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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06. 2023

마흔셋, 갱년기 말고 사춘기

지금을 살아야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없어져요.

  상담선생님은 말 한마디와 작은 숨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계셨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얼굴표정만으로도 수용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편안했고 위안이 되었다.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솔직해지고 싶었고 온전히 발가 벗겨졌지만 수치스럽거나 치욕적이지 않고 시원하고 개운한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상담을 하는 날이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그래도 됐다. 늘 상담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왜 이런 말을 했지?’ 라며 뱉어버린 말들을 곰곰이 생각한다.  상담이란 게 자신이 내뱉은 말을  회상하며 그 의미를 알아내고 주저앉았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자신의 힘으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첫 부모 상담때 하기 싫다고 울기만 했던 모습을 회상해 본다. 결혼 후에도 친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소사에 관여되어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분리된 것은 호적과 몸뚱이뿐.  일만 생기면 아무 때나 몇십 통씩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에 미칠 것 같았지만 꼬박꼬박 받는 나의 유약함에 지쳐있었고, 신랑과 소소하게 데이트를 하려면 죄책감에 시달렸다. 평생 누군가와 싸워본 적 없는 내가 친정일 때문에 생판 모르는 남과 싸우는 싸움닭이 되었고 싸움 후 남은 상처는 혼자서 감내해야 했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신랑도 지쳐갔고 우리 부부사이도 냉랭해졌다.  상담하면서 내 삶을 살아보지 못한 지난날 들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휴대폰만 찾는 신랑도, 엄마만 찾는 아이들도,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친정엄마도, 밥상을 차려 떠먹여 줘야 하는 친정오빠도, 늘 사고 치고 뒷수습하게 만드는 조카도 모두 싫어졌다.

상담 선생님은 말한다.


어머니,
지금을 살아야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없어져요.




  

 지금 처한 상황들을 풀어가고 있는데 지금을 살아야 한다니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상담선생님은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도저히 모르겠다.  상담을 마친 그날 저녁, 집에서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신랑, 아이들은 거실에 편하게 누워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의 흔한 저녁풍경이다. 늘 그렇듯 설거지를 하며 무심하게 고개들 들어 거실 한번 힐긋 보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뒤통수를 가격한다.


 머리가 띵!


 편히 누워서 휴대폰을 보는 신랑의 모습에서 아빠가 보이고 속으로 신세한탄을 하면서 설거지를 하는 내 모습에서 엄마가 보였다. 무표정한 엄마얼굴을 보며 기분을 살피는 1호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내 온몸이 굳어버렸다.

 지금 즉 현재를 살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눈과 마음은 어린 시절의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감정이 지금 상황을 덮어버려 시야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돈 벌면 숨 막히는 집구석에서 멀리 도망쳐 자유롭게 살 거라고 죽도록 다짐했던 내가 지금 친정 옆에서 나의 엄마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뒷 치닦거리 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외로움과 아픔을 지금 내 자식들에게 똑같이 물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1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찾아내야 했던 그것.


드디어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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