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재끼세요.
글 잘쓰게 해주는 수업이 아니었다고? 브런치 작가가 되는거라고?
우리 반장님 말마따나 종착역이 브런치역이었다. 반장님이야 브런치가 뭔 지 모르셨다지만, 난 브런치가 뭔 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에 씌였는지, 그저 글 잘쓰는 법을 알려주는 수업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고민 없이 신청했다. 사춘기보다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 마흔 중반. 뭐라도 하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고, 글이라도 잘 쓰면 어디에라도 써먹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브런치 작가 합격이 메인 메뉴였고, 글 잘쓰는 비법은 사이드 메뉴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브런치 작가 한 번 돼보자.
학생 시절 책도 별로 읽지 않았고, 문학소녀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 또래 친구들 다 보는 순정만화 조차도 별로 보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그냥 그림 잘 그리고 운동 잘 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일기는 미루고 미루다 개학 하루 이틀 전에 몰아서 쓰던. 그야말로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싫어하던 아이였다. 대입 논술도 필요 없는 디자인전공이라 글쓰기 공부를 전혀 해본적도 없다. 그나마 글쓰기로 자랑할 거라고는 초등학교 6학년 독후감 최우수상. 이걸 어떻게 받았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학생때보다는 오히려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근근이 책을 읽었다. 소설,시,에세이 등은 조금도 관심이 없는 분야였고, 자기계발서나 재테크,육아/교육과 관련된 필요에 의한 실용서를 주로 읽었다. 이런 내가 브런치에서 에세이라는 걸 쓰고 있다.
써재끼세요
이 프로젝트의 스승님, 이은경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이 좋다. 듣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쓱쓱 써재끼는 내 모습. 상상만해도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막상 써재끼는게 삐진 남편 기분 풀어주기보다 어렵기만 하다. 일단 아무거나 죽죽 써야지 마음먹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도, 손가락이 당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릿속 회로가 멈춘 듯 멍하다. 일기장 앞에서 얼어있던 첫째 아이에게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무엇을 써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고, 그나마 있는 몇 조각의 생각도 정리가 안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마구마구 술술 쓰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마트 영수증 줄줄 나오듯 내 글도 시원시원하게 나왔으면.
어느덧 프로젝트 4주차가 지났다. 첫 온라인 미팅때는 설래임과 낯섦이 뒤섞여 있었다. 두번째, 세번째. 만남의 횟수가 거듭되고, 동기 소통방에 말풍선이 쌓여 가면서 낯섦은 기분 좋은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아직 만난적도 없는데 정도 들고, 의지도 되고, 동기들이 그냥 다 좋다. 나만 그런가? 점점 끈끈한 동기애도 생긴다. 누군가에게 기쁜 일이 있으면 더 기뻐해주고,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서로 제 일인 양 힘이 되어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채팅방을 들락날락하며 공감에 또 공감을 한다.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너도 나도 비슷한 삶이다. 아 맞아. 나도 그래. 순발력 있는 출력이 되는 사람은 아닌지라, 댓글은 어쩌다 한 번씩. 그래도 공감 표시는 최선을 다한다. 이제 두 번의 줌미팅이 남았다. 벌써부터 오랜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 만큼이나 아쉽다. 아직 더 배울게 많고도 많은데 고작 두 번의 수업이라니. 2주 뒤면 야생에서 스스로 버텨 나가야 한다.
금요일 줌미팅 시간이면 우리집 세아들은 당당하게 유튜브를 본다. 공식적인 유튜브 시간. 평소 어떻게든 보여주지 않으려는 유튜브. 엄마의 공부를 핑계삼아 미안하지만 허락한다. 아이들은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엄마의 수업 시작을 환영한다. 그래. 너희에게도 나에게도 최고의 시간이다. 수업을 마치면 나보다 더 아쉬워하는 아들들이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우리집 아이들이 더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귀여운 녀석들.
마흔이 되자마자 몸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신호가 왔다. 막둥이를 딱 마흔 하나 되던 해 첫날에 낳고, 산후 회복이 되지 않아 그러려니 했다. 막내가 네 살인 지금까지 한결같이 안좋아 지는 것을 보면 이건 산후의 문제가 아니고, 노후의 문제였다. 햇수로 4년째 결심으로만 운동을 하고 있다. 머리속으로는 매일 10킬로미터씩 달렸다.
“운동하셨나요?”
선생님의 낭랑한 말씀에 상상으로만 하던 운동을 진짜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글을 쓰려면, 아이들을 키우려면, 뭐라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했다. 체력을 키우려면 운동이 필수였다. 요가와 걷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삶이 몇 도씩 변하고 있다.
동기들 어느 하나 바쁘지 않은 분들이 있을까? 그럼에도 어쩜 그리 부지런히들 글을 써서 올리시는지, 정말 대단하다. 그들의 글 하나 하나가 내겐 다 작품이다. 이 분들 그동안 글 쓰고 싶어서 얼마나 손이 근질근질 하셨을까? 글 속 표현들을 보며 입을 떡 벌리게 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어떻게 저런 찰떡같은 표현을. 동기들의 글을 보며 여지없이 쭈구리가 된다. 뭐. 쭈구리면 어떤가. 이렇게 멋들어진 동기들이 생겼는데. 이 멋진 사람들 놓치 않고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 언저리 어디쯤 있지 않을까?
오늘도 효리언니 노래처럼 고민 고민하지 말고, 써재껴야겠다.
이미지 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