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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복희 Oct 27. 2023

가을을 굽다


   언덕위 하얀 집에서 가을을 굽고 있다. 연기가 폴폴 나는 것 같다. 발걸음도 빨라졌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봉우리들마다 두 볼이 상기되어 있다. 아니 왕 달팽이가 다녀간 것 일까? 상추를 먹고 쏟아내었는지, 홍시를 통째로 삼켰는지 모르겠다. 내 맘이 신혼 첫날밤처럼 황홀하다. 대구에서 한 시간을 달려 건천으로 갔다. 꽃차를 하는 지인을 따라 오늘은 단풍잎차를 배운다하여 선걸음에 따라나섰다. 이참에 따라 나서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번이라도 더 가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워 잡으려 하지만 잡힐 리 만무하다.

   가을의 전령사인 울긋불긋한 단풍잎 한 광주리 준비하였다. 단풍잎의 모양도 여러 가지다. 갈라진 잎은 일곱 개 인 것도 있으며 아홉 개 인 것도 있다. 먼저 단풍잎 덖음 과정을 들 수 있다. 골고루 닦아주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넣었다가 빨리 찬물에 풍덩 목욕을 시킨다. 냉탕온탕샤워를 하는 것은 잎의 두꺼운 코팅 막을 제거하고 찻물이 잘 침투 우러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목욕시킨 단풍잎을 어린아이 다루듯 한 잎, 두 잎 넓은 팬에 수건을 꾹꾹 눌러주면서 습기를 조금씩 빼면서 굽는다. 처음엔 약한 불에 1분 30초, 다시 온도를 봐 가면서 앞뒤로 굽는다. 여기서 힘조절도 중요하다. 찢어지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온도 조절도 적절해야한다. 조금만 잘못하면 쭈그렁방탱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어느 정도 열이 오르고 굽기가 절정에 오르면 가을 냄새가 난다. 손등까지도 냄새가 난다. 그렇게 단풍잎 30여 장을 굽는데 걸린 시간은 족히 두 시간이 넘었다. 빨리 하고픈 맘에 많은 양을 구워서도 아니 되고, 귀찮다고 다리미로 다려서는 더 더욱 안 된다. 하나하나 손길이 가야 어여쁜 단풍잎차가 완성된다. 무엇이든지 정성이 들어가지 않고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나보다. 그렇게 오래오래 겨울, 봄, 여름 가을의 단풍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운다. 이렇게 덖음 단풍잎차는 잎맥이 살아 있어서 눈요기로 찻잔에 띄우기에도 적절하다.


   또 다른 방법으로 유념하는(비비는 과정)방법도 있다. 물기가 있는 단풍잎을 가로 세로 잘게 자른 다음 팬에 덖는 방법이다. 이때 꼭 주의해야할 점은 면장갑을 착용해야한다. 손이 닿으면 향과 색이 달라진다. 불 조절에 힘써서 덖고 또 면보에 넣고 잘게 문질러주어야 한다. 비비고 털고 식히고 서너 번 반복해 주는데 수분이 없어질 때까지 반복하고 차를 만든다. 덖음이 끝나고 저온에서 약 반나절 향매김의 시간도 필요하다. 서로의 향을 주고받으며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덖는 정도에 따라 차의 익힘 정도가 고정되고 맛도 숙성된다. 이 경우는 붉은 색깔이 잘 우러나와 눈으로 한번, 향으로 한번,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더 가을을 맛 볼 수 있다. 단풍잎차의 효능은 동맥경화나 당뇨병에 좋고 소염, 해독작용도 한다.


  유념한 빨간 단풍잎차로 차를 우려내고 찻잔위에 덖음한 단풍잎 한 개를 띄워본다. 기대하지 않고 마신 단풍잎차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취향에 따라 차 만드는 방법 선택하고 만들 때는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 단풍잎 차만 그러할까? 이 세상 어느 하나도 사랑과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란 힘들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바른 삶을 사는 것일까? 참 나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계절을 굽고 덖고 내려오는 내 등 뒤로 가을햇살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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