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라타치 작가님께
작가님, 요 며칠 너무 추워지고 서울에는 눈도 많이 내렸다는데 제가 살고 있는 영암은 가을의 끝자락을 놓고 싶지 않은지 파란 하늘과 단풍이 더욱 자태를 뽐내는 며칠이었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작가님이 서울 사시는 게 맞나? 싶어 움찔하게 됩니다. 저... 작가님이 어느 지역에 살고 계신지도 모르는 거 있죠. 작가님과 저는 프독 오픈채팅방에 함께 소속되어 있다는 거 말고는 접점이 없더라고요^^;;
다유 작가님의 제안에 솔깃해서 일단 함께 하겠다고 신청은 했는데 제가 글을 보내야 하는 분이 작가님인 거예요. 아. 이거 큰일이다! 싶었죠. 그때부터 작가님의 브런치에 들어가 글도 읽어보고 오프모임 때 얼굴을 뵈었는데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 단톡방에 올라오는 이번 모임 사진을 하나하나 확대해서 보았지요. 얼굴이 낯선 분들 사진을 더욱 유심히 보았는데 그때 딱! 작가님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라도 작가님 얼굴을 뵐 수 있어 어찌나 반갑던지요.
작가님과 글쓰기 짝꿍이 되고 11월 한 달 동안 저는 어떤 책을 소개해야 하나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춘기 아이와 관련된 책을 소개해야 하나 싶었는데 작가님 브런치를 보니 이미 저희 아이들보다 큰 자녀분을 두셨고 그런 작가님 앞에서 제가 감히 사춘기 아이 다루는(?) 이야기를 하기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될 것 같더라고요. 소설책을 소개해야 하나 싶다가도 이미 저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쓰시는 것 같아 그 또한 조심스럽고... 정말 11월 한 달은 마음의 부담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던 한 달이었답니다. 그러다 11월 마지막 주, 제가 미용실 예약을 했는데 펌을 하며 읽을 책을 챙긴다는 걸 아침에 깜박하고 안 챙긴 거예요.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쉬워 미용실 앞에 있는 서점에 들렀고 거기서 딱!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지 뭐예요!! 그 순간 정말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니까요^^
그렇게 제가 만난 책은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책이에요. 작가님은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이 책은 유품정리사 김새별 님의 책인데 예전에 유퀴즈에 나오셔서 직업에 대해 알리기도 하셨고 ‘무브 투 헤븐’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책이라고 하더라고요.
책에는 고독사, 자살, 사고로 인한 죽음 그리고 그들의 삶의 순간들을 정리해 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글을 읽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죽음의 순간들이 참 많이 있구나 싶어 놀랐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가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참 감사한거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홀로 사시다 외롭게 돌아가신 부모님, 그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기보다 부모가 남겨놓은 재산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읽을 땐 제 일이 아닌데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자식이 걱정되어 아픈 걸 숨기다 혼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신 분의 이야기, 젊은 아내가 집을 나가자 어린 딸과 동반 자살한 이야기 등 마음 아픈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는데 그중 제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던 이야기는 존속 살인을 저지른 고등학생 아이 이야기였어요.
아들의 성적에 집착하게 된 엄마, 나중에는 아이에게 골프채까지 휘두르는 엄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 아이는 결국 엄마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게 되었고 이미 생을 마감했는데도 엄마가 살아 나올 것만 같은 불안감에 방문에 본드를 바르고 사취가 심해지자 본드 위에 실리콘까지 바르며 지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 사건은 뉴스에도 나왔었다고 하더라고요. 돌아가신 엄마와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엄마의 집착과 폭력이 얼마나 두려워했으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의 꼬리에는 저희 아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마도 요즘이 아이들 기말고사 기간이라 더 그랬나 봐요. 저는 사교육을 받거나 교육정보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 자녀 교육에 더 부지런을 떨게 되고 아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는 욕심이 불쑥불쑥 솟아오를 때가 있거든요.
저희 아들은 12월 초에 기말고사를 봤는데 시험 점수를 이야기하는 아들에게는 잘했다, 고생했다 말해주었지만 속으로는 놓친 문제들, 아깝게 놓친 점수들에 미련이 남고 아쉬워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책에 나온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부담을 느끼는 행동과 말을 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일등이어야 했다. 고지가 바로 코앞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목표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더 자주 채찍을 들었다. 골프채를 휘두르고, 잠을 재우기 않고 훈계했다. 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밑바닥 인생을 살게 하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말이 이렇게 마음을 시리게 하는 말일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저도 아이를 양육하거나 훈계할 때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과연 아이의 마음에 와닿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사랑’이라는 말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닌 신중히, 더욱 소중히 뱉어야 하는 말임을 알게 되었어요.
책에는 우울하고 슬픈 내용만 담겨있지는 않아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도 실려있거든요. 작가님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제가 다 말해버리면 재미없으니 나머지 이야기는 작가님의 궁금증 유발을 위해 접어둘게요.(웃음)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것은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책에 여러 이야기가 실려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은 사람 사이의 사랑, 온기로 이어지게 되는데 과연 나는 지금 나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는 책이었답니다. 잘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도 중요하다는 것,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구나를 마음에 꾹꾹 새기게 된 책이었어요. 제가 너무 무거운 주제의 책을 소개해 드린 게 아닌가 싶어 글을 쓰면서도 주춤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울림이 많았던 책이라 작가님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작가님, 우리 직접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고 읽은 책을 나누는 시간들이 오겠지요? 거리상 너무 멀어 그날이 언제일지 알 수는 없지만 나중에 작가님과 나눌 이야기보따리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을게요. 우리 만나는 날 서로 반갑게 얼싸안으며 쌓아두었던 그 보따리들 풀어보아요. 그날을 기대하며 편지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