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했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거든요.
ㅡ《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고1, 학교 맞은 편의 시립도서관에 자주 다니던 나와 친구들은 시험기간에도 곧장 열람실로 직행하기보다 서고의 각자 좋아하는 분야 앞에서 어슬렁 거리기 일쑤였다. (열람실에서 교과서나 문제집을 펴놓고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이 달라졌을까) 1년 가까이 내가 놀던 공간을 눈여겨보았던 친구가 생일선물로 책을 선물해 주었다.이름하여 <윤방부 교수의 긴급 건강 진단>. 당시 우리나라에 유독 본인이 의사(?)인 환자들이 많아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가정의학과의 창시자격인 교수는 건강에 관한 민간요법이나 미신과 같은 내용들이 왜 잘못된 것인지, 어떤 증상에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테마별로 나누어 일화와 함께 설명했다. 생일 선물로 누가 이런 책을 선물해주나 싶겠지만 받았던 선물 중 마음에 드는 하나였다. 지금 보니 무엇보다 책 값에 세월이 흐름을 느낀다. 6000원!책마다 다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이 정도 내용에 세 배는 족히 받을 것 같다.
대학을 다니던 때도 여전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무심결에 지나가던 사람도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 갔다. 피부가 벗겨진 채 목 안쪽의 각종 조직들이 드러나 있거나, 모근이 주욱 나열된 두피가 선명한 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등의 해부학책이었으니까.
올해 82세로 현 연대 의대 명예교수인 윤방부 교수,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셨다고.
훌륭한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겠다거나 하는 인류애 가득한 그런 생각은 아니었다. 재미있었고 신기했고 한 번 보면 며칠이 지나도 그림과 글들이 기억날 만큼 그저 좋았다 의학이. 덕분에 중고등 내내 과학 과목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점수를 얻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듣는 그대로 머리에 박히는 기분이랄까. 독서의 힘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관찰소녀였던 것 같다. 초저녁, 엄마가 시키는 심부름에 동네 슈퍼를 다녀오는 길이면 늘 나만 따라다니는 달님이 신기했고, 시원한 음료가 담긴 컵 표면에 생기는 액체 방울은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혹시나 컵에 작은 구멍들이 있어 밖으로 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왜 음료와 색이 다른 것인지, 특별한 냄새와 맛도 없으니 여러 다른 음료를 담아 놓고 다시 확인해 보기도 했다. 또, 엄마에게 물었을 때 오렌지와 귤은 비슷하다는 답에 직접 귤을 짜서 만든 즙과 오렌지 주스의 색을 비교도 해보았고, 어린 나이에 소근육이 일찍 발달했었는지 과일 좀 깎는다던 나는 아무리 조심히 깎아도 복숭아의 표면에 칼이 지나간 흔적이 남는데, 왜 캔 속에 들어있는 황도에는 껍질을 깐 아무런 흔적이 없는지 궁금했었다. 웬만한 내용들은 조금 더 자란 뒤에 알게 되었지만, 겁 많고 소심했던 나를 한참 괴롭게 했던 일도 있다. 병원 놀이를 한답시고 수은체온계를 간호사마냥 털다 체온계의 구부를 모서리에 부딪혔는데, 깨진 체온계에서 쏟아져 나온 은색인 물이 휴지에 닦이지 않아 빗자루로 쓸어 치우고는 왜 그러는지를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한동안 답답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대 정문 근처, 가득한 현미경.
자신만만하게 화학과 물리를 선택했던 수능에서 평소 모의고사 점수보다 많이 낮은 성적을 받고는 아빠의 재수 제안에도 미련 없다 생각하며 IT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꿈에 미련이 없을 리가. 주전공 과에서는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 혹은 화학공학 등의 수업을, 그것도 가끔은 3학년 과목을 일반교양과목으로 듣고 다니며 그나마 아쉬움을 달랬었다. 과목 담당 교수가 운영하는 랩(Lab) 실의 그들을 이겨먹었다고 욕을 진탕 먹어가며. 유전공학과 교수님은 첫 시험을 본 후 1학년이던 나를 따로 부르시기도 했었다. 전과(轉科) 제안과 함께.
결혼을 하고도, 로또 1등이 되면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에 누군가는 *PEET시험을 지원해 주겠다 제안했지만, 아직 배가 덜 고팠고 자존심을 내세우던 20대 후반의 나는 *MEET시험을 알아봤었다. 시험을 위한 책도 찾아보고, 도전이라도 해보자 했지만 의전원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 원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없어졌다. 결혼까지 한 마당에 공부하자고 다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MedicalTimes 2011년 6월14일 기사 중
보통의 나는 안전 및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큰 사람이라 변화 혹은 남들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마주하기 싫어 가던 길을 그대로 간 것뿐이지만, 그렇기엔 몇 번의 기회라면 기회였을 것들을 잡지 않았던 대가로 40대가 된 지금까지 후회를 한다.
76세 때 시작해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여 점의 그림을 남기신 모지스 할머니의 말씀처럼 도전에 있어 늦은 때란 없다는 것에 깊이 동의하지만, 어떤 일에는 때가 있어 그 시기를 지나면 의욕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도 있음을 인생을 통틀어 깨닫는 중이다. 그렇기에 나와 함께 해왔던 학생들에게는 그 누구의 말보다도 자신의 마음속 말을 제일 먼저 들으라 강조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다 보면,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어린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나의 입을 통해 누군가가 해주는 말 같았다. 불안이 높은 엄마의 좁은 울타리 안에 사느라 해보지 못했지만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언제든 용기를 내어보라 부추기는 소리처럼.
윤회설을 믿는다 해도 이번 생은 처음이고 한 번뿐이니, 누릴 수 있고 해 볼 수 있다면 더 고민하지 말고 누구든 무엇이든 시작해 보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이만큼 살다 보니 생각보다 기회나 길이 많음을, 사람이 하는 일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단지 시도하지 않았을 뿐! 이란 걸 알게 되었기에.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꿈 많은 40대(^^) 아줌마도 이렇게 시작하고 있으니 혹시 이 글을 보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부려 본다. 지금 하세요!
유튜버 *하와이 대저택 님과 고명환 작가님의 영상 중
*PEET(Pharmacy Education Eligibility Test)
: 국내 약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응시해야 했던 시험.
현재는 2022년 시행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MEET(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
: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 입학하기 위해 응시하던 시험. 현재는 거의 폐지되어 차의과대 의전원만 남았고 MDEET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