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발령! 그런데 지방 생활의 장점은 무엇일까?
먼저 글을 쓰기 전에 난 지방(서울/경기 이외의 지역)에 대한 편견은 전혀 없음을 밝힌다. 비록 나도 태어난 곳은 서울이었으나 유소년기의 대부분은 지방에서 보냈고 상당히 만족하는 편이다. 은퇴 후에도 굳이 복잡한 서울에서 있기보다는 지방 광역시 정도에서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서울(경기)에 아무래도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 거주하다 보니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5천1백만 명 정도이고, 서울&경기 지역에 약 2천만이 훌쩍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확률적으로 신입사원은 서울 출신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성공적으로 초반에 서울에 있는 본사 내근직으로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영업을 하는 동안 한 번쯤은 언제든 지방에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그럼 지방생활은 모두에게 괴롭고 힘든 시기만 되는 걸까? 장점은 진정 아무것도 없는 걸까? 물론 연고지에서 멀어지면 여러모로 불편하고 외롭다. 하지만 지방 발령받았다고 회사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주어진 상황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직장인이고 영업사원이다. 이 정도에서 포기한다면 앞으로 제약영업에서 버틸 수 없음이 자명하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건, 제약회사뿐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1. 저렴한 생활비
지방은 일단 생활비가 저렴하다. 그리고 생활비 중 가장 큰 지출은 주거비이다.
서울에서 원룸 전세 얻을 돈이면, 지방에서는 투룸을 얻을 수 있고, 조금 더하면 작은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기에 지방에 집을 사는 건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전세나 월세를 추천한다. 나 홀로 자취를 해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퇴근 후 돌아갈 집이 어떻냐에 따라 삶의 질이 매우 달라진다. 코딱지만 한 방에 살림살이 잔뜩 쌓아놓고 발 디딜 곳 없는 곳에 들어갈 때의 느낌과 널찍하고 깨끗한 곳은 느낌이 다르다.
사실 이건 나의 경험이다. 처음 서울에서 3천만 원의 돈으로 얻었던 원룸은 공장지대에 있었고, 창문을 열면 옆집 벽이 손에 닿았다. 즉 통풍이 거의 안 되는 곳이었다. 또한, 보일러실 바로 옆이었는데, 겨울에는 난방을 켜지 않아도 매우 따뜻해서 좋았으나, 동시에 여름에는 퇴근 후 문을 열면 거짓말 안 하고 사우나실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들어감과 동시에 얼굴에서 땀이 주룩 흐르는..
지방에 갔을 때 비슷한 돈으로 방 2개에 거실이 있는 작은 10평대 후반의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집은 좀 허름했지만 책장하나 제대로 놓기 힘들었던 서울 원룸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저렴한 관리비는 덤이다. 서울 원룸에서는 주차비도 월 5만 원씩 냈는데, 지방은 주차할 곳이 넘쳐났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 외에도 식대비, 하다못해 병원 주차비도 더 싸다. 조금만 공부를 해보면, 지방에서 저축할 수 있는 돈이 훨씬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새로운 지역에 대한 경험
서울 촌놈이라는 말도 있듯이, 서울에서 나서 자라고 서울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중심이 서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만이 모든 것은 아니다. 왜 연휴가 오면 그렇게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겠는가.
그나마 관광지인 부산, 강릉, 여수 등을 제외하고, 안동이나, 문경, 진주, 밀양, 목포, 완도, 거제 등에 가본 적이 있는가? 서울에서 평생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 중 과연 동쪽, 남쪽 끝자락에 있는 작은 도시들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애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도 아닌데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대한 로망으로 수백만 원씩 쓰면서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한 달을 제주도에서 보내면 아무리 적어도 최소 500만 원 이상은 쉽게 든다. 조금 괜찮은 곳에서 거주하고 식사를 하고 여행까지 곁들이면 1000만 원은 우습다. 한 번 검색을 해보시라, 얼마나 요즘 물가가 비싼지를!.
그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치와 맛집과 사람들을 만나보자. 제2의 고향처럼 평생 남을 추억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나중에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옛날 생각에 지도도 없이 놀러 가서 맛집을 찾아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여기가 라테는 말이야 내가 담당했던 곳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난 나중에 연고지로 돌아온 후에, 가족과 함께 과거 10여 년 전에 담당했던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가 갑자기 장염이 생긴 어머님을 당시에 담당하던 병원으로 모시고 갔고, 날 알아보신 선생님의 반가움과 어머님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이미 가정을 이뤘다면, 가족과 떨어져 가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지방은 되도록 싱글일 때, 멋모를 신입사원 때 가는 것이 좋다. 관리자도 사람인지라 한 번 지방에 갔다 오면 웬만하면 다시 보내지 않는다.
3.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연고지에 있으면 만날 사람도 많고, 당연히 돈 쓸 일도 많다. 그런데 연고가 없는 지방에 가면 아무것도 할 게 없다. 특히 지방 외진 곳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너무 남으면 심심하기 때문에 영어 학원이나 평소에 배우고 싶던 것들도 배우고, 재테크 공부도 하게 된다. 물론 지역에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그러다 눌러앉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지만 연고지에 비할바는 아니다.
지방에 왔다고 좌절하지만 말고 한 2-3년만 바짝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일, 영어공부, 재테크, 운동에 올인해보자.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나도 지방에서 퇴근 후 너무나도 무료했기에 영어학원도 다녔고, 책도 많이 읽었으며, 헬스도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때 더 열심히 이것저것 시도해보지 못했을까 라는 후회가 남을 지경이다. 재미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나의 마음가짐의 문제다. 쓸데없이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센티해지거나, 내가 여기서 왜 이력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혼술과 함께 풀지 말자. 어떻게 아냐고? 내가 맨날 그랬으니까!
4. 불필요한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지방 사무소는 주로 광역시에 위치하고 있다. 대전/대구/인천/부산/광주 등. 매니저들이 코칭을 위해 내 지역구에 정기적으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매니저들도 사람인지라 가야 할 곳이 지방 저 멀리 구석에 있으면 자주 오는 게 귀찮다. 끝나고 사무실, 집까지 돌아가려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영업부 지점장(매니저)들은 한 달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코칭 콜의 숫자가 있다. 그리고 이 코칭 콜은 특정인에게 몇 번 하라는 기준은 거의 없고, 그냥 한 달에 몇 번만 하면 된다.
아무래도 사무실에서의 내근이 영업사원보다는 많으니 일하다가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어 나가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연하게도 사무실 근처에 있는 지역으로 갈 확률이 높다.
나도 마찬가지로 불필요하게 사무실을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내 할 일만 제대로 하면 시간도 훨씬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내부 고객에 대한 접대 빈도도 적으니 금상첨화다. 내가 신입사원 때는 지역구가 사무실에서 차로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먼 지역에 있다 보니, 매니저가 분기에 1번 오면 다행이고 어떨 때는 1년에 1~2번 겨우 올 때도 있었다. 비즈니스만 잘하면 신나는 자유의 세상이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의 직장생활에서 신입사원 때 2-3년의 지방 발령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도 얘기해주고 싶다. 가끔 제대모(제약회사에 대한 모든 것) 커뮤니티를 보면 지방 발령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막막하고 회사를 그만둘까 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지만, 막상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도 나름 추억으로 남고, 또 지방생활로부터 얻는 장점들도 많았기에 이왕 가는 거 즐겨보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이렇게 난생처음 즐거운 지방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