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 아니 여름의 끝을 잡고
바야흐로...
빙수의 계절이다.
빙수를 좋아하시나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와 싸워야 하는 여름의 끝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린다는 입추가 지난 지도 한참이고,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도 지났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더울 예정인가.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라는데 그때에 맞추어 우리도 노릇노릇 잘 익어가고 있다. 아침과 저녁은 아주 조금 살만해졌지만 낮은 아직 끝나고 싶지 않은 여름이 한창이다.
아가씨 때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땀이 많은 남자친구는 더워도 매운 음식을 먹어도 땀을 흘리지 않는 여자친구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었다. 그렇게 땀을 모르고 살던 뽀송 아가씨는 영혼의 단짝(이라고 생각하자)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주 더운 여름날, 아기가 찾아왔다. 아기가 생기면 체질이 바뀐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인간은 늘 그렇지. 자기가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아~ 그렇구나." 하는 법이다. 덥다. 땀이 난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 덥지 않을 때도 더웠고, 남편이 덥다고 할 때는 더 더웠다. 아기가 있으니 2배로 더위를 느끼는 것인지, 그 해 여름이 유난히도 더웠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만나게 된 땀과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많이 흘리는 사람에 비하면 별 거 아닌 양이겠지만 워낙 없었던 사람인지라 땀이 이렇게 나는 것도 신기했다.
더위를 잘 타지 않던 아줌마는 엄마가 되고 진정한 더위를 알게 되었다. 차가웠던 손과 발이 덜 차고 땀도 나는 걸 보니 체질이 바뀐 게 맞다.
더울 때는 빙수지.
"이든아, 우리 빙수 먹을까? "
"응, 좋아!"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과일도 먹었지만 그래도 허전한 입과 마음은 달달이로 달래야지.
냉동실에서 빙수 한 통과 냉장실에서 시원한 우유를 꺼낸다. 넓은 그릇에 빙수를 뒤집어서 붓고 우유를 넣어준다.
"자기 빙수 먹을 거야?"
"아니."
입이 하나 줄었다. 고맙다.
열심히 숟가락으로 얼어있는 얼음을 부수며 녹이고 있는데 이든이의 손놀림이 시원찮다.
"이든아, 안 하는 사람은 못 먹어."
움찔하더니 열심히 우유를 섞으며 깨뜨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남편이 콘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들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눈독을 들이는 눈빛이다.
"안 먹는다고 했잖아!"
"안 먹을 건데? 나는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
이든아, 그런데 이거(콘 아이스크림) 넣으면 진짜 맛있어."
눈이 마주친 모자(母子)의 눈빛이 흔들린다. 먹잘알 아빠의 말은 틀린 적이 없지. 잠시 망설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난 아빠는 콘 아이스크림 2개의 겉껍질을 모두 벗기고 빙수 안에 담갔다.
"아빠, 안 부수면 못 먹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시 후
아이스크림 빙수는 텅 빈 그릇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 하나 더 먹을까?"
아직 안 드셔봤다면 꼭 드셔보세요. 빙수 하나에 우유 넣고 콘 아이스크림(초코 들어간 것 추천! 요구르트맛도 좋아요) 두 개 부셔서 넣어주세요. 하나는 부족합니다. 두 개를 넣으면 같이 먹는 사람과 서먹해지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냉장고 맨 아래칸에 미숫가루가 있다면 좀 넣어주셔도 좋고 냉동실에 잠자고 있는 인절미나 찹쌀떡이 있어 작게 잘라 넣어 주신다면 파는 빙수 안 부럽습니다.(쪼끔만 부럽습니다)
이 밤의 끝 대신 여름의 끝을 잡고 지나가는 여름을 시원섭섭해하며 빙수를 먹습니다. 빙수를 먹으며 시원함 대신 서늘함이 느껴지면 그렇게 더웠던 여름이 그리워질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