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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가는대로 Nov 03. 2023

고개 숙인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숙이는 고개는 진심이 아니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편함에 잔뜩 들어가 있는 우편물이 보인다. 오전에 모든 세대의 우편함에 제자리를 찾아 들어간 관리비 청구서가 이제는 절반 정도 자리를 비웠다. 주인을 찾은 것이다.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청구서는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던 오전의 모습과 달리 하나같이 우편함 뚜껑에 허리가 꺾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주인의 손길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저 중에는 ‘이전에 살던 집보다 덜 나와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청구서도 있을 것이고,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닦달하게 할, 짠순이 아줌마의 미움의 대상이 될 청구서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젊을 때는 모든 것을 이룰 것처럼 싸움닭의 벼슬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다가 나중에는 점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는 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리라.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의 교훈을 빌지 않아도 익기 전까지는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먼저 숙일수록 친구가 많아진다는 사실은 나처럼 오래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인생의 진리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50이 훌쩍 넘었으니 제법 많이 살았다. 70, 80년을 사신 분들은 나를 아이로 보겠지만. 우리 어머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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