는 성격이에요. 없애달라는 대로 없애줘요.”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 쪽으로는 일부러 고개를 돌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꼭 닫았다.
인부들이 안방에서 큰 가방 하나만 가지고 나와서 들고 나갔다. 경필에게 신호를 주듯 눈짓을 살짝 던져 주고 나갔다.
“드레스 룸은 수정해 드렸어요. 다른 건 일정대로 며칠 있다 와서 해 드릴 거예요.”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경필은 허리 숙여 인사를 해 보이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잘 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을 꼭 닫았다.
경필은 현관에 신발을 신고 서서 가만히 집 안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조용했다. 사람의 숨소리도 너무나 경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그가 들어가 닫은 방문과 그녀가 들어가 닫은 방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 조용하고 고요한 집 안에서 왜 그리 서로 문을 꼭꼭 닫고 있을까. 어차피 같은 거실 안에 있어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로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가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서로가 같은 곳에 있다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너무나도 꼭꼭 닫혀 있다. 집 안의 공기가 묵묵하게 떠돌고 있다.
경필은 두 손으로 현관문을 조용히 부여잡고 소리 안 나게 열었다. 숨은 쉬고 있지만 뭔가가 죽어 있는 듯 너무 조용하고 고요한 집 안을 쳐다보며 소리 안 나게 현관문을 닫았다.
경필은 정원을 걸어 나오며 진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났어?”
"응.“
”목소리가 왜 그래?“
진유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경필의 목소리가 걸리는가 보다. 경필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게 흔한 일은 아니긴 했다.
”누나는 안 외로워?“
진유는 대답이 없었다. 경필은 자택 현관문을 소리 안 나게 열었다 닫으면서 다시 자택을 올려다봤다.
”그게 중요해?“
”외로워 보여서. 외로워서 그런 거 같아서.“
”누가?“
”누나 부모님들, 외로워서 오늘 자신들이 털린 것도 한동안 모를 거야. 숨을 쉬고 걸어 다니며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 그들의 공간에 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들여다봐 주고, 쳐다봐 주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더라. 그런데, 서로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아. 서로가 서로에게 꼭꼭 닫고 서로의 두 눈을 채우고 있는 뭔가가 하나도 없더라.“
진유는 듣고만 있다. 경필이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동안 진유는 숨소리도 참고 있는 듯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궁금해지더라. 누나는 진짜 안 외로운 건지?“
진유는 말하지 않았다. 경필에게 긴 틈을 허락하듯 말을 끊지도, 말 중간에 숨소리 하나 참견하지 않더니 전화를 끊어 버렸다.
머릿 속에 있는 것들을 빨리 쏟아 내지 않으면 시간이 없을 듯, 나는 쫓기듯 미친 듯이 단편을 써 내려 가고 있다. 내게 남은 기운을 붙잡을 수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