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혼자 할 수 있는게 뭐 있을까? 망설임도 없이 가까운 영화관을 들어선다. 다른 사람의 신경을 쓰지 않고 언제나처럼 생수 한 병을 들고 휴대폰으로 표를 예매했다. 평소 좋아하는 안성기라는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고른 영화이다. 먼저 어둠속에 관객들의 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부부로 보이는 듯한 커플 두 쌍, 중년남자 한 명 그리고 앞좌석은 종교계의 몸을 담고 있는 듯 한 분, 그리고 나 이렇게 가뭄에 콩 나듯 빨간 벨벳의자의 사람나무가 꽂혀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4년투병 끝에 아내가 죽었다. 그리고 암이 재발 되었다는 딸의 전화 한통으로 영화는 주인공의 지나간 시간들을 담고 시작된다. 화장품 대기업의 중역인 오상무는 암으로 투병중인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착한 남편이다. 하지만 아내의 장례식장에 문상 온 부하여직원을 연모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괴로워하는 아내를 병간호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에게는 한줄기 빛이고 희망이다. 은근히 편안함을 다가온 싱그런 여직원과의 진한 로맨스가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영 내내 속으로만 사랑하고 갈망하며 고뇌하는 주인공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체를 태우는 화장(火葬)과 얼굴을 곱게 꾸미는 화장(化粧)이 라는 이중적 소재의 배합으로 젊은 여자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생명과 한순간의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인간의 생(生)과 사(死)를 오롯이 표현한 영화, 죽음과 젊음이라는 극과 극의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배우들은 기꺼이 온 몸 던졌다. 미를 갖추고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는 부하 여직원은 부드러운 살결을 더욱 부각시키고 하늘 하늘거리는 원피스자락으로 오감을 자극하기도 하고, 죽음을 앞두고 병마와 사투를 벌리는 추하지않는 추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가슴이 저려 온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방귀처럼 볼멘소리가 새어 나온다.
“뭔 데” “뭐 야” 기대한 핫한 장면을 보지 못한 관객들의 소리가 오히려 나를 웃게 만든다. 나 역시 기대하고 갔지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죽고 나면 없어질 몸뚱이 한 번 더 사용하는 것이 무슨죄가 되겠냐고 생각해 본다. 도덕적 윤리를 내세워서 감히 행동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과연 지루한 일상속에서 만난 연분홍빛 복사꽃에 입 맞추고 싶지 않는 사람이 열 명 중 몇이나 될까?
40년 중반을 훌쩍 넘기고 나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2년전 죽음의 고비를 두어번 넘기고 나니 겁이 없어지고 과감해진다. 잠재되어있던 욕망이 꿈틀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인 것 같다. 날이 어두워져 오니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어디냐고? 요즘은 날이 지날수록 남편의 잔소리가 심하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도와주더니 이제는 주방까지 잔소리가 따라오곤한다. 행주냄새는 내가 아니고 남편에게서 나는 듯하다. 오늘 저녁에는 평소입지않던 레이스 속옷을 찾아입을 생각이다. 손에는 플라스틱 생수병이 일그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