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림, 『나를 움직인 문장들』 문장을 읽고
꽃을 선물 받는 건 남자가 꽃집에 가서 어색해하는 순간까지 다 포함된 선물이래요. 남자가 얼마나 큰 어색함을 무릅쓰고 꽃집에 갔을 거며 꽃을 사기까지 얼마나 민망했을 거예요. 그래서 꽃 선물은 꽃집으로 갈 때까지 여자를 생각하는 그 마음들이 담겨 있는 선물이래요. (‘선다방’ 가을 겨울 편 3회 중)
- 오하림, “나를 움직인 문장들” 중
나는 응큼한 사람이었다. 속에는 욕심이 몽글거렸으면서 겉으로는 투명하고 맑은 사람인 척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며칠 후면 엄마 생일이야.
아이들이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해줄까 소곤거렸다. 남편이 물었다.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서운함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주말부부라서 생일날 같이 보내지도 못할 텐데, 미리 마음에 드는 선물을 챙겨주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 남편은 이제야 아내의 생일을 알아차린 눈치다. 눈을 갸름하게 뜨고 남편을 쏘아본다.
애들이 말해줘서 안 거지?
아니야, 원하는 걸로 해주려고 그랬지. 필요한 거 말해봐.
속마음을 꿀꺽 삼켰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필요한 걸 미리 말로 해야 해? 이거 선물해줘 하기 전에 알아서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 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선물을 고르면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끼고 싶다고. 굳이 다 설명을 해야 아는 건가. 명치께가 답답해졌다.
생일이 다가오면 괜스레 들뜨는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나이도 어지간히 먹은 것 같구만 그래도 누군가 챙겨주기를 기대하고 호들갑스러운 축하를 받고 싶다.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의 생일이 되면 한 달 전부터 뭐가 필요할지 생각하고 선물을 고르기 시작한다. 어떤 것을 받고 싶을까,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어떤 걸 받으면 기분이 좋아질까. 선물을 받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할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 역시 그렇게 챙김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선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고르기까지 고민하고 생각한 결과물이니까. 그 마음을 오롯이 받고 싶었다. 순전히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필요한 거 해주고 싶어. 뭐가 필요해?
또, 눈치 없이 남편이 묻는다. 별 뜻 없는 물음에 마음이 서늘하게 식었다. 쓸모없는 선물을 해주는 것보다 꼭 필요한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필요하지 않은 선물로 서로 난감해졌던 적이 있었으니까.
몇 년 전, 남편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물했다. 저녁에 설거지를 할 때 라디오나 유튜브를 자주 듣는 나를 위해 준비했다고 했다. 산책을 할 때 음악을 듣기도 하고, 통화할 때 편하게 쓸 수 있으니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십여 분 이상 끼면 귀가 아프고 멍해졌다. 소리를 들을 때는 스피커로 듣거나 헤드셋을 사용했다. 남편은 선물한 이어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기대했고 그러지 않아 아쉬워했다. 보관함에 들어있던 이어폰은 결국 남편이 쓰기로 했다. 남편은 선물이 자기에게 돌아와 서운했고, 나는 남편의 선물을 흡족하게 받지 못해 미안했다.
필요한 선물을 말하지 않으면 서로 불편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필요한 것을 직접 말하지 못했을까? 그동안은 남편이 선물을 고르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끼고 싶었던 건 줄 알았다.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받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꽃 한 송이와 러닝화가 필요하고, 가족여행도 갔으면 좋겠고, 조용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기도 하다고. 이것들을 다 얘기하면 욕심 많은 사람으로 비칠까 봐 조심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주말부부니까 생일날 저녁밥을 같이 먹는 것도, 일정을 맞춰 여행을 가는 것도 무리여서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그럼에도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표현해 볼 걸 그랬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았을 텐데. 남편이 연차를 쓰고 생일을 같이 보내는 건 무리겠지, 갑자기 숙소를 잡고 가족여행을 가는 건 어렵겠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처음부터 포기하고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욕심이 없는 척, 바라는 게 없는 척하느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구나. 괜히 남편에게 툴툴거렸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응큼해도 괜찮고 욕심이 많아도 괜찮다. 원하는 걸 할 수 없을 거라고 처음부터 속상해하지 말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표현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여러 겹 꼬여있던 마음을 글로 풀어낸 덕분에 내 마음이 한 겹씩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원하는 것을 좀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해 볼 수 있으려나.
생일날,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하다며 남편이 커피 쿠폰과 현금을 보냈다. 은행 어플 알림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마음이 진작에 풀렸다. 선물은 마음이라고 얘기하던 그 사람은 어디 있지, 딴청을 부려본다.
이미지: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