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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Jul 05. 2024

감자채를 잘 써는 남자와 결혼해야지

여름날의 감자볶음을 좋아하시나요?



얼마 전 저녁이었다. 다른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남편이

“ 감자채볶음 먹을래?”  하길래


“응 좋아.”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뭘 저렇게 웅크리고 열심히 하고 있나 싶어서 주방으로 가보니 도마 위에는 까만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감자가 뽀얗게 목욕재계를 하고 앉아 있었고 남편은 커다란 손으로 뽀얀 감자를 채 썰고 있었다.


그냥 써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스파게티면 수준으로 얇게.








출처 -  pixabay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감자채가 왜? 그게 뭐라고?



누군가에게 감자채는 그냥 밑반찬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갈비찜보다 특별하다.


복숭아빛으로 물든 나는

뭘 이렇게나 얇게 썰었냐며 나를 이만큼이나 사랑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머쓱 으쓱해하며

“자기 감자채볶음 얇게 써는 거 좋아하잖아.”


라고 말하며 한껏 더 열심히 더 얇게 감자채를 썬다.






그런 남편을 보고 나는 장난기 많은 웃음을 지었지만 사실은 마음이 찡했고 심장이 쿵했다.


이 남자는 이렇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별거 아닌 게 아닌, 사소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소하지 않은 것에서, 이렇게, 내 마음을 흔든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매일같이 미친 듯이 사랑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이렇게 심쿵하는 날도 있다.



당신...

뭐 잘못했어...



빨리 말하지 못할까.


출처 - pixabay



( 얇은 감자채볶음을 좋아한다. 굵은 건 오래 익혀야 하기도 하지만 감자볶음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럴 바엔 감자튀김을 해 먹지. 얇디얇게 채를 썬 감자를 기름을 두르고 정성스럽게 볶아 소금을 조금 넣은 잘 익은 감자볶음의 식감과 맛을 좋아한다. 센 불에서 급하게 하면 설익고, 신경 쓰지 않고 약불에 오래 두어도 바닥이 눌어붙는다. 썰 때에도 볶을 때에도 정성이 필요하다. 대충 해서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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