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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an 12. 2024

이번엔 내가 틀렸어요

자살충동이 찾아올 때면

평일이 다 지나고 금요일 저녁부터 나에게 찾아왔다. 평일에는 일이 커지니 애써 외면하다 주말이 되니 걷잡을 수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토요일 저녁부터 눈이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람들은 갑자기 내리는 눈에 모두 행복해 보였고, 집에 들어와 누우니 창문 밖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내 머릿속은 이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금 떨어지면 새하얀 눈에 나의 빨간 피가 스며들겠지.
그렇게 나의 눈물도 눈꽃 속으로 젖어들겠지.
그렇게, 죽고 싶다.


이 생각을 품은 채 2주 만에 병원을 갔다. 몇 달 만에 자해를 하고 가는 병원이었고, 내 우울 점수는 지금까지 검사한 점수 중 최고점을 찍었고, 상태는 안 좋았다.


첫마디를 "죽고 싶었어요."로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날 진료실에서 안 내보내주고 엄마한테까지 다 말해버릴 것 같아 꾹 참고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만 이야기했다.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는 자해를 하더라도 의사 선생님께 말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자해가 반복되면 엄마한테 말해버린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상황이고, 비밀을 지키는 것 중 예외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난 내가 말하면 말했지 의사 선생님을 통해서 엄마가 듣는 걸 원치 않는다. 왜 자해 생각이 들었는지 심리 상담을 통해 깨달은 걸 차분히 말해드렸고, 최대한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미 내 우울 점수는 박살 났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해야 할 것 같았다.


근데 오늘 선생님과 나눈 대화는 꽤 인상 깊었다. 짜증 나기도 했지만 왜 날 살리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진료였다. 남이 날 아프게 하는 걸 막을 순 없으니 나를 스스로 아프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누가 나에게 칼을 들고 오면 안 피할 거냐고 물어보셨다. 머리로는 피해야 되는 걸 아는데, 너무 당연한 건데, 말이 안 나왔다. 내가 가만히 침묵하자 선생님이 말을 이어가셨다.

"그 사람이 상처를 깊게 내면요?"

나는 입술 끝에서 이 말이 맴돌았다.

'아무라도 제발 그렇게 칼을 들고 와서 절 죽여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 말을 했다간 입원하라고 할 것 같아서 그냥 침묵하다 마음속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피해야죠."

이 말을 하면서도 정신과 의사 앞에서까지 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선생님은 삶의 주도권이 나한테 있어야 한다고, 그 주도권이 남한테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셨다. 내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또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이가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면 놔둘 거예요? 달려가서 구할 거예요?"

이건 살려야 하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 대답이 쉽게 나왔다.

"구해야죠."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뜻밖의 답을 하셨다.

"왜요?"

나는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 아이는 살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럼 지은님은 죽어도 돼요? 저는 지은님이 죽고 싶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삶이 너무 무거워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결국에는 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데려오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발버둥을 치겠죠? 그래도 데려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지은님 계속 구하고 데려오려고 하는 거예요."


진료를 받으면서 울컥한 적은 없었는데, 처음으로 마음이 아렸다. 난 죽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이 볼 때는 살리고, 구하고,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였고, 그게 옳은 방향이었다. 난 죽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내가 틀렸다. 인정하기 싫은데, 이번엔 내가 명확히 틀렸다. 틀린 생각인 걸 알았으니, 이제 자살 충동은 나에게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다. 자살 충동이 오더라도, 그게 틀린 생각이라고 굳게 믿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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