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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7. 2024

나를 위로하는 방법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속 문장을 읽고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도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중



   무작정 걷고 싶어질 때가 있다. 마음이 조각조각 나누어져서 흩어지고 산란할 때, 어지러운 생각을 떨치려고 해도 자꾸만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때, 몸이 찌뿌둥하고 뻐근할 때, 그냥 움직이고 싶을 때. 현관으로 나가 발이 제일 편한 운동화를 신는다. 걷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걷기로 한다.


  낯선 길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길을 좋아한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하느라 마음을 쓰지 않고 무턱대고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로 가는 곳은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이다. 안쪽에는 트랙이 있어서 킥보드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트랙을 반복해서 걷고 달리면서 운동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공원 바깥 둘레로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흙길이 있다. 맨발로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잠시 뿌듯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발바닥이 아팠고, 혹시나 뾰족한 무언가를 밟게 될까 봐 발걸음을 편하게 내딛기가 힘들었다. 맨발 걷기가 끝나고 나서 발을 씻어야 하는 수고로움도 은근히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흙길이 주는 가볍고 폭신한 느낌은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운동화를 신고 공원 둘레 흙길을 걷는다. 누르는 만큼 나를 튕겨내는 보도블록이 아니라 내 무게를 충분히 품어주는 듯한 묵직하고 푸근한 흙의 감촉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흙길을 걷는다. 맑은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어느새 무성해진 초록잎으로 변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갔을 아기 손톱 만한 푸른색 들꽃이 보인다. 여기저기 시선을 주고 생각을 담았다 비우면서 걷다 보면 마음이 변한다. 처음에는 무겁게 누르던 걱정과 생각들이 자꾸만 마음을 쿵쿵 두드리더니 어지럽게 흩어졌다가 결국에는 제자리를 찾았다는 듯 한 곳에 모여 착 가라앉는다. 나무, 꽃, 하늘, 구름, 사람들을 보면서 걷지만 그 생각들은 결국 나를 향한다. 걷는 시간은 불안과 걱정 더미들을 내 안에서 꺼내는 시간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걸을 때면 무거운 마음 짐들을 주르륵 꺼내서 펼쳐놓고 하나씩 탁탁 두드리고 말린다. 그러면 괜찮아진다. 힘이 조금씩 생긴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충전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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