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집에도 아이는 없었다. 밖으로 밖으로 돌면서 카드 명세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나갔다. 파산직전까지 내몰렸다. 정말 이 악물고 살아온 삶의 대가가 이런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만 잘 키우며, 잘 키우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화장실에 조악하게 붙어있는 스티커를 떼면서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이제 더 이상 팔 것이 없어 내 속에 장기까지 내다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득 어릴 때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전래동화가 생각났다.
「옛날에 아이를 너무 바라던 부부가 여우라도 좋으니 자식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삼신할미한테 빌었데. 원래는 자식 복이 없어 자식을 두면 안 되는데 하도 정성스럽게 빌어대는 탓에 삼신할미가 산속 여우를 둔갑시켜 자식으로 보내 준거야. 너무너무 눈부시게 자라나는 아이와 달리 살림살이가 자꾸 기우는거야. 처음엔 집안 가축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더니 부부도 사라져버리고 폐가가 된 집에 아이 혼자만 남게 된거야. 아이는 배가 고파도 나가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집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어. 길을 잃어 이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간을 빼앗기고 말았어. 그렇게 애멍글멍 갖고 싶었던 아이는 부부의 손에서 진짜 여우로 바뀌어 버린거지.」
손에 꼭 쥐어진 전화번호를 보면서 진짜 나의 아이도 전래동화 속 여우누이가 되어가는게 아닐까. 내 속을 파먹고도 세상 밖으로 제대로 걸어 나갈 수 없는 불쌍한 저 아이가 이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