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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Oct 31. 2024

타고난 거 아닙니다

"혹시, 발레 하시나요? 몸이 진짜 얇고 예뻐서 발레리나 같아요."



운동을 마친 후 샤워장에서 들은 이야기다. 수영장, 헬스장 등 서로의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는 특수한 장소에서도, 놀이터, 대기실, 카페와 같은 곳에서도 이따금씩 질문을 받는다. 어쩜 이렇게 날씬하냐고. 질문들도 이어진다. 얼마나 먹는지, 식단을 따로 하는지, 무슨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등.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는 타고나기를 마른 몸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전혀 아니라고. 지금의 이 몸은 순도 200 퍼센트의 나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만들어진 몸이라고.





가족들과 절친들은 잘 안다. 먹는 거 엄청나게 좋아하는 빵순이, 떡순이에 전형적인 상체 마름, 하체 통통이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언니, 체형은 바뀌기 어려워. 그냥 민소매 티셔츠에 통바지를 입어.
그럼 언니 허벅지 그렇게 통통한 거 사람들 몰라.” 



운동한다고 바뀔 몸이 아니라며 친절하게 패션 팁까지 알려주던 동생은, 지금 내 몸(특히 다리)을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매일을 봐도 여전히 신기해 하며 감탄한다. 놀라워 할만한 상황이 맞았다. 실제로 내가 17년 째 재직 중인 분야의 성공률은 0.5퍼센트이기 때문이다. ‘0.5%’는 영국에서 10년 간 28만 명을 추적 관찰하여 분석해 낸 다이어트 성공률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에게 예쁘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라온 덕분에 나는 내가 정말 예쁜 줄 알고 십 여 년을 살아왔다. 그러다 열 세 살, 혹독한 혼돈기가 찾아왔는데… 2차 성징의 발현으로 몸이 구석구석 변모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여성 호르몬의 증가는 온 몸에 털을 자라게 했고, 빈약한 상체와 대비되어 부각되던 하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뜩이나 마른 다리를 원했던 내게 탱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도 100퍼센트의 지방형 허벅지는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잡지 화보 속 모델처럼 모공 하나 없이 매끈하고 하얀 피부에 군살 없이 날씬한 다리를 원했지만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거울 속에 비친 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동안 나의 머릿속은 온통 몸의 변화 – 대부분에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 – 로 가득 차 있었다. 열 네 살의 가여운 나는 거울 속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예뻐했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미워하니 진짜로 점점 미워지는 몸과 영원히 작별하고 싶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체 스트레칭, 요가를 시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십 수 년째 지속하다 보니, 이제는 나의 삶의 꼭 필요한 생존 운동이자 반려 운동이 되었다. 몸을 돌보기 시작하자 식단과 운동에도 점점 관심이 확장되었고 다양한 운동에 도전하게 되었다. 지금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지 올해로 17년 차가 되었다. 이제 나는 불치의 영역이던 하체 비만에서 탈출했고(80퍼센트 정도) 발레리나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날씬해졌다.






그럼, 이 몸을 유지하는 생활에 이제는 익숙해졌냐고? 결코 아니다. 17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진즉 변했을 시간이고, 그 분야에 달인이 되고도 남을 세월이겠지만 나처럼 먹는 걸 좋아하는 데다 원하는 체형은 마름탄탄인 상황에서 이 상충된 두 조건을 유지하기란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나는 며칠째 눈에 아른거리던 로제떡볶이를 먹고 찐 살을 덜어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서인지 징벌적인 행위인지 가끔 헷갈릴 만큼 매일 식단과 운동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내일 후회할 걸 잘 알면서도 앙버터와 크림 도너츠 앞에서 무너지고,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다음 날은 먹은 만큼 움직이자고, 오늘은 건강하게 먹어보자고 다짐한다.




내 삶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나의 제 2 정체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매일 아침 공복에 맨몸으로 체중을 재고, 불혹이 한참 지난 나이에도 계기판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하루를 열고, 온갖 유혹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유지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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