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의 나에게
그때의 나를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1학년, 14살의 나를 지금 18살인 내가 만날 수 있다면, 뻔하지만 이런 말을 건네주고 싶다.
너 때문에 힘들어진 게 아니야.
지금 우울한 게 너의 약점이 되지 않아.
시험에 목숨 걸지 않아도 괜찮아.
애쓰며 살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의 평가로 너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일 때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손목이 피범벅이 될 때까지 상처를 냈을까.
또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많은 고통을 이겨냈겠지.
혼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너무 수고했어.
우리 좀만 쉬어가자.
쉬어가는 건 멈춰있는 게 아니야.
충전해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지.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너무 힘들었지?
하루종일 죽음만 생각하느라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도 괜찮아.
입원까지 하면서 스스로 병을 인정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약을 먹는 것도 이제는 너무 힘겹고,
환자라고 생각도 하기 싫지?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웃느라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었을까.
괜찮은 척하느라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삼켰을까.
그 말을 삼키며 드는 괴로운 감정들을 소화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난 그것도 못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내 속은 썩어 들어만 가는 것 같아,
근데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를 보며 무력감과 자책감을 느꼈을 것 같아.
그래도 지은아,
지금보다는 괜찮아지더라.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인 날들이 오더라.
피범벅을 만들지 않고도 힘듦을 넘겨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더라.
나를 환자라고 인정하는 게 치료의 첫걸음이더라.
원인을 차차 알게 될 거고,
좀 더 지나다 보면 그 원인에 집중하기보단 지금 나의 상태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우울이 나만의 경험이 되어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줄 거야.
혼자 외로워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거야.
여유를 가지고 살게 될 거야.
쉬어가는 시간이 달리는 시간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다급해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거야.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찾지 않고,
오직 나에게서만 찾을 수 있게 될 거야.
너는 사람의 사랑을 알게 될 거고,
그 사랑으로 점차 나아지게 될 거야.
때로는 그 사랑으로 상처받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되더라.
너가 울었던 그 시간만큼 웃을 수 있게 될 거고,
힘들고 속상했던 시간만큼 행복해질 거야.
사람들에게 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거고,
너에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던 나를 사랑하는 일도 곧잘 하게 될 거야.
이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보이지 않고, 힘들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너가 도와주고 싶어 질 거야.
도와주며 너는 나의 아픔으로 남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뿌듯해질 거고,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길 거야.
너를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을 거야.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