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 집을 나오자

투쟁과.. 눈물과.. 쟁취

by 금달


작년 11월을 마지막으로 브런치를 오랜만에 찾았다.

당시 이직과 이사 준비를 동시에 하던 나는, 새 회사 입사를 기점으로 글쓰기에 손을 떼게 되었다.


처음엔 적응하느라,

이후엔 회사만으로도 마음이 버거워서.


그렇다고 지금 여유가 생긴 건 아니지만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올해가 지나가 버릴것만 같아 짬을 내보았다. 기존에 쓰던 걸 이어쓸까도 고민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일단 보류. 올 해 안에 다시 시작해야지.


그래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집“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는 집을 사랑한다. 진짜 정말로.

그렇다고 내 집이 대단히 멋드러진 건 아니다.. 나의 작고 귀여운 전셋집 :o)


그리고 집에 대해 쓰려고 하니, 내 나름 고군분투하여 얻어낸 독립의 역사가 있는지라 이걸 먼저 써봐야지 싶었다.


.. 그래서 제목에 냅다 “ 1.”을 붙여보았다.




ep.1 - 집을 나오자


이 때 말하는 집은 본가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나는 한 가지 확고한 꿈이자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리라!‘


그렇다고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본인이 신나게 노셨던 탓에 세상을 악의 소굴로 여기는 아빠와, 착실하게 모범생으로 자라나 놀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없던 엄마 아래에 태어난 나는,

당연하게도 늦은 시간 귀가나 외박이 불가능했을 뿐이다.


당시엔 내가 학생이니까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는 거야. 내가 미성년자니까. ‘내가 성인이 되면, 나에게도 자유가 찾아올거야!’ .. 라는 믿음 하나로 학창시절을 버텨왔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나를 맞이한 것은 “10시 통금” 이었다.


대학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10시 통금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유흥에 흥미가 없었기에 분명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갈 대학이 정해지면서부터 우리 집에 재앙이 찾아왔다.


본가는 경기도 남부.

대학은 서울 북부.

환승 3번, 편도 1시간 40분.


물론 등교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잘못 꼬이면 바로 지각이었기 때문에 항상 2시간 전에 나와야 했고, 그 와중에 화장도 열심히 하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역시 하굣길이었다.


대학 새내기에게는 수많은 술자리가 생겨났고,

당시 나는 사람을 좋아했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그만큼 즐거웠다.


10시 통금을 지키려면 8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가혹한 상황이었기에, 귀여운 투쟁 끝에 12시 통금을 얻어냈다.


그렇게 매일 저녁마다 비슷한 동네에 살던, 비슷한 시간의 통금을 지닌 친구와 버스 시간을 확인하다가 술집을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버스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로 환승을 해야했기에 숨 넘어갈 듯 뛰어다녔으며, 집 앞 왕복 7차선 도로의 한복판을 달린 적도 여러번이다.

그리고 집 현관문을 열면 아빠는 항상 거실에서 나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런 날들을 며칠이나 보냈을까.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간 서른이 되어서도 새벽에 못 놀겠구나!


그래서 본격적인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자정에 집에 들어오면 새벽 두 시까지 싸웠다.

자취는 될 턱이 없으니 기숙사에 보내달라고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도 얼마나 아찔하셨을까 싶다. 술 먹고 오밤중에 집에 들어와 새벽까지 싸워대는 딸이라니.


하루는 울고, 하루는 싸우고, 하루는 설득하고 .. 틈틈히 기숙사 모집 공고도 찾아 보여드렸다.

이미 개강한 이후였기에 학교 기숙사는 만실이었지만, 집을 나가겠다는 열정으로 학교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던 공공기숙사를 찾아내었다.


당시 그 곳은 개인 카드가 있고, 그 카드로 개인의 출입 기록이 모두 남고, [외박 시 온라인으로 외박 신청]을 해야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입학한지 2달이 지난 5월 중순, 드디어 집을 나올 수 있었다.

*외박 신청을 할 수 있는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진작 부모님께 공유되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