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감옥에 가두게 된 이야기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밤, 친구는 약속시간이 30분이 지났는데도 올 생각을 안 한다. 눈 속에 파묻힌 신발 속 발가락은 점점 얼어가고, 노오란 가로등 불빛 아래 동동거리며 서있던 내가 있다. ‘어디까지 왔냐고 전화하면 되지 않냐고?’ 1996년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다. 친구는 이미 집을 나왔을 테고 연락할길 없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그 순간이 눈바람 날리는 겨울이 오니 떠오른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조약돌 마냥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삐삐를 만났다. “삐삐 삐삐삑‘ 소리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녹음된 메시지를 확인하던 그 시절. 삐삐에 찍힌 8282(빨리빨리) 486(사랑해) 숫자들로 표현하던 그때 그 감성! 불편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낭만적인 추억이 되었다.
017 번호를 기억하시나요? 무제한 통화 요금제로 유명했던 그 번호. 그 요금제로 풋풋한 대학시절 만났던 남자친구와 밤새 통화하는 추억들을 만들었었다. 물론 지금 내 곁의 사람은 그때 그 017 번호를 함께 쓰던 녀석은 아니지만 :) 그렇게 삐삐, 시티폰을 거쳐 우리들은 핸드폰을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눈이 쏟아지던 밤 가로등 아래서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가 없게 만들어 준 고마운 녀석이다.
핸드폰만으로도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져 만족하고 있을 무렵,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난 스마트폰이 슬며시 내 손에 들려 있다. 그 녀석은 동글동글한 버튼이 가득 들어 있는 애니땡 같은 과거의 핸드폰과는 사뭇 달랐다. 그냥 네모 반듯한 액정만 덩그러니 있고, 너무 심심할세라 밑에 동그란 홈버튼이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똑똑해 보이는 그 기기는 ‘스마트폰’. 전화랑 문자만 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다 되는 전지전능한 기계라 할 수 있다. 그 조그만 전화기에 컴퓨터를 통째로 집어넣어버린 거다.
느려터진 컴퓨터가 부팅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서 인터넷을 할 필요도 없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게 만드는 기기.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고, 화장실까지 따라와서는 나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친구다. 핸드폰 중독 테스트에 꼭 들어가는 질문중 하나가 “당신은 화장실에 갈때도 전화기를 들고 가시나요?‘란 걸 알고는 흠짓했었다.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는 이 초소형 컴퓨터를 나는 참으로 사랑했다. 드라마, 영화도 어제든 볼 수 있고, 이메일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각종 어플들까지 말처럼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특히 빨강색의 옆으로 누운 세모가 그려진 유튜브는 나의 최애 어플이다. 얼마나 똑똑한지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귀신같이 찾아서 대령해 준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영상을 찾아보는 게 아니라 유튜브가 보여주는걸 열심히 보고 있다는 걸. 뭐 그럼 어떤가.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어떤 날은 살짝 으스스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스마트폰에 도청장치가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던 중 한 친구가 자기는 열심히 돈을 모아 클래식 500 같이 모든 게 갖춰진 고급 요양시설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물캐고 아궁이에 불도 때던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도시는 답답해서 시골 가서 자연과 벗 삼아 살 거라고 이야기했던 바로 그날 밤. 유튜브에 클래식 500에서 댄스를 배우고, 실버 모델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다큐 영상이 딱하고 뜨는 것이 아닌가.
단 한 번도 유튜브 혹은 네이버에 ‘노후’,‘요양시설’을 검색해 본 적도 없었는데 친구가 감명 깊게 본 바로 그 영상이 뜨다니. 우리가 말하는 걸 가만히 듣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이런 일과 비슷한 경우는 이후에도 2~3번 있었던 것 같다.
네이버의 뉴스들은 재미있는 제목들로 유혹하고, 82쿡에서는 아줌마들의 생생한 수다를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스마트폰과 동행하며 보내고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으로만 본다면 어쩌면 스마트폰이 내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이지 않을까? 다행인 건 나 같은 사람이 대다수라는 거다. 전철 속의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실은 우리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집에서도 남편과 나 우리 두 사람은 거실에 함께 앉아 있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는 저 멀리 자기만의 안드로메다로 가있는 것처럼. 남편은 참치 뱃살을 끝없이 먹는 현주엽 선수의 먹방을 군침 흘리며 보고 있고, 난 몹시도 좋아하는 인생 드라마 ’ 연인‘을 시청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다 아이들이 ’ 엄마, 핸드폰 그만 보고 나랑 놀아주면 안 돼? 응? 응?‘ 이랬던 순간, 시선은 여전히 전화기에 둔 채 ’응~ 조금만, 기다려줘. 엄마 이거 봐야 되거든 내가 완전 좋아하는 드라마란 말이야‘ 이랬던 내 모습이 생생했다. 아이들은 날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아마도 핸드폰 보느라 바쁜 엄마로 기억하겠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점점 핸드폰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매주 일요일 아침 9시 정각이 되면, 아이폰의 ‘스크린 타임’은 친절하게도 ‘지난주에 비해 핸드폰 사용시간이 1시간 10분 증가하였습니다.‘라는 알림을 알려준다. ’ 헉 하루 평균 5시간을 썼다니. 충격이다. 또 기록을 갱신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시간을 몹시나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핸드폰을 하며 소모해 버린다.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갭이 끝도 없이 우울하게 했다.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얼마 전 장만한 ‘스마트폰 감옥’. 역시 나처럼 의지박약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상품이 있을 줄 알았다. 꽤나 비쌌지만 결연한 마음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동그란 투명 원통에 전화기를 집어 놓고, 시간을 입력하면 절~~ 대 그 시간이 되기 전에는 열 수가 없다. 비싼 감옥을 깨부수기 전에는 말이다. 인터넷이 안 되는 2g 전화기를 바꿀까도 고민했던 걸 보면 내가 핸드폰 중독에서 벗어나고픈 절박함은 진심이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한 것처럼 내 핸드폰 사용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하루에 3시간을 했다고 가정하면(실제로는 더 많이 쓴 날이 많았을 테지만), 1년에 총 1000시간 그리고 약 10년을 이렇게 살았으니 약 1만 시간을 스마트폰에 투자한 거다. 이 정도면 별로 느낌이 안 오겠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계산하면 깜짝 놀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에 잠자고 일상생활을 하는 걸 제외하고 일을 하거나 건설적인 걸 하는 시간은 보통 8시간 정도로 볼 수 있다. 1만 시간을 8시간으로 나누면, 약 1000일 즉 3년의 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무려 3년을 통째로 스마트폰을 하며 보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하고 놀랐다.
심심하고 우울하거나 불안감이 밀려올 때 스마트폰은 내게 효과적인 도피처였다. 0.1초만 지루해져도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피곤함이 몰려올때 전화기를 들고 침대에 누울때의 그 달콤함이란. 이제는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된것만 같은 녀석. 그런 너와 난 작별할 수 있을까?
오래된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분명한 건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이기만 해도 나의 삶은 획기적으로 나아질 거라는 것! 다행인건 벗어날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핸드폰을 하는 것보다 더 재밌는 걸 찾으면 된다는 것. 최근에 책을 읽고, 마음을 글로 풀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 친구를 찾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물론 핸드폰 감옥의 도움도 받으면서 말이다.오래지 않아 이렇게 인사할 날을 고대하고 고대한다.
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
나에게 더 좋은 친구가 생겼거든
그동안 고마웠어. 이젠 진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