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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un 29. 2024

부엉이가 소로 변하는 시간

쓰는 일은 곧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 김종원,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p.35



잘 사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잘 살기 위해 나는 무엇이 변하고 있나?






 잠재의식이란 녀석은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하다.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학생 시절 고된 시간을 보내고 늦은 시각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여서 보니 바로 다음 정류장이 내릴 곳이라던가, 다음 날이 소풍이나 수련회 혹은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면 전날 늦게 잤어도 아침이면 누가 깨우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는 일 말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상태로 잠에 들면 의식은 자도 잠재의식이 보초를 서는 느낌이랄까.



 새벽 6시, 잘 자다 눈이 번쩍 뜨인다. 분명 새벽 2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조금 더 일찍 자는 날이면 5시에도 깬다. 전엔 가끔이지만 잠들던 시각에 이젠 깨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름 붙여 아침형 인간이 된다거나 미라클 모닝 같은 거창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변하고 싶었다. 보초병도 세웠지만 이른 아침 기상이 가능했던 건 다른 이유가 있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큰 힘이 되는 좋은 사람들이 그 이유다. 글쓰기를 함께 배우고 브런치를 함께 시작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애쓰는 동료 작가님들과 함께 하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감사한 인연이 나를 바꾸는 요즘이다. 늦게 잠든 날에도 새벽 5시가 넘어 온라인 모임은 켜놓고 다시 잠에 들 지언정, 낮과는 다른 푸름의 새벽하늘이 외롭지 않다. 달려가면 그 자리에 있는 좋은 사람들 덕에 잠이 깬 것이 고맙고 다시 만나 반갑다. 새벽에 일어났다는 그 하나의 사실이 무언가를 벌써 이뤄낸 듯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하루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신이 난다. 멘토 선생님의 소처럼 쓰라는 말씀이 어느 순간 새벽에 만나는 사람들을 소로 만들었다. 이름하여 '새벽소'



 오랜 시간 부엉이로 살았다. 늦게 퇴근하다 보니 집에 와도 바로 잠들지 못했다. 미처 끝내지 못한 다른 일을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거나. 딸아이가 어릴 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오는 학생들과도 수업을 하느라 자정이 넘어 집에 오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늘어갈수록 엄마를 기다리느라 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딸도, 딸을 재우고 다시 무언가를 하다 새벽에야 잠자리에 드는 나도 심신의 건강이 나빠지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대로 지내다간 누구 하나 잡지 싶어 고2, 고3 수업을 줄였다. 그럼에도 습관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가끔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잠들어 버리기도 했지만, 씻고 자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채 잠들어 그런지 자정 전에 깨버린다. 그렇게 새벽 시간, 홀로 깨어 있을 때면 낮동안 저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외로움이 불쑥 몸집을 키운다. 세상에 나 혼자인 듯한 기분에 무엇이든 해도 될 것 같은 자유를 느끼지만, 어린 시절 낮잠을 자다 깼을 때 살짝 뜬 눈에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세상처럼 쓸쓸했다. 영화 < I'm legend >의 주인공 윌 스미스의 마음이 그랬을까. 그런 이유로 새벽에 깨는 일을 싫어했었다.





 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다. 사람 안 바뀐다는 말이 참인 명제인 듯 통용되지만, 그건 잠깐의 노력만으로 변화를 못 느낀 사람들이 금세 포기해 버리고는, 포도를 못 따먹은 여우가 '저 포도는 분명 실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포기를 합리화하느라 만들어 낸 말일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 '변화' 이기에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어 주는 사람은 분명 귀인이다. 새벽반은 물론 운동반, 프리독서방, 쓰는 독서방, 지역방 등 소모임을 떠나 동기로 묶인 많은 사람들이 내겐 귀인들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의 습관이 바뀌고 있기에 새벽 기상이 조금 더 크게 와닿을 뿐. 누구도 확인하지 않지만 하루를 잘 살고 싶어졌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쓰는 연습을 한다. 아직 착 달라붙은 옷이라기 보단 그저 천에 가깝지만 차근차근 내 몸에 맞춘 옷으로 만들어가 보려고 한다.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보람으로 채워질 때까지.






본문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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