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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샤다이 May 13. 2024

부모

'아기를 보내주세요.'


 사랑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사랑은 단연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어 지켜본 부모의 사랑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웠다. 20년째 누워 있는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에 매주 데리고 오고, 주사를 맞는 시간 동안 연신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어루만져주던 늙은 아버지. 자신의 간을 떼어 아이에게 주고 수술 바로 다음날부터 환자복을 입은 채 소아중환자실 문 밖에서 서성이던 걸음. 괴로운 항암치료로 밤새 토하는 아이를 침대 위에서 끌어안고 함께 밤을 새운 뒤 충혈된 어머니의 눈. 모든 것이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전공의 시절은 항상 피곤했다. 전 날 퇴근해서 기숙사에서는 예능 몇 편 본 뒤 그대로 잠들었는데 또 출근이었다. 피곤은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삐-삐-삐- 기계음이 가득한 소아중환자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간신히 출근했다. 

 "어제 괜찮았어?"

 물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괜찮아 보이냐?"

 전날 당직이던 동기는 어제도 밤을 새운 듯했다. 컴퓨터 옆에 쌓인 과자 부스러기들과 커피잔 그리고 눈가의 그림자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 전 날 밤을 대신 말해줬다. 새벽 1시 응급실로 119가 심폐소생술을 하며 4개월 아기를 데리고 왔다. 영아돌연사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e), 말 그대로 돌 전 영아가 자던 중 원인 모르게 사망하는 것을 뜻한다. 심폐소생술이 계속되었고 다행히 이 아기는 심장이 다시 돌아왔다. 뇌사는 아니었지만 뇌손상이 심했다. 어디까지 회복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평생 장애를 가진 채 누워 지내겠지. 인공호흡기를 단 채 천사같이 누워있는 아기를 바라봤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젊은 아기 엄마와 아빠는 매일같이 면회시간마다 눈물을 흘리고 갔다. 뇌손상으로 호흡이 힘들어 기관절개가 필요했으나 아기의 부모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기관절개를 해야 병실에 올라가고 집에도 갈 텐데 2주가 넘어가는데도 설득하기 힘들었다. 아기를 불쌍히 여기던 주치의를 맡은 동기도 점차 말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제 급성기는 지나 특별한 치료도 없는데 소아중환자실을 차지한 채 시간만 흘렀던 것이다. 

 "오늘은 담판 짓고 올 거야. 이게 말이 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면회시간에 부모를 만나고 온 아기의 주치의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왜? 계속 기관절개는 못하시겠대?"

 "하아. 아기를 죽여달래."

 귀를 의심했다. 상상도 못 한 이야기였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의사에게 죽여달라고 할까? 동기가 전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아기 부모는 젊고 이제 누워서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야 하는 아기는 너무나도 커다란 짐이었다. "죽여주세요."라고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이 이 아기를 키우는 것은 너무 어렵고 아기에게도 이렇게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다며 울었다고 했다. 

 

 '연명 치료 중단'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임종과정이 명백할 경우 치료가 효과 없이 임종과정 기간만을 연장한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적용됐다. 이 아기는 임종과정에 놓여있지 않았다. 평생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고 호흡기를 뗄 수 없을지언정 죽음의 과정에 놓여있지는 않았다. 그 차이를 아기의 부모는 이해하지 못했다. 며칠 전까지 옹알이를 하고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던 자신들의 아기는 이제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하는데 죽음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느껴졌을 테다. 시간이 더 흐르자 아기의 부모는 더 이상 매일 면회를 오지 않았다. 대신 아기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와서 주치의를 붙들고 자신들의 귀한 자식의 앞길을 막지 말아 달라며 울었다. 그것도 부모의 사랑이었겠지.


 주치의는 면회가 끝나면 자리로 돌아와 화를 냈다. 

 "그렇게 죽이고 싶으면 자신들이 데려가서 죽이지 왜 나보고 죽여달라고 해?"

매번 '아기를 제발 보내달라.'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부모에게 아기를 데려가라고 설득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부탁대로 의사가 그 '아기를 보낼' 방법은 없었다. 기관삽관을 제거하거나 인공호흡기를 멈춘다면 죽을 테지만 그것은 살인이다. 의료법 가능한 행위도 아니었고 어떤 의사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이 아득했다. 아기를 사랑했을 텐데. 내가 봐왔던 사랑은 항상 너무나도 커다랗고 아름다워서 모든 것을 내어 주었는데. 이제는 세상 누구도 아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같아 괴로웠다. 아기는 여전히 천사 같았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아기 부모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도 진심으로 사랑해서 아기에게 괴로운 삶을 이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부모의 사랑일 수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계속 이 상황이 괴로웠다. 내가 봐왔던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네가 받아야 할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아기는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기의 부모는 슬프게 울었다.







**모든 이야기는 제가 겪은 실제 환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사자를 특정지을 수 없도록 각색하여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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