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엄마, 아빠가 해 준 게 뭐있다고 그만이란 말을 해?”
“.......”
카드 명세서와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할 말을 잊어버렸다. 없는 살림에 바닥까지 보이면서도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쏟아 부었는데 또다시 허기짐을 채우려고 달려든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부모덕 없이 자라서 자식만큼은 이런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서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아이만큼은 절대로 우리와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모든 것을 최고로 해주고 싶었다.
아이를 낳은 후 조리원에 들어가는 돈을 아껴서 명품 유모차를 샀다. 우리가 입는 옷은 비록 시장 후미진 난장에서 산 싸구려 옷을 입더라도 아이 옷만큼은 백화점에서 사 입혔다. 옷이 날개라더니 백화점 옷을 입혀놓으니 여느 부잣집 아이 못지않게 귀티나 보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아이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끊임없이 쏟아 부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버티기가 그나마 수월했다. 본격적으로 교육비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허리가 휜다는 말이 몸으로 느껴졌다. 우리부부는 못 배운 설움과 열등감을 아이에게 풀기 시작했다.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영어유치원을 5세 때부터 보내기 시작했다. 방학 때면 친구들이 부모랑 해외여행 갔다 온다는데 나는 왜 안가느냐고 물어볼 때 에둘러 할 말이 없어 그냥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됐다. 나이가 먹을수록 영악한 아이는 친구와 자신이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아보였다.
“이번 방학 때 우리 홍콩 디즈니랜드 가. 대신에 레벨 업 해서 다음 반에 올라가야 간데. 난 지난번에 일본 갔다 와서 별룬데 그래도 엄마가 가자고 하니 할 수 없지. 넌 이번에 어디가?”
“나도 이번에 미국 가. 아빠가 사업 때문에 무지 바쁜데 그래도 이번엔 시간 내서 갈거야.”
“와, 좋겠다. 미국 어디 가는데?”
“너희는 잘 모르는데야. 근데 미국에서 정말 유명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래. 아무나 못가는 곳이야. 아빠가 특별히 이번에 사업파트너가 초대해서 가는거거든.”
우연히 듣게 된 아이의 거짓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일용잡부가 아니라 멋진 슈트를 입고 비즈니스석에 앉아 이곳저곳으로 날라 다니는 내 남편이 진짜라고 믿고 싶어졌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게 환상인지 아이의 거짓말이 현실인지 자꾸 헷갈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