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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07. 2023

저한테도 아침이 올까요?

자체 진단명은 Z형 독감입니다

진단서를 받아 가지고 온 날, 집에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렀다. 사고 싶은 것은 없을까, 뭐라고 사면 기분이 나아질까, 그동안 겁먹고 못 샀던 것 한 번 질러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전화가 왔다.


“혹시 시옷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진단서를 떨어뜨리셔서요.”


아니, 진단서에 왜 전화번호 기재하는 거지? 정말 다행이네! 같은 층 카페에 앉아계시던 내 또래의 여성 분이 내 진단서를 손에 들고 계셨고, 맞은편에는 그분의 엄마뻘 되는 여성분이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사실 ‘지긋이’나 ‘애틋하게’라는 수식어를 무진장 앞에 붙이고 싶었는데 팩트는 ‘바라본다’는 것이니까. 내 왜곡된 불안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 있으니까.


“야, 감기 걸려서 기침 많이 해도 짠하게 봐.”


비합리적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나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쏙쏙 들어있는 건지, 주변 사람들이 일깨워주지 않으면 생각이 자꾸만 왜곡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기 시작했다. 1화에 수간호사 선생님이 병동 라운딩을 시켜주며 설명하는데, ‘아, 저래서 의사 선생님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신 거구나!’ 싶었다. 도무지 죽을 수가 없는 환경.


간밤에는 학교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번 주 일주일 병가 써 보고 다시 상황을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약을 이틀 치 먹어보았고 어제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차를 보면 정도가 줄었을 뿐 충동은 여전하고, 충동이 솟구쳐 오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뱁새눈으로 ‘가뜩이나 연말에 일도 많은데 쟤 때문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혹은 연민이 가득 섞인 눈으로 ‘에휴, 쯧쯧. 안 됐지 뭐야, 정신병이라니’ 하며 나를 바라보면 어쩌지? 아이들을 만난다 한들 뭘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데 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신이 나서 수업하던 사람이 맞나? 이걸 천직으로 여기며 재밌게 일던 사람이 맞나? 이렇게 사람이 한 번에 무너지나? 그래서 병인 건가?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정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것일까? 더 병가를 쓰면 나는 진짜 나아질까? 충동은 언제 사라질까?


나에게도.. 아침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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