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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an 07. 2024

14살의 나에게

그때의 나를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1학년, 14살의 나를 지금 18살인 내가 만날 수 있다면, 뻔하지만 이런 말을 건네주고 싶다.


너 때문에 힘들어진 게 아니야.

지금 우울한 게 너의 약점이 되지 않아.

시험에 목숨 걸지 않아도 괜찮아.

애쓰며 살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의 평가로 너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일 때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손목이 피범벅이 될 때까지 상처를 냈을까.

또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많은 고통을 이겨냈겠지.

혼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너무 수고했어.

우리 좀만 쉬어가자.

쉬어가는 건 멈춰있는 게 아니야.

충전해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지.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너무 힘들었지?

하루종일 죽음만 생각하느라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도 괜찮아.

입원까지 하면서 스스로 병을 인정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약을 먹는 것도 이제는 너무 힘겹고,

환자라고 생각도 하기 싫지?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웃느라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었을까.

괜찮은 척하느라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삼켰을까.

그 말을 삼키며 드는 괴로운 감정들을 소화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난 그것도 못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내 속은 썩어 들어만 가는 것 같아,

근데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를 보며 무력감과 자책감을 느꼈을 것 같아.



그래도 지은아,

지금보다는 괜찮아지더라.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인 날들이 오더라.

피범벅을 만들지 않고도 힘듦을 넘겨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더라.

를 환자라고 인정하는 게 치료의 첫걸음이더라.

원인을 차차 알게 될 거고,

좀 더 지나다 보면 그 원인에 집중하기보단 지금 나의 상태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우울이 나만의 경험이 되어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줄 거야.

혼자 외로워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거야.

여유를 가지고 살게 될 거야.

쉬어가는 시간이 달리는 시간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다급해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거야.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찾지 않고,

오직 나에게서만 찾을 수 있게 될 거야.

는 사람의 사랑을 알게 될 거고,

그 사랑으로 점차 나아지게 될 거야.

때로는 그 사랑으로 상처받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되더라.

너가 울었던 그 시간만큼 웃을 수 있게 될 거고,

힘들고 속상했던 시간만큼 행복해질 거야.

사람들에게 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거고,

에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던 나를 사랑하는 일도 곧잘 하게 될 거야.

이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보이지 않고, 힘들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가 도와주고 싶어 질 거야.

도와주며 는 나의 아픔으로 남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뿌듯해질 거고,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길 거야.

너를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을 거야.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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