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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11. 2023

우울증 첫 주간의 기록들

두 번째 진료를 앞두고 적은 쪽지에 가득한 불안

- 속이 계속 메스껍고 안 먹어도 토할 것 같고(약 먹기 전에도 있던 증상) 먹으면 더 토할 것 같고 머리 전체가 욱신대는 느낌이 듦. 신체 통증도 계속 있음.


- 남편, 아이의 흔적이 있는 곳이 아니라면 나를 해치고 싶은 충동이 들 것만 같은 불안에 집과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음. 운전도 하지 않고 있음. 남편과 동행하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이 듦.


- 학교에서의 모든 일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듦. 내가 잘못해서 모든 것이 그르쳐지고 잘못되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듦. 인지적 왜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나에게 화살을 돌리게 됨.


- 내가 병가를 쓰는 바람에,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고, 내가 민폐고, 내가 나약하고, 일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사람이라고 느껴짐. 아이들도 내가 없으니 더 잘 지내는 것 같고 안정적인 것 같음.


- 아이들을 대하는 게 무섭고 두려움. 나의 잘못으로 남의 집 귀한 아이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듦. 언제나 재밌고 즐겁게 일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이 기억나지 않고 동네 아이들과도 말 나누기 무섭고 싫음.


- 길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거나 인사하는 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움. 전화 통화하는 것도 가족과 절친한 친구 외에 불편하고 싫음.


-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이 되고 하는 것들에 치중해서 살고 있었던 것 같음.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보람을 얻고 힘이 났는데, 올해 많은 일을 겪으며 좌절스러워진 것 같음.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을 딱히 하고 싶거나 할 만한 일이 떠오르지도 않음. 처음으로 내 직업 자체에 회의감이 들고 이 일이 나랑 맞지 않는다고 느껴짐. 하지만 다른 일을 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 봐 두렵고 불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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