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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1. 2024

흰머리가 반갑지는 않습니다만

마흔이 스물아홉보다 좋은 이유

  30대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흰머리가 하나 둘 보였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놀라움과 불안함이 엄습했다. 처음 흰머리를 뽑았을 때는 이게 정말 내 머리에서 나온 게 맞나 싶어서 신기하고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살펴봤다. 마흔이 되니 거울에 보이는 앞부분에만 벌써 흰머리가 대여섯 개쯤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있겠지만 굳이 세어보고 싶지 않다. 흰머리 두어 가닥은 손으로 이리저리 매만져서 숨겨보지만 자꾸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냥 뽑아버릴까. 그럴 수가 없다. 이제 머리숱도 걱정해야 할 나이다. 




  내가 벌써 마흔이라니. 시간이 속절없다. 예전 생각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한참 어린 나이인 스물아홉 살이었을 때. 그때는 서른이 넘어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남자친구가 있거나, 결혼을 하거나 심지어 아이가 있기도 했다. 그 나이 되도록 연애도 변변히 못하고 회사, 집, 회사, 집만 반복하는 내가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난 왜 이렇게 부족한 걸까. 야근 후 허탈감이 밀려오면 치킨이나 맥주에 의지하며 빈 마음을 채웠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했을 때처럼, 땅, 신호 소리에 맞춰서 있는 힘껏 달렸지만 이미 친구들이 앞서 나가는 게 보였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내 뒤에는 아무도 없는 걸 알 수 있었다. 등 뒤가 허전하고 막막했다. 

  그때는 몰랐다. 스물아홉의 나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던 때였다는 걸.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나이라는 걸. '서른'이 주는 무게감에 눌려서 겁이 났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돼 있지 않아서 불안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고 나면 서글퍼졌다. 뭔가를 열심히 했는데 무엇을 열심히 했는지 몰라서,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몸도 마음도 물기를 머금은 솜처럼 축 가라앉았다. 위로가 되었던 것은 같은 처지의 동기와 맥주를 마시며 마음을 나눴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며 걱정과 위로와 용기를 건네고 받았다. 다시 아침이 되면 일상으로 돌아가 쳇바퀴 속에서 열심히 달렸다. 버티고 견디려고 애썼던 시간이었다.



  

  마흔 살이 되니 서른 살의 고민이 자그마한 밤톨처럼 귀엽게 느껴진다. 서른이 뭐 어쨌다고, 예쁘기만 한 나이구만. 왜 그렇게 힘들어했나 싶다. 그러면서도 요즘 '마흔'이 들어간 책을 발견하면 자꾸 손이 가고 읽고 싶어지는 나를 발견했다. 사십 대의 시작을 잘 채우고 멋지게 꾸려나가고 싶어서인 것 같다. 나이에 초탈한 줄 알았더니 나이가 달라질 때마다 머뭇거리고 긴장하는 걸 보면 서른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나는 여전히 비슷하다. 다행히 다른 것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힘겹게 버텨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좋아하는 순간이 되었다는 것.



고잉 그레이(Going Gray).


  늘어가는 흰머리를 보면서 걱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나를 꿈꾸어본다. 지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으니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몇십 년 후에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면서 인생을 즐기고 나를 사랑하는, 멋지고 우아한 신바람 할머니가 되고 싶다. 오늘부터 흥얼거리는 연습 시작이다.



*이미지 출처: Freepic

*고잉 그레이: Going gray. 흰머리를 염색해서 감추지 않고 있는 흰머리 그대로 기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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