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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거실에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by 늘봄 Mar 09. 2025
남의 단점이 보인다는 건, 자기한테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야. 
                                                                    -영화 ‘리틀포레스트2 : 겨울과 봄’
누군가의 단점이 곧 나의 단점이었음을 알았던 적이 있나요? 또는 당신의 단점에 대해 말해주세요.





 태어나서 지금껏 옆에 두고 잤던 아이 덕분에 밤잠을 내리 푹 자지는 못했다. 잠귀가 밝은 탓이다. 아이가 잠꼬대하는 소리에 깨서 토닥토닥해주기도, 때로는 어떤 재미있는 꿈을 꾸는지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신생아 시절 배냇짓하던 때가 생각나 설레기도 했지만, 감정을 느끼느라 뇌가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이불을 차도 깼다. 찬다고 하니 아기 때 그 짧은 다리를 내 골반이나 다리 위로 툭, 걸치던 때가 생각난다. 당황스럽게도 발을 내 얼굴 위로 올릴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와 함께 잠들고 싶었다. 더는 그럴 기회가 없을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커져갔다. 난방비 핑계로 겨울까지만 안방에서 같이 자자고 꼬셨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아기 때부터 했던 잠자리 독서에 길들여진 탓에 같이 누워 책을 읽어야 잠을 자는 아이다. 그 시간이 좋았다. 베개를 두 개씩 받치고 기대어 앉아 평온함 속에서 지혜를 얻는 시간, 아직 품 안에 있는 아이, 아기 냄새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이를 옆에 두었을 때 나만이 느끼는 포근한 냄새. 모든 것이 좋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이와 둘만의 습관에 남편을 초대한 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책을 들었던 그가 읽는 것인지 읽는 척하는 것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아이를 위해, 우리 가족의 문화로 만들기 위해 자기 전에는 휴대폰을 방 한 구석에 있는 바구니에 모아놓고 책을 읽자고 제안했었고, 흔쾌히 들어주어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휴대폰을 들었다. 모바일로 책을 읽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려니 했지만,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아이는 그 나름의 논리대로 아빠만 예외일 수는 없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책을 들었지만 얼마 안 가 주간에 끝내지 못한 어떤 일이 생각났는지 남편은 휴대폰을 다시 들었고, 나와 아이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신경 쓰지 않는 척 아이와 책에 집중하는 날이 늘어가던 어느 날 급기야 그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시간에 대화를 시도했다.


"자기야, 애한테는 책을 읽으라고 하고 자기는 휴대폰을 하면 좋은 본보기가 될까? 내로남불이잖아."


 알겠다던 그는 한 번씩 매트를 거실로 끌고 갔다. 개방감이 있어 좋다며 넓은 데서 혼자 자겠단다. 글쎄. 아이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다가 물을 마시러 다녀온다고 하고 거실로 나가보면 여지없다. 휴대폰 삼매경이라 내가 도끼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였다. 사실 그는 잠자리 독서를 원한적이 없었다. 아이가 생긴 후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나와 달리 짧게는 한 달, 길게는 5년이 넘게 떨어져 있어 혼자 지내던 그에게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전 그의 자유시간을 빼앗은 것이었다. 내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문화가 아닌 것을 욕심낸 죄로 혼자 화를 냈다 단념했다 난리 부르스였다. 

@unsplash@unsplash

 나는 매일 늦은 시각에 잠이 든다. 아이가 잠든 후에 느끼는 자유와 오늘 하루 열심히 산 나에 대한 보상으로 영상을 보기 때문이다. 늦여름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피겨스케이팅 시즌이라 자다 깨서 새벽 시간에 보기도 한다. 해외에서 열리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거나 우회로라도 중계 영상을 찾지 못하면 ISU(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선수들의 점수를 확인하기도 한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선 지 그 정도의 열정은 아니지만. 그 외에도 관심 가는 영상을 찾거나 알고리즘이 가져다주는 것을 눌러보기도 하는데 특히나 쇼츠영상은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 같다. 5분도 안 되는 것들이라 이것만 보고 자야지 했는데 1시간이 훅 가버리기도 한다. 안 좋다고 하는 이유를 직접 실험해 봤다고 우겨본다. 푹 자지 못한 이유로 다음 날 예민해지거나 무기력한 모습이 싫어 웬만하면 자기 전 휴대폰은 집어 들지 않으려고 노력은 한다. 그 노력이 매일같이 이뤄지지는 않아서 문제일 뿐.


 아이 앞에서만은 좋은 본보기의 부모가 되고 싶어 애쓴다고 생각하지만, 욕구를 누르고 산지 13년이 되어가니 어떤 날은 아이가 앞에 있어도 확인할 게 있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본다. 가계부를 쓰기도,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기도, 글감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구독한 유튜버의 영상이 새로 뜨면 음소거 상태로 보고 있기도 한다. 할 일을 끝내기 전에 휴대폰을 보는 일은 안된다는 규칙을 아이에게 적용하면서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아이가 자라는 기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휘두르던 채찍이 남편을 향했다. 나에게는 자주 당근을 주면서. 남편과 떨어져 있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육아의 무게를 이제는 남편도 함께 나눠지거나 나보다 더 노력해 주기를 바라는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강요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또한 나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낸 하루의 보상으로 휴대폰을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이제는 가끔 남편이 매트를 질질 끌고 거실로 나간다고 해도 다정하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해주어야 할까. 

시어머니 아들이 제일 키우기 어려운 것 같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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