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어느 날, 그날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대로 자기엔 밤이 아까웠다. 참새가 방앗간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내일 아침 알람을 핑계로 들고 온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초등생인 아이의 교육 관련 영상 알고리즘을 시작으로 여러 개를 대충 훑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는 간간이 재미있고 알려진 것만 찾아보는 편이라 그쪽 관련 영상은 패스하는데 그날따라 며칠 전부터 탐험하는 중간중간 스쳐 갔던 드라마 요약본 영상에 시선이 갔다. '이건 뭔데 계속 보이는 거지? 사극인 것 같은데. 티저 포스터가 조금 색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보자마자 바로 밀어버렸던 내 손가락은 그날따라 무슨 연유에서인지 누를까 말까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터치를 해 버렸다. 내용인즉슨 조선시대인 것 같은 배경에 왕으로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넓은 목간통에서 목욕을 하고 있고 옆에서 물을 넣어주던 궁녀가 갑자기 어이없이 물에 빠져 왕이 일으켜주다 둘이 눈이 맞는 스토리였다.(요약하고 보니 참 통속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야릇한 분위기는 내 눈과 귀와 마음을 홀려 단숨에 그 드라마에 입성케 했다. 흔해 빠진 사랑얘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과 부합해서 잘 그려낸 작가 때문인지, 멋지고 예쁜 남녀 주인공이 연기를 잘해서인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닿을 듯 말 듯 애틋하게 잘 만들어낸 연출감독 때문인지, 미술, 의상, 조명, 음악, 촬영 감독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날 이후 난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정조의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너를 내 옆에 두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드라마('옷소매 붉은 끝동') 속 정조의 대사였다. 왕이라는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한 궁녀를 사랑한 정조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절절했다.
"천성" 그게 뭣이 중헌디! 천하의 왕인 정조대왕도 천성을 거스르는데 어린 교주를 섬기는 한낱 미천한 교인 따위에게 천성이 가당키나 할까. 십삼 년 전 어린 교주를 맞은 이후로 바뀌지 않는다고 믿었던 천성은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게 점점 변해서 나를 바꿔 놓았다.(참고로 이 능력은 집집마다 어린 교주들의 천성 역행 수련 방식에 따라 다름을 밝혀 둔다) 천성을 거스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결점이나 단점을 고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나만의 고유한 성격을 잠시 묻어두고 나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원래 없었던 능력들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과정 없이 느닷없이 원더우먼 변신하듯 몇 바퀴 돌고 나니 어느덧 변해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밤에 안 자도 끄떡없이 다음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생겼다. 누구네 집 어린 교주는 분유 타서 먹으면 7~8시간은 잔다는데 우리 집 어린 교주는 모유를 좋아하는 탓인지 아니면 양이 적은 모유 때문인지 한두 시간 만에 깨서는 내가 수련을 잘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옆에서 새우잠을 자며 같이 깨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음날 분유랑 섞어 양을 좀 늘려 주어도 뭐가 그리 못마땅하고 불안하고 궁금한지 길어야 한 시간 자고 나를 찾았다. 삼십 분 만에 일어날 때에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타령이 나왔다. 그래도 어느 날은 안 깨고 두 시간을 넘기며 자 주는 때도 있었다. 그런 날 밤엔 발아래로 떨어지는 다크서클을 부여잡고 옆에서 깊은 새우잠을 잤다. 낮잠을 잘 때는 설거지와 빨래가 한가득이었지만 혹여 시끄러우면 깨실까 봐(사실 내가 살기 위해) 자체 파업하고 나도 잠깐이나마 쉬며 숨고르기를 했다. 간혹 아주 가뭄에 콩 나듯 내가 불쌍했는지, 낮에 에너지를 많이 썼는지 밤에 네 시간 주무시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하해와 같은 성은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어린 교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한다는 어느 집 어린 교주에 비하면 얼마나 배려심 깊은 교주님이신가. 더 낮은 곳을 생각하며 그렇게 천성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남이 먹다 남긴 음식도 잘 먹는 한 사람에게만 통하는 비위 좋은 먹성이 생겼다. 결벽증이라 욕하면 할 말이 없지만 부모, 형제, 자매라도 숟가락 넣고 휘휘 저어 먹고 남긴 음식은 먹지 않았던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남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어린 교주는 입이 짧았다. 내 딴에는 맛있을 것 같아 정성 들여 만들어 놓은 음식을 조금 먹고는 자주 남겼다. 다이어트를 하시는지, 담백한 음식을 싫어하시는지, 뱃고래가 작아서인지 신비아파트의 '신비' 같은 작은 체구를 어서 빨리 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량만 먹고는 금세 배고파했다. 남겨 놓은 성스러운 음식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그래, 교주님이 남긴 거니까 먹는다.'라는 생각을 하며 먹기 시작했다. 어린 교주님이 커 가도 남기는 음식은 내 차지였다. 같은 집에 동거하는 남자 교인은 교주님 침 닿은 음식은 먹지 않겠다는 어이상실 발언을 하고는 먹는 걸 거부했다.
'나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나 혼자 데려왔니? 어린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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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괴력도 생겼다. 세상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린 교주는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했다는 어린이 명작동화의 뻔한 플롯처럼 나에게 반해 결코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수련을 하면서도 어린 교주의 마음과 상황도 헤아려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심동체( 二心同體)로 한 몸이 되어 생활을 해야 했다. 띠를 매고 앞으로 안고 뒤로 업는 기술까지 쓰면서 어린 교주와 함께 있다 보니 자연 힘이 길러졌다. 나아가 어린 교주를 한 팔로 안고 다른 손으로 요리도 하고 밥도 먹고, 집안 일도 거뜬히 해치우는 내 생에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어메이징 한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때 얻은 힘과 능력은 현재 허리, 골반 통증과 아이언맨 같은 팔뚝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이렇거늘 어린 교주가 둘, 셋, 그 이상 되는 집에서는 당연히 엄청난 능력을 가진 교인들이 속출했음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포용력이생겼다. 어린 교주가 자라면서 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어느새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 있었고, 만지지 말아야 할 것, 먹지 말아야 할 것에까지 손이 닿아 있었다. 항시 대기조 자세로 세상에 나온 이상 경험은 중요하다는 생각에 진짜 위험하고 안 좋은 것만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하기까지 아주 넓은 마음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힘들고 피곤하고 귀찮을 때에는 어린 교주가 반항을 하거나 말거나 금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고, 이때의 포용력이라면 노벨 평화상 언저리에 해당하는 상 하나쯤은 받지 않았을까 한다.
포용력과 더불어 놀이공원에서 기구 한 번 타기 위해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는 긴 줄도 마다하지 않고 한참을 서서 기다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단한 참을성이 생겼다. 어린 교주의 행동을 받아주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내심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일은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지칠 때까지 하는 어린 교주, 상대의 기분과 욕구 따위엔 관심도 없이 일을 처리하고, 기본적 예의와 정리정돈은 길에 버려진 지 오래됐으며, 세간살이가 얼마나 튼튼하고 정교한지 손수 알아보고 판단하는 하늘을 찌를 듯한 호기심 등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혀 가슴속 화산 폭발에 참을성이 무너져 내린 날은 자괴감에 자존감이 땅 속까지 가라앉았지만 어린 교주는 교주님답게 맑고 또렷한 검은 눈동자로 자책하고 있는 내 눈을 바라보며 한 번 씨익 웃어주었다. 그러면 난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외치며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었다. 내게 자존심 따위는 애초에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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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시간과 올림픽, 월드컵 경기에서만 존재감을 발휘했던 애국심은 어린 교주라면 내 한 몸 희생해도 괜찮다는 투철한 충성심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동안 해왔던 TV 시청을 포함한 영화관람, 본격쇼핑, 아이쇼핑, 사교모임 등 자칭 문화생활이라 하는 것들을 끊었고, 그마저도 폭넓지 않던 인간관계는 더 좁아졌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린 교주를 모시는 데 내 한 몸 비루해지고 미천해져도 아무렇지 않았다. 잠 못 자서 퀭한 눈과 쏙 들어간 볼살, 어린 교주의 침과 음식찌꺼기로 지저분해지고 늘어진 옷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기르려고 기른 머리카락이 아니라 미용실 갈 여유가 없어 긴 머리 질끈 동여 맨 나는 영락없는 조선시대 여인네가 되기도 했다. 이런 몰골에도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 교주를 내려다보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그 순간만큼은 희미해졌다. 동시에 쌔근쌔근 잠든 그에게 내 힘을 필요로 할 때까지 희생하며 훌륭한 교주로 성장시키겠노라고 충성을 다짐했다.
무치(無恥)한 바보가 됐다.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은 알고 살았는데 어린 교주와 지내면서 부끄러움은 신발장 안에 넣어 두었다. 어린 교주의 마음에 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우쭈쭈는 기본이고 앳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도 해 주고 과장된 몸짓으로 춤도 췄고 동요를 언제 불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어릴 적 노래들을 끄집어내서 좌우로 고갯짓을 하며 불러주기도 했다. 심심해할까 봐 혼잣말도 많이 했다.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더 편했던 나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어느덧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린 교주밖에 안 보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어린 교주는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어린 교주의 천성 역행 수련법을 통해 얻게 된 능력들 중엔 사라진 것도 있고 아직까지 유효한 것도 있으며 더 강력해진 것도 있으며 새로 생긴 능력들도 있다. 참 신기하고도 대단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어린 교주는 열심히 자라 이제 청소년이 되어가고 있다. 어린 교주가 내 말을 알아들으면서부터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어 기뻤으나 요즘 들어 다시 대화가 안 되고 있다. 수련 짬밥이 늘어가면서 어린 교주가 맘에 안 들면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른 지 꽤 됐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요즘은 묵묵부답일 때가 많다. 이럴 땐 나 혼자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교주의 성질은 많이 죽었으나 그때보다 훨씬 더 교주의 속마음을 모를 때가 많으니 문제다. 자기중심적이었던 어린 교주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몸보다 정신이 힘들어진 현재 내 참을성은 더한 인내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반밖에 아니 반의 반밖에 못 할 때도 있고 화산 폭발 되기 전 잠시 온전한 정신일 때에는 말을 꿀꺽 삼키며 폭발을 멈추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교주의 심리와 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그 어느 때보다 두뇌가 활발히 움직이기는 하나 대부분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서 나간다. 그 감정을 제어하느라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간다.(요새는 남자교인도 나를 도와 열심히 청소년진입교주를 키우고 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내 흰머리 생성에 또 한몫을 담당하고 있으니 이것도 문제다) 한편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게 찾아온 갱년기는 '다 귀찮다'를 외치며 교주의 말과 행동을 종종 무심하게 바라보게 해 주고 있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이 말이 이리 와닿을 줄이야. 이제는 천성대로 살고 싶지만 아직 더 자라야 하는 청소년진입교주를 마냥 방관, 방치할 수만도 없다.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나도 살아야 하니 이제 천성을 거스르는 능력은 그만 갖고 싶다
어쩌다 딱 걸려서 천성을 거스르며 살았던, 앞이 깜깜하다고 생각했던 터널 속 삶은 적응이 되어 지금은 어둠 속에서도 터널 내부가 잘 보인다. 나날이 자라고 있는 교주이지만 아직도 어디로 어떻게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바뀔지 몰라 매번 괜찮은 교주로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는 다짐을 나 스스로에게 하곤 한다. 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엔 나의 갱년기도 교주의 사춘기도 끝나 있겠지. 그때쯤엔 천성을 거스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기대반 의심반의 시선으로 그날을 기다려 본다. 어린 교주를 맞이했던 얼떨떨함과 신기함, 기쁨과 동시에 찾아온 깜깜한 터널, 그러나 그 터널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주었던 건 다름 아닌 나만 바라봐 주었던 어린 교주의 무한 사랑이었다. 내가 잘할 때에나 못 할 때에도 나를 믿고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던 어린 교주의 무한 신뢰였다. 많이 부족한 나한테 온전히 자신을 맡긴 어린 교주가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나에게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 글자는 확실하다. "사랑" 그렇기에 나 역시 교주를 끝까지 믿어주고 응원하고 힘들 때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는 것으로 교주에 대한 사랑을 다 하려고 한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겠지만 이렇게라도 내 소임을 다 하고 싶다. 언젠가는 자신의 세계로 나갈 교주를 위해 억울하기는 하지만 당분간은 갱년기의 도움을 받아가며 천성을 거스르는 일을 좀 더 해야겠다. 비록 언젠가 교주의 사랑은 다른 여자 교주한테로 모두 옮겨 가겠지만 그 또한 수련의 과정인 것을 받아들이며 계속 도를 닦아 보기로 내 마음을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