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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23. 2024

지금 설레고 있나요?

도키 나쓰키, 『기분 가게』속 문장을 읽고

  세상의 ‘첫’들은 미묘한 울림이 있다. 첫 만남, 첫 데이트, 첫사랑처럼 두근거리던 기억이 있는가 하면, 첫 출근, 첫 직장, 첫 월급처럼 기대와 긴장이 가득하던 순간도 있다. 비가 오는 날 연인과 한 우산 속에서 옷깃이 가까워지며 함께 걷던 때, 3주 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를 마중 나온 그 사람을 보았을 때, 첫 아이에게 자그마한 배냇저고리를 입히던 때,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말하던 때. 사소하고 평범한 숱한 일상의 페이지에 ‘첫’이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의미를 만들고 간직하고 마음에 새긴다.  



  그러고 보면 간질거리고 벅차오르고 두근거리던 첫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일상을 살아내느라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 쌓여버린 먼지를 후후 불고 가만히 바라보면 그 순간의 생생함이 다시 살아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설렘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설렘을 아예 잊은 건 아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에서, 서로 마음이 있지만 자꾸만 어긋나다가 갑자기 고백하는 순간에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당신을 매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마치 여자 주인공이 된 것마냥 대신 설렐 때도 있다. 결혼한 지 10년 차가 되어가니 연애 때의 설렘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더운 날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고 지쳤을 게 뻔한데도 힘들다는 내색 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퇴근 후 하트 모양이 뚝뚝 떨어질 듯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말없이 내가 걱정하던 것들을 해결해 둔 것을 발견했을 때, 뭉클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편안한 설렘이다.


내 하루하루는
무언가 설렘이 좀 필요해.

  

  새로운 설렘들도 생겼다. 가벼운 운동화와 편한 옷을 입고 좋아하는 카페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챙겨간다. 한두 방울만 더 있어도 곧 흘러내릴 듯한 풍성한 카푸치노 거품과 코를 자극하는 시나몬 향을 맡으면서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에 빠져드는 시간. 나는 설렌다. 또는. 실 한 덩이와 코바늘을 꺼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기를 시작한다. 바늘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완성하는 동안 내 마음도 둥실 떠올라 여기저기 산책을 한다. 오늘 아침 아이에게 화냈던 것을 떠올렸다가 저녁에 아이들에게 줄 반찬거리를 생각했다가 주말에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해 본다. 손과 바늘과 실이 함께 어울리며 자그마한 것을 만드는 동안 떠돌던 마음이 착 가라앉고 편안해진다. 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순간에 설렌다. 어제는 피아노를 주문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 못했던 것이 마음 한편에 남아 늘 아쉬웠었다. 음악 시간이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고운 곡을 연주해 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언젠가 배우고 싶다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갔다.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피아노를 집에서 연습했으면 좋겠다는 구실로 작년부터 고민하던 피아노를 주문했다. 아이와 함께 나도 이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려고 한다.      


  설렘은 여기저기서 기다리고 있다. 스무 살에는 설렘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있으면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설렘을 하나씩 찾아 나서 보려고 한다.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원하는 것을 찾는 순간 설렘이 곁에 있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보고 싶다. 지금 마음을 이리저리 그윽하게 들여다보고 글로 풀어내고 있는 이 순간처럼.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인용구: 도키 나쓰키의『기분 가게』중에서『걷기 예찬『기분 가게』』속 문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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