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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Jan 10. 2024

떡꼬치집 사장님 어디 계세요?

엄마, 난 커서 꼭 떡꼬치집 사장님이 될 거야.

이제 막 5살에서 6살로 올라간 아이가 떡볶이집에서 난생처음 떡꼬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의기양양하게 한 말이다. 산적꼬치에 떡볶이떡 5개가 나란히 누워 있다가 뜨거운 기름 사우나탕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후에 때깔 좋은 빨간색 소스로 새 옷을 갈아입는 떡꼬치. 그때 아이는 매콤 달콤한 중독적인 새로운 미각의 세계에 눈을 떴고, 이 떡꼬치는 이제 막 시작된 6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김치를 제외한 온통 빨갛게 생긴 매운 음식을 먹어봤다는 자부심 뿜뿜과 더불어 처음으로 자신의 장래희망을 스스로 결정하게 한 의미심장한 음식이 되었다.


우리 동네 떡볶이 집은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던 곳이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있는 나지막한 상가 건물 1층의 떡볶이집은 항시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 동네 사람이면 다 아는 떡볶이 맛집이었다. 노부부가 하시다가 오래전부터 아드님과 함께 하는 이곳은 하굣길에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들의 공간이기도 했고, 어른들이 퇴근 후 귀갓길에 출출해서 또는 아이들 생각에 사들고 가는 곳이면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동네 아줌마들의 밥인지 간식인지 모를 먹을거리와 소소한 수다타임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큰 창문이 훤히 트여 있어 그 앞에서 주로 서서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협소하지만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또 날씨가 궂을 때를 제외하고는 길가에 약간의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아 사람들이 앉아서 먹고 쉬다 갈 수 있게 해 놓았다. 메뉴는 언제나 똑같았다. 떡볶이, 어묵, 튀김(오징어, 고구마, 야채, 김말이), 순대와 아이의 장래희망을 결정하게 한 떡꼬치가 있었다. 첫사랑이라 그런지 아이는 오래도록 그곳의 떡꼬치를 좋아하고 즐겨했다. 그다음 아이의 최애 메뉴는 어묵이었다. 어묵 자체는 물론이고 마치 아저씨들 술 먹은 날 해장국 먹듯이 소리까지 내며 어묵국물을 들이켰다. 그러더니 요즘은 매운맛에 빠져 다른 집보다 매콤한 맛이 더해진 어른 취향의 00 떡볶이집 떡볶이에 푹 빠져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리해 줘야 하는 커트 머리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생각나는 그 떡볶이, 그 맛. 그럴 때는 참지 말고 꼭 먹어줘야 하는 내 아이의 단골 음식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매력은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는 것이다. 떡볶이 집이 있는 골목은 양쪽으로 키가 크고 무성한 나무들이 줄지어 있어서 봄, 여름, 가을 그곳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더구나 햇빛 화창한 날,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자신의 풍성한 초록색 팔을 길게 뻗어 만든 아치형 지붕 아래로 난 길을 떡꼬치 하나를 입에 문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지날 때에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마치 내가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이 처음 매튜 아저씨와 마차를 타고 초록색 지붕 집을 찾아가기 위해 만났던 '눈의 여왕님' 길을 지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초록색 지붕을 닮은 나뭇잎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여러 갈래의 눈부신 실햇살 세례에 괜스레 마음이 설레고 부풀어 올랐다. 소녀 감성이 충만해져 한껏 행복해진 엄마와 그 포인트는 달랐지만 내 아이 또한 어린아이를 배려한 떡볶이집 사장님의 살짝 바른 빨간 소스를 입술에 묻혀가며 떡꼬치 한 입을 베어 물고는 얼굴 가득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다음 두 입술에 범벅이 된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소스를 혀로 핥으며 다음에 베어물 떡꼬치 자리를 어디로 정할지 눈으로 훑어나갔다. 그렇게 아이는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티셔츠에 빨간 훈장 하나를 단 채, 처음 떡꼬치를 맛보던 날 말했던 것처럼 '내 꿈은 떡볶이집 사장님'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떡꼬치집 사장님이 될 거라고 굳은 의지를 보이던 아이에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7살 때 유치원에서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해서 아이는 늘 생각하고 있던 떡꼬치집 사장님이 꿈이라 했다고 한다. 문제는 다 들으신 후 선생님께서 떡꼬치집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의 꿈을 '음식점 사장님'이라고 재구성해서 듣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아이는 화를 내며 자신은 분명히 '떡꼬치집 사장님'이라 했는데 선생님께서 바꿔 말씀하셨다며 제 나름 논리적으로 화가 난 이유를 말했다. 아이는 '떡꼬치집'이 중요했지만 선생님은 떡꼬치와 상관없이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 중요하셨거나 아니면 떡꼬치집의 규모를 키우고 싶으셨나 보다. 자신의 깊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신 선생님에 대한 원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부터 봐 오던 '터닝메카드'라는 만화에 심취해 앞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겠다는 꿈으로 급선회하면서 무색해졌다. 아이의 장래희망은 그 후 거의 모든 아이들의 꿈이라는 유튜버로 바뀌더니 예비 중1이 된 지금은 '몰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나도 내 꿈이 뭔지 잘 모르고 자랐다. 어떤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좋아하던 것이 있었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인지도 몰랐고 그것을 미래의 꿈으로까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몰라', '모르겠어'란 말이 다른 의미에서 많이 서운해지는 요즘이다. 대부분의 자식을 둔 부모라면 장래에 내 자식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돈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기를 바란다. 자식의 꿈, 곧 장래희망은 부모의 장래희망이다. 그리고 꿈(장래희망)은 오랜 세월 동안 구체적 직업을 말하는 것으로 당연시되어 왔다. 어릴 때 나도 꿈은 직업을 말하는 것인 줄 알았으니까. 꿈이나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의 의도에는 미래에 바라는 삶이나 이루고 싶은 이상이나 희망,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것은 없고 오로지 직업만이 있었다.


물론 나도 아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지고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 점점 더 현실에 찌들어가고 있는 입장에서 부모라면 당연히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아이가 다양한 꿈을 꾸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꿈을 정하고 키워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비록 그 꿈이 별 것 아니고 작은 것일지라도, 해보다가 이건 아니구나를 깨닫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힘들어도 끈기 있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작은 성취를 이뤄나가는 과정을 경험해 나갔으면 좋겠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꿈꾸고 바라는 이상적인 어떤 것이어도 좋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아이의 꿈이 사라진 것 같은 지금, 아이의 '몰라'는 내게 꽤나 서운한 느낌을 주었다.


장차 어느 때 이런 마음이 확 바뀌어 아이의 꿈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원하는 쪽으로 강요하거나 아님 내 생각과는 반대노선을 타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 집안에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8년 전 자신의 마음에 너무나 충실했던 조그만 아이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자신 있고 호기롭게 '내 꿈은 떡볶이집 사장님'이라고 말했던 그때가 몹시 그립다. 혹시 내가, 남편이, 주위 사람들이, 사회가 알게 모르게 아이의 꿈에 무언의 압력을 주어 꿈을 꾸지 못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어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자기중심에서 친구로, 세상으로 서서히 눈을 돌려 자기 자신과 연결시키기 시작한 사춘기에 접어든 예비 중1 아들에게 오히려 '몰라'는 그 속에서 자신의 꿈을 치열하게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지 않을까?


어찌 보면 우습게도 나는 이제 겨우 어린이 티를 벗고 있는 아이에게 뭔가 인생의 철학적인 생각이나 거창한 꿈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이와 미래의 꿈이나 이상, 장래에 희망하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된 대화도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의 꿈이나 장래희망이 없다고 단박에 서운해 한 내가 너무 성급하고 철없는 어른이 아니었나 싶다.


한겨울 딱 이맘때 자신의 포부를 당차게 얘기하던 그 옛날 미래의 떡꼬치집 사장님은 이제 순하게 매콤 달콤한 떡꼬치 대신 스읍스읍하며 먹는 매콤한 떡볶이를 더 좋아한다. 그런 아이가 며칠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00 떡볶이의 떡볶이와 어묵국물 많이 담은 어묵, 순대, 튀김을 양손에 사들고 오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불러본다.


떡꼬치집 사장님, 어디 계세요?


그리고 어디선가 지금 자신도 모르겠는 꿈을 찾아 헤매고 있는, 그러다가 언젠가는 진정한 꿈을 꾸며 돌아올 그 옛날 떡꼬치집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어딘가에 있을 떡볶이집 사장님의 꿈을 응원하며 기다리겠노라고.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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