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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셀나무 Dec 16. 2023

영알못 엄마의 엄마표 영어 도전기

40만원 덕분에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다.

“그러니까 한 달 영어 교육비는 40만 원으로 합시다.”   

  

 근처 대단지 아파트에 새로운 타입의 공부방이 생겼다. 원장님은 유명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손주를 공부시키기 위해 직접 자신의 아파트에 특화된 공부방을 개원하신 인텔리 할머니시다. 원어민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놀이식 영어수업과 전문 수학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플레이팩토, 대학생 선생님들이 담당하시는 과학실험과 독서지도에 간식은 유기농으로 직접 만들어 주신단다. 소규모로 철저하게 관리하며 대상은 손주와 나이가  같은 7세로 한정되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개량 한복에 풍성한 흰머리를 우아하게 올리셨고 수능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언어영역에 참여하셔서 문제를 만드셨다는 경력을 말씀하실 땐 유난히 눈을 반짝이셨다. 언뜻 쎈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가 겹쳐 보이는 포스 좔좔 할머니 원장님의 설명에 넋 놓고 빠져들고 있었다.

 


              

 “저는 일단 영어과목만 시작해 볼게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반유치원에서 다루어주는 맛보기 영어가 전부인지라 여름방학부터는 영어에 노출시켜주고 싶었다. 게다가  원어민 선생님이 놀이식으로 영어를 흥미 있게 가르쳐주신다니, 단순히 읽고 쓰는 것에서 더 나아가 회화도 함께 배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팩토, 과학, 독서에 간식까지 이렇게 세팅된  과목 중 2개를 선택하면 처음 3개월간은 파격적인 할인가 40만 원에 해주신다는 정보를 듣고 온 터였다. 영어 한 과목만은 그리 비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어만 40만 원이라니.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속으로야 화들짝 놀랐지만 짐짓 태연한 척을 하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머리속은  수많은 생각과 계산들이 오가며 복잡해졌다.

‘20만 원도 비싸다 할 판에 무려 두 배가 되는 40만 원이라니, 40만 원이면 지금 보내고 있는 유치원 원비보다도 비싼 금액인데? 동네 문화센터 원어민 영어는 12만 원이던데...... ’

장장  2시간가량 설명을 들었는데 이제 와서 비싸서 못 다니겠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7살 딸은  일주일에 3번씩 유치원에서 럭셔리공부방으로 하원을 시작했다. 40만 원이라는 거금을 손 떨며 입금했던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영어에 뽕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디즈니채널에서 나오는  바다탐험대 옥토넛을 재미있게 보던 딸에게 언어변경을 해놓고 영어로 된 옥토넛을 보게 했다. 처음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왜 못 알아듣는 이런 걸 봐야 하냐며 난리난리 치고 시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난 40만 원에 사활을 걸었으니까. 짜증을 견뎌내며 이것저것 회유도 해가며 한 달, 두 달 버티어내니 어느 순간 못 알아들어도 캐릭터의 귀여움에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고 페이소 ( 딸이 제일 좋아하는 펭귄)가 등장하면 너무 귀엽다며 신나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영어영상을 보는 것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진 아침 루틴이 되었다. (물론 이제는 디즈니채널이 아닌  넷플릭스로 옮겨졌다.)

옥터넛에서 시작해서 꼬마의사 맥스터핀스, 브레드 이발소까지 점점 보게 되는 영상이 늘어났고.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리틀팍스라는 영어 동화 도서관도 유료결제해서 저녁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Fun at kids central)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고 어느 순간 깔깔거리며 영상에 빠져들어 보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조금씩 들리는 건지, 못 알아들어도 눈치로 웃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진전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40만 원짜리 영어수업은 결국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가 파란 눈 원어민 선생님을 너무 무서워하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 40만 원 수업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영어교육에 진심이지는 못 했을 거 같다. 비싼 덕분이다. 이로 인해 비싸다는 개념에 유연성이 생겼다. 비싸도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면 그건 결국 비싼게 아닐 수도 있다. 그때의 40만원은 400만원어치의 값어치를 톡톡히 해 주고도 남았으니까.   




   

      

나는 소위 말하는 영알못 엄마다. 시도해도 이 세상에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게 영어다. 영어를 자유롭게 듣고 말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일단 영어로 듣는다는 게 한국말처럼 들린다는 건지, 아니면 영어로 들리는데 그게 머리속에서 해석이 되는 건지가  너무 궁금하다. 5년 동안 딸아이 옆에서 수없이 많은 영어영상을 시청했지만 난 아직까지도 못 알아듣고 있다.

결과적으로 엄마표영어를 하게 된 셈인데  요즘처럼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는 엄마가 영어를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글자를 찍으면 원어민이 읽어주는 세이펜이라는 신기하고도 편리한 기계가 있으니  발음걱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어색하게 영어책을 읽어줄 필요가 없다. 레벨에 맞게 차근차근 영어콘텐츠를 볼 수 있는 리틀팍스. 리딩게이트 등등 온라인 영어 도서관이 넘쳐난다. 문제는 콘텐츠가 아니라 그걸 보게 하는 것과 그것이  꾸준히 유지되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동기부여를 위해 옛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볼 수 있었던  종이로 된 뽑기 판을 주문해 놓았다. 한 장씩 뽑으면 그 뒤에 1등부터 5등까지 숫자가 쓰여 있는데 5등짜리 1개면 게임 5분,  3개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보기, 3등짜리면 다이소에서 원하는 물건 1개 사기, 1등이면 당일치기 놀러 가기, 게임 1시간 등 딸과 함께 약속을 정해놓았다. 영어책 1권 읽거나 영상 볼 때마다 한 번씩 뽑게 해 주었더니 그 효과가 아주 좋았다. 흔한 5등을 뽑으면 잠시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나오기 힘든 3등이나 2등이 뽑히는 날엔 집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어느 정도 듣는 게 가능해졌을 때 원어민 선생님과 온라인으로 만나는 화상영어를 시작했다. 파란눈 원어민 선생님의 트라우마를 없애주기 위해. 친구 엄마에게 Preply라는 글로벌 온라인 중개 사이트를 소개받았다. 원하는 튜터를 찾아 Trial Lesson을 해 본 뒤 마음에 들면 시간예약을 해서 수업을 받는 프로그램인데 워낙 튜터들이 넘쳐나고 가격대도 시간당 5, 6천 원부터 몇십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사이트에서 한국어 지원이 되니 엄마가 영어를 몰라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신기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적의 흑인 튜터와도  (1시간 6천 원) 트라이얼 레슨을 한번 해 보았고, 필리핀, 영국, 미국등 다양한 국적의 튜터를 만나보게 해 주었다. 딸아이와  3년째 매주 한번씩 만나고 있는 캐나다 튜터도 있다. 아웃스쿨(Outschool) 이라는 사이트도 있는데 여기선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과 만나서 함께 학습할 수 있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공간이다. 로직퍼즐이라는 수업에서는 인도와 일본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스쿨랩) 이라는 곳에서 대면으로 외국인들과 만날 수 있는 영어문화해설사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제 영어는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싫어하지만 않아도 성공인데 좋아하기까지 하다니 대성공이다. 그 공부방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럭셔리할머니원장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분 덕분에, 40만 원 때문에 아니, 덕분에 지금까지도  우리 아이가 영어의 넓은 바다를 향해 즐겁게 헤엄쳐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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