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현충일이 있다면 캐나다에는 Remembrance Day (리멤버런스 데이) 가 있다. 미국은 Veteran's Day라고 불리는 날이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전쟁이 끝났음을 알렸던 날, 1918년 11월 11일, 11시를 기리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많은 사람들은 집에 돌아갔으며, 또 많은 군인들의 가족들은 희비가 교차하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기리는 날이다.
Remembrance Day가 시작되기 2주 전인 10월 27-28일부터 사람들은 양귀비 꽃의 핀을 가슴에 달기 시작하고 Remembrance Day날 세리머니에 참석해 기념 화환에 양귀비 꽃을 꽂는 형태로 마무리를 짓는다.
일단 양귀비 (poppy) 핀을 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 날이 다가오면 은행, 관공서, 마트, 학교, 카페, 식당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곳들에서 양귀비 핀을 파는데, 사실 파는 게 아니라 원하는 만큼 기부를 하고 필요한 만큼 양귀비 핀을 가져가라는 시스템이다.
이 기부금은 전역한 군인들, 전쟁에서 싸웠던 군인들 등을 위해 쓰인다. 대부분 전역한 군인들 중 도움이 필요한 군인, 군인 가족들, 군인 사관학교 학생 지원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사용된다.
대부분 $1-2 정도를 내고 2개 정도 가져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5를 내고 1개를 가져가기도 한다. 개수 제한이 없고 이 핀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일에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하기 때문에 양심껏 필요한 만큼 가져가면 된다.
한국에서 살 때 나는 한 번도 현충일 행사나 국가 공유일 기념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글쎄, 그런 기념행사가 각 지역마다 열리지 않는 탓도 있지만, 굳이 일개 시민인 내가 참석할 이유가 없어서라고도 생각했다.
캐나다의 시민의식은 조금 다르다. 본인이 굳이 군인이나 평화를 지키는 직군과 관련이 없더라도 기념행사에 참여해 감사함과 기리는 마음을 보여주는 게 당연한 시민의식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날 기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비우고 이후 본인이 공휴일로 사용하고자 했던 시간을 보낸다.
기념행사/기념식은 대부분 각 도시에서 크게 작게든 이뤄지며 행사장에 갈 때 꼭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poppy pin을 꼭! 꼭!! 달고 가야 할 것이다. 가슴에 양귀비 꽃 핀이 없으면 분명 눈치 가장 많이 보이는 자리가 그 기념행사일 것이다.
- Lest We Forget.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이 캐나다에서 리멤버런스 데이를 기리는 문장이다. 문장 자체가 현대식 영어가 아니라 옛날식 영어이기 때문에 Lest라는 말을 쓴다. 현대 영어로 의미를 풀어보자면"It should not be forgotten"이 된다.
- 한국과는 달리 유니폼을 입고 있는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사람들은 본인의 아이들, 어린이, 노약자가 아니고서 손을 잡거나 본인의 가족들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행동을 취하는 게 제한된다. 유니폼을 신성시(?)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입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유니폼을 입은 이상 본인은 개개인의 한 시민이 아닌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수행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국가 제창을 할 때 제창을 요구하는 기념식도 있지만 제창하지 않는 기념식도 있다. 일반 시민들은 국가가 나올 때 모자를 벗고 그저 차렷 자세로 가만히 있으면 된다. 한국처럼 왼쪽 가슴에 손을 얹거나 무조건 국가를 제창하지 않으니 그 점을 잘 알고 있으면 많이 도움이 된다.
- 캐나다는 영어와 불어 모두 공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를 부를 때 영어와 불어를 섞어서 부른다.
- 기념식에서 조금 생소할 수 있는 것이 The Last Post라는 트럼펫 음악과 God Saved the King이란 노래일 것이다. 첫 번째 The Last Post는 트럼펫 연주로 진행되며 이미 순국한 군인들의 명복을 비는 의도로 사용되는 노래이다. 이 연주가 진행 될 때 군인들은 경례를 하며, 일반 시민들은 차렷자세로 있으면 되고 이후 묵념의 시간을 바로 가질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다.
https://youtu.be/zqieeyF5V-8?si=bPzh2fuydt_tsjOu
God Saved the King은 아직 영국령이라는 명분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영국왕 (이전엔 God Saved the Queen이었다)을 기리며 식을 마무리 할 때 대부분 쓰이는 음악이고 앞의 The Last Post와 같이 군인들은 경례를, 시민들은 차렷 자세를 하면 된다.
https://youtu.be/3LHreZKKI4k?si=1W1FTraXLq19dhuz
나는 한국인인데 내가 Remembrance Day에 참여하고 기념행사에 가야 할까?
굳이 내 직계가족이나 아는 사람들 중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이 없고,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도 없는데 이 날을 굳이 의미 있게 기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양귀비 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유명한 시에서 비롯되었다. 본인의 친구의 무덤 위에 핀 양귀비 꽃을 보고서 지은 시, Flander's Field란 시이고 이 시는 많은 Remembrance Day 기념행사에서 읽히는 시이다. 캐나다는 양귀비 꽃을 다는 이유에 대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에게 교육시킨다.
양귀비 꽃을 다는 이유는 평화를 상징하고 기리기 위함이고, 그 평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함이다. 내가 poppy를 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한국 전쟁에서 싸웠던 캐나다 군인들에 대한 감사함
-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 내 남편이 캐나다 군인이라서
- 파병, 훈련 등에서 같은 공동체에 있는 군인 가족들, 아내들, 그리고 아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Poppy를 달고 Remembrance Day를 기리는 이유는 각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던 본인의 가족을 기리기 위해, 어떤 이는 군 복무 중 다쳤던 본인의 아들을 위해, 어떤 이는 그저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움에 대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어떤 이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기리기 위해... 본인이 Poppy를 다는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캐나다 문화에 스며드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