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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Jan 02. 2024

'겨울나그네' 슈베르트의 체형과 예술성

무한 재능이 폄하된 청년! 병마와 고독에 맞서던 천재! 그는 찬 바람 불던 11월에 삶을 달리했다. 나이는 불과 31세였다. 겨울 문턱에서 영원한 나그네가 된 그는 오스트리아 음악가 슈베르트(1797~1828년)다. 훗날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그는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다음 해에 숨졌다.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고단한 삶의 마침표를 찍은 그의 인생이 담긴 듯 애잔하다.  겨울 나그네에는 어두움과 사색의 선율이 흐른다. 세상에서 외면된 나그네의 길 잃은 모습이 보인다.  


내용은 그의 독백일 수도 있다. 실연의 아픔, 인정받지 못하는 재능에 대한 절망을 노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겨울 나그네는 눈 덮인 들판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는 모습이다. 추운 겨울, 연인과 이별한 청년은 눈 덮인 황량한 벌판을 헤맨다. 절망과 고통 속에 죽음의 상념이 스며든다. 그는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제안한다.


가곡 겨울 나그네의 제목은 ‘Die Winterreise’다. 직역하면 ‘겨울 여행’이다. 그런데 의역인 겨울 나그네가 감정에 더 와닿는다. 나그네든, 여행이든 키워드는 겨울이다. 겨울은 추움과 배고픔의 상징이다. 추운 겨울은 을씨년스럽다. 먹거리 마저 없다면 그 아픔은 더욱 뼈저릴 수밖에 없다. 가난한 슈베르트는 밤늦게 떨이 음식을 사 먹었다. 그렇기에 겨울은 인정받지 못하고, 그래서 돈 못 버는 예술가 슈베르트 자신과 일치한다.


겨울 나그네에 대한 느낌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스산한 바람 속에서 삶의 진지함을 생각할 수도 있고, 갈 길 잃은 청춘의 아픔에 눈물 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절망의 끝은 희망이기도 하다. 깊은 골짜기에서 보면 다시 올라갈 산이 보인다. 가슴 시린 겨울이 끝나면 마음 따뜻한 봄이 온다. 슈베르트가 조금 더 살았다면 겨울의 아픔을 이겨낸 봄의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을까.


슈베르트는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의 초상화는 멋진 예술가로 표현됐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북부 유럽인은 기골이 장대하다. 반면에 그는 155센티 정도의 작은 키였다. 머리카락은 고수 물결이었고, 코는 들창코에 가까웠다. 눈썹이 진하고, 눈은 부드러웠으나 지독한 난시였다. 잠자리에서도 안경을 쓸 정도였다.  


별명은 뚱보다. 이는 몸이 통통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먹지 못해 삐쩍 말랐다는 설도 있다. 작고 통통한 몸이든, 작고 마른 몸이든 긍정 이미지 형성에는 불리한 요소다. 성격도 내향적이고 예민한 편이었다. 이 같은 외모와 성격 탓인지 그는 여성에게서 인기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가난 때문에 첫사랑 테레제도, 그녀의 부모 반대로 맺어지지 못했다.  


그의 희망은 음악가였다. 하지만 궁핍한 생활을 예감한 아버지는 그의 진로를 반대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의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으나, 그것을 풀어갈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천재이지만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악조건에서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는 순박하고 순수했다. 남자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다. 그는 친구들과 긴 수다를 즐겼다.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하기도 했다. 메모 습관이 있는 슈베르트는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했다. 그 결과 31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998개의 곡을 썼다. 그중 가곡은 663곡이었다.


음악과 시를 좋아한 슈베르트는 군중 속의 고독을 작곡으로 승화시켰다. 시와 음악을 동등한 반열에 오르게 한 작곡가가 되었다. 앞선 시대의 가곡에서 반주는 시가 잘 전달되게 하는 의미가 컸다. 이 시대에 슈베르트는 음악을 통해 시를 풀이하게 하는 다리를 놓았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가곡의 왕’으로 칭송되는 슈베르트, 그는 외모가 아닌 내면의 울림으로 운명을 개척한 음악가다. 통통한 비만형이든, 삐쩍 마른 가냘픈 몸이든 슈베르트에게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음악적 영감, 예술적 표현에서는 심상의 아름다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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