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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Nov 06. 2023

3 수술 후 찾아온 불청객들

진통제, 알레르기 그리고 변비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수술 직후 처음으로 고통스러웠던 건 아무래도 통증이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주기적으로 맞았어도 몸을 헤집어 놓은 통증은 쉬이 잡히지 않았다. 약을 여러 번 교체하기도 했다. 장난스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약을 해보겠냐는 우스갯소리도 했던 것 같다.


전에 쓴 글에도 언급했던 흉관, 이 흉관이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생각해 보면 몸에 이렇게 굵은 튜브를 꽂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이걸 꽂은 상태로 눕는 자세도 힘들고, 빠져나가야 할 것들이 빠르게 나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침대 각도를 조절해 앉은 자세로 잠을 자야 했다. 그래서 수술 후기에 항상 ‘목베개’를 언급했고, 주변에 이런 류의 수술을 앞둔 사람에게는 목베개를 꼭 챙기라고 추천했다. 목베개를 낀 상태로 자거나 커다란 쿠션을 턱 아래에 두고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이때의 사진을 보면, 참 짠하다 짠해.


그만큼 흉관을 빼고 자던 첫날은 짜릿할 만큼 참 행복했던 것 같다.


몸의 통증만큼 날 괴롭혔던 건 바로 ‘변비’였다. 늘 소화기관이 예민했던 터라 항상 신경 쓰며 살아오긴 했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수술해서 아파 죽겠는데, 변비까지 신경 써야 하니 말이다. 

수술 후에 소변, 대변이 원활해야 하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화장실을 못 가겠는 것이었다. 각종 유산균 음료, 유제품, 과일들을 말 그대로 ‘처먹었’는데도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관장을 연이어 시도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퇴원하는 그날까지 정말 불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평소에 변비가 없더라도 수술 후에는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너무 끔찍한 기억이다. 내 상반신 너무 불쌍한 모양새였으리라. 가슴 옆에는 흉관, 뱃속에는 숙변.

아마도 이후로 반복되는 변비로 인해 치핵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도 한 트럭이니 나중에 풀어봐야겠다. (내 블로그가 치핵 블로그가 아닌가 싶을 만큼 핫했더랬다.)


퇴원 후에는 수술한 부위가 나아지면서 가렵기 시작했고, 알레르기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수술 부위를 긁다가 다 터져버리게 만들 것만 같아서 병원에 전화했다.

토요일이어서 담당 교수님은 만나 뵐 수 없었고, 같은 과의 강사 선생님을 뵈었다.

내가 필요했던 건 그냥 의사 자격증을 가진 누군가의 현명한 처방이었으니 그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거기서 근무하고 있으면 다 의느님이지 뭐.)

하지만, 어떤 수술을 받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쪽도 꼼꼼하게 상황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일단 부위를 보고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옷을 벗었더니...


"아~ 타투!"


그랬다. 이 선생님은 나를 알고 있었다. 내 수술에 함께 들어갔었던 선생님이었고, 내 수술 부위에 있는 타투가 꽤나 화제였나 보다. 그래서 추가 설명 할 일도 없이 매끄럽게 드레싱을 마무리 짓고, 내가 반창고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적절한 약 처방으로 가려움은 잦아들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의 수술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내 담당교수의 봉합이 어찌나 깔끔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내 몸에는 작게 여러 개의 타투가 있다. 병원에서 옷을 벗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여러 의료진 분들의 호기심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은 타투를 받을 때 아프지 않냐고 물었고, 그런 그들도 타투를 하고 싶어 고민중이라고 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 대답해 주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내 타투는 나의 역사다. 타투에 관해서도 나중에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우스운 해프닝과 함께 수술 부위는 아물어 갔고, 이제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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