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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Dec 14. 2023

올해 내 마지막 소원은

-누수의 끝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시간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랫집에서 싱크대 쪽 천장(아파트니까 아랫집 천장은 바로 우리 집 주방 싱크대 바닥이다.) 벽지가 젖어들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곧 누수 업체를 불렀다. 그러나 우리 집 싱크대 아래쪽을 아무리 훑어봐도 물이 새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싱크대 아래 콘크리트 바닥을 깨 봐야 한다며 엄청난 굉음과 뿌연 시멘트 가루를 날리며 바닥을 깼다. 깬 곳에서도 물이 새고 있는 흔적은 없었다. 주방 옆 다용도실 쪽도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았으나  방수가 안 돼 물이 스미는 것일 수도 있다며 방수를 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후로는 아랫집에서 별 얘기가 없었고 누수는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러던 올해 6월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고 또 연락이 왔다. 주방 싱크대 천장에서 물이 조금씩 스며서 곰팡이가 생겼다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물이 스며서 천장이 망가진 아랫집이 더 큰일이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문제가 시작되는 위층인 우리 집에서 또다시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멀스멀 짜증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4년이나 지난 지금 그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시 누수 관련업체에 전화를 했다. 사실 4년 전 그 업체가 미덥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다른 업체에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한 명의 기사가 와서 아랫집과 우리 집을 사전점검 하고 갔다. 며칠 뒤 사장님과 한 명의 기사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싱크대 하수관이 지나는 곳도 살펴보고 다용도실도 보고 화장실도 보고 난방수가 문제일 수도 있다며 주방 쪽 난방배관도 살펴봤다. 물길이 지나가는 상수도, 하수도, 난방수를 체크하며 의심되는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필요한 경우엔 벽도 뚫고 바닥도 좀 뚫었다. 뚫는 건 괜찮으니 오늘 내로 얼른 물 새는 원인이나 속 시원히 찾아서 해결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겉으로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들어가며 확인해 본 후 며칠 뒤 마지막으로 난방 배관에 압력을 주어 난방 배관에서 물이 새는지 알아보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압력을 주어 물이 새는 것을 감지하는 기계에서도 확실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누수는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이런 상황에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아랫집 천장의 물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얘기에 일주일 간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더 이상 물이 번지지는 않았고 끝내 누수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지저분해진 아랫집 천장의 도배를 해 주는 것으로 누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한 달 전 아랫집에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 도배한 천장 벽지에 물이 스미고 있다고. 우리 집이 의도한 것도 아닌데 그저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내가 화를 낼 곳은 애먼 남편뿐이었다. 남편도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누수업체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누수전문업체라고 했다. 우리는 '전문'이라는 두 글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랫집 먼저 들러 보고 온 누수 업체 사장님은 아랫집 천장에 물이 스민 부분이 주방 천장 말고도 거실 쪽에서도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벽돌 하나가 더 얹힌 것처럼 묵직하고 답답했다. 아랫집 분들의 묵은 고통과 계속되는 신경쓰임에 죄송했지만 끝나지 않는 누수의 괴롭힘으로 힘들기는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누수전문업체 사장님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한참을 살펴보고 그다음으로 주방 쪽 싱크대 수도와 난방부 배관을 점검했다. 사장님 또한 주방 쪽에서는 예전의 다른 업체처럼 단서를 찾지 못했고 결국 물을 많이 쓰는 화장실의 방수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그런 것 같다며 화장실이 범인임을 거의 확실시했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믿었다. 아니 정말 화장실 방수 문제이길 바랐다.


우리는 바로 방수를 해달라 했다. 하지만 예약된 일이 많아 다음 주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아랫집에 양해를 구하고 며칠이 지난 후 화장실 방수를 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일을 제외한 다른 물 쓰는 일은 가능한 한 밤늦게 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그리고 방수를 했어도 천장의 물기는 바로 마르지 않고 고여 있던 물로 인해 짧게는 일주일이나 그 이상도 아랫집 천장에 물이 스며들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날 내내 제발 이번에는 화장실 방수 문제로 인한 누수였기를 바라며 우리 가족은 간절한 마음으로 세면대 사용과 샤워를 최대한 늦게 했다.

 사진 출처: pixabay


화장실 방수 이후 아랫집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내심 기뻤다. 이제 누수로부터 해방인가. 열흘쯤 지나 회사에 있는 남편한테 연락이 왔다. 아랫집 천장은 여전하다고. 누수전문업체 사장님한테 연락하니 물이 마르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고 한다. 아, 이놈의 누수 징글징글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원인을 찾기 힘든 것은 알겠으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도대체 어쩌란 건가. 그래도 기다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랫집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고 방수를 한 지 한 달 후 사장님은 다시 우리 집을 방문했다. 화장실을 다시 보고 혹시나 싶어 방수가 덜 된 곳을 찾아 보수를 했다. 물이 많이 고여 있으면 마르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같을 말을 하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인 엊그제 사장님은 또 우리 집을 찾았다. 그동안 별 문제는 없었는지 우리 집 주방과 화장실의 안부를 물었다. 별일 없었다는 내 대답에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 사장님을 보며 다른 누수업체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사장님은 우리 집 문을 두드렸고 아랫집에 갔다 왔다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아랫집 거실 천장에서 좀 떨어진 천장에 물이 스미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장님은 이런 경우엔 수도나 난방수의 문제라며 그쪽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검을 해도 최악의 경우 물이 새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도 했다. 구축 아파트라 여기저기 손대기도 꺼려진다 했다. 한숨도 나고 화도 나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원인을 찾아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집이 비단 우리 집만은 아닐 텐데 누수의 원인을 못 찾으면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하는가 싶어 묵은 체증처럼 머리와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지 않은가.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야 해결을 할 수 있으니까. 사장님은 점검 날짜를 잡고는 다시 돌아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데 우리 집 트러블메이커인 누수씨를 겪어보니 보이지 않으면 열 길 아니 한 길 물 속도 모르겠다. 불길보다 물길 잡기가 더 어렵다는 말도 알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말도 백번 맞는 말이다. 마음으로 보면 보인다 했는데 보이지 않는 집안의 물길은 전문가의 마음으로도 보이지 않나 보다. 단지 짐작만 할 뿐, 정확한 것은 의심이 가는 모든 곳을 기계를 동원해 확인하거나 드릴로 땅이나 벽을 뚫어 확인하는 길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사람도 몸이 아플 때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는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몸속이 아플 때는 여러 장비를 이용해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를 한다. 하지만 장비로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이 다쳐 생긴 몸의 병은 어찌해야 할까? 분명 몸은 아픈데 검사를 해도 몸에는 이상이 없고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때 마지막으로 내리는 진단이 마음에서 온 병 때문이라고들 한다.


마음의 병은 우리 집 누수처럼 오래된 배관 어느 곳에 생긴 아주 작은 점 같은 구멍으로 물이 새어 그 물들이 모여 결국에는 아랫집 천장을 적시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새는지 모르고 그냥 지나친 물은 계속 흘러나와 작은 물길을 만들고 작은 물길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한 곳만이 아닌 다른 곳으로도 흘러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사람도 아주 작은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쌓이고 또 쌓이면 몸 이곳저곳이 아프고 정신이 피폐해지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 누수를 방치하면 안 되는 것처럼 깊어진 마음의 병도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자각할 수 있는 마음의 병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마음의 병은 그 원인을 찾아 치유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평소 자신의 마음을 틈틈이 들여다보고 알아주고 돌봐야 누수가 생겨도 그 원인을 금방 찾아 쓰다듬고 어루만질 수 있다.


구축 아파트의 경우 누수의 원인을 찾기가 더 힘들고 못 찾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말을 남기고 간 누수전문업체 사장님의 말이 허언이길 바란다. 누수로 심신이 지친 아랫집과 우리 집을 위해서라도 올해가 가기 전 원인을 찾아내 누수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기를, 아니 하루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돌아보면 올해 참 많이도 힘들었던 내 마음은 조금씩 치유가 되어가고 있는데 새해가 아닌 올해 내 마지막 소원이 '누수의 끝'이라니 웃프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상단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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