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헬로 뷰티풀>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표지부터 제목까지 딱 내 스타일이어서 읽고 보고 싶었던 <헬로 뷰티풀>.
간헐적 북클럽 선정 도서가 <헬로 뷰티풀>이라니, 바로 신청했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취향을 가장 많이 타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책으로, 누군가에게는 한 장 넘기기도 벅찬 지루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헬로 뷰티풀>은 55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 모 아니면 도일 가능성이 있었다. 재미있으면 며칠 내에 완독 가능할 테고, 아니라면 중간에 덮을 책이었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페이지 수가 전혀 부담되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여운이 가장 많이 남은 책이기도 했다.
내게 좋은 책으로 분류되는 글은 이런 이야기이다.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나를 돌아보고 더 나아가 나와 이어진 여러 관계들을 떠올리게 하고,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제시해 주는 그런 책.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모호하고 애매한 기분이나 감정선을 정밀화처럼 구체적인 단어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물 간의 감정선과 관계의 변화를 정말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려냈다. 이래서 극찬을 받은 거구나 싶었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생각에 잠기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라, 작가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기 좋은 작품이라고도 생각되었다.
표지에는 파다바노 집안의 네 자매가 그려져 있는데, 책을 읽고 다시 보니 인물 한 명 한 명의 시선과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네 자매의 눈, 코, 입이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각자의 감정이 은근히 드러나는 것처럼 표정이 느껴졌다. 읽기 전에는 단순히 분위기와 색감이 좋은 일러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인물들의 속사정을 읽고 나니 표지 속 네 인물의 거리감과 방향, 그리고 미묘한 기류까지 다르게 보였다. 참 신기했다. 거기에 북클럽에서 작가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작가님을 만나 정말 반가웠다. 이렇게 통할 줄이야!
윌리엄_1982년 11월 - 1983년 3월
줄리아가 눈빛으로 추궁했다. 그녀는 대답을 원했다. 그가 저항하기를, 모욕감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러나 윌리엄은 또다시 미안하다는 표정밖에 내놓지 못했다.
어느 늦은 밤, 윌리엄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어둠 속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 그는 그 여자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를 몰라서 잠시 그쪽을 보며 눈을 깜빡거리다가 그녀가 실비임을 알아차렸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빠르게 덜컹거렸다.
... 또 그때 윌리엄은 실비의 감정을 그녀의 온몸에 그려진 것처럼 똑똑히 보았는데,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본 것처럼 너무나 친밀하게 여겨졌다.
윌리엄_1983년 8월 - 1983년 11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서로를 떠났다. 폐소공포증이 생길 만큼 갑갑한 꿈이었고, 다들 어항 안에서 헤엄치고 있음을 곧 깨달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줄리아_1983년 8월-1983년 10월
줄리아는 윌리엄이 떠난 후 자유로운 기분이었는데 그가 자살을 시도하자 갇힌 기분이 들었고, 이제 다시 자유로워졌다. 자유는 호사스러운 침대에 털썩 누울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퇴폐적이고 감미로웠다.
자유는 호사스러운 침대에 털썩 누울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실비_1983년 8월-1983년 11월
예전의 실비라면 대답이 두려워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그녀는 진실하고 강렬하게 자신이 되고 싶고 가장 진실하고 강렬하게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왔다. 실비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로 스스로를 끌고 가려고 애써다. 함께일 때 온전한 자신이 된 기분이 드는 사람은 딱 한 명, 윌리엄밖에 없었다. 실비는 그와 함께일 때면 온전한 자신이었고 심지어 그 이상이 될 여유마저 느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작은 균열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삶의 또 다른 파편이 드러나면서 자매들은 한때 스스로와 서로에 대해 가졌던 꿈으로부터 더욱 멀어졌다.
윌리엄_1983년 11월-1983년 12월
사실 윌리엄은 실비와 함께 있으면 깨어 있는 느낌, 불편한 느낌이었고 여러 가지를 원하게 되었다. 그가 누릴 자격도 없고 상황을 더욱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들을.
윌리엄은 병원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았고, 약 덕분에 이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떻게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윌리엄이 추구하는 목표는 충분히 건강하고, 충분히 잘 지내고,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비가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을 때 윌리엄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감각을 느꼈다.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온전함을 느꼈다. 그 충격과 기쁨이 그의 안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줄리아_2008년 10월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함께 할 수 있는 빈틈을 찾아냈다.
즉, 이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전부라는 뜻이었다.
이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전부라는 뜻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마음이 갔던 인물은 줄리아였다. 한 몸처럼 지내던 동생 실비, 그리고 전남편 윌리엄과의 관계 속에서 선택하든, 선택할 수 없었든 여러 인연과 점점 멀어져야 했던 그 긴 시간들이 정말 안쓰러웠다. 그 오랜 시간 틈틈이 찾아왔을 외로움과 소외감, 분노와 후회와 연민. 그냥 복합적인 감정을 홀로 견뎠을 그녀가 느껴졌다.
아마 거기에 내 모습이 겹쳐져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온, 그리고 그래야만 했던 줄리아의 모습에서는 과거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결정들이 이해가 되었고 더 깊게 와닿았던 듯하다.
삶을 향한 의지와 동시에 지키고 싶었던 것들 사이에서 수없이 흔들리는 줄리아...
<헬로 뷰티풀>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각자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디고, 선택하여 앞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관계가 주는 기쁨과 무게,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의 모습도 함께 비춰보게 되는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