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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런 Nov 10. 2023

글을 쓴다는 것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책을 멀리했던 10대, 20대

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 종일 운동에만 빠져 있었고, 부모님의 맞벌이로도 먹고살기 빠듯한 환경은 책을 가까이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두 가지의 핑계 외에도 책을 좋아하지 않는 기질을 타고난 듯했다.) 이어 중학교 1학년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과 전학, 바뀐 환경에 대한 부적응과 그에 따른 공황장애는 내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과 세상에 대한 저항심으로 단단한 갑옷을 만들어 스스로 상처 난 마음을 보호했다. 외부로 향하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소년은 독서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소설은 있을 법 하지만 결국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했고, 수필과 에세이는 타인의 경험일 뿐이었다. 14살의 쇼펜하우어에겐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위로는 어설픈 동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책을 멀리한 채 방향성 잃은 돛 단 배 마냥 풍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얼음판 같은 불안함 속에 오랜 세월을 버티며 살아간다.   

  


책을 알게 된 30대

“이 책 읽어볼래?”

2019년 겨울, 아내가 갑자기 쉽고 재밌게 술술 읽힌다며 한 권의 책을 권했다. 회사 소속이 아닌 독립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위해선 책이 도움이 될 거라는 아내의 선견지명이었다. 37년을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온 나였지만 자칫 위험한 도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출퇴근 시간 휴대폰 대신 책을 손에 들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테블라드 저) 중에서

“나 책 읽는 사람이야~!”

스스로 뭔지 모를 뿌듯함을 어깨에 올려두고 다니길 수개월, 어느 순간 출퇴근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이따금씩 책을 읽기 위해 모두 잠든 밤 휴대폰 조명을 켜기도 했다. 수면제 기능으로 한정되어 있던 책이 각성제 역할을 수행하게 될 줄이야.. 주말엔 시간이 날 때면 서점, 중고 서점 방문을 하루 스케줄에 포함시켰고, 읽은 책들이 책장에 채워질 때마다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삶의 여유는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손 때 묻은 책들이 늘어날수록 마음의 여유도 함께 늘어갔다. 독서를 통해 배운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자칫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기 쉬운 과거의 상처에 차분함이라는 보호막을 덧대어 주었다.



글을 쓰는 40대

하루 1시간가량의 독서가 습관화되어 가던 2023년 봄.. 문득 글을 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업무의 일환으로 보도자료, 안내자료 등 종종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어 길고 짧음을 떠나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선 이런 주제의 글은 어떨까? 이런 플롯의 소설이라면 어떨까? 나도 유려한 문장 혹은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누군가의 글을 통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경험과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이 될 수 있을까? 와 같은 호기심이 민들레 씨앗처럼 퍼지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 신청해 볼래?”     

2023년 가을, 아내가 글쓰기를 위한 걸음마를 제안한다. 이 또한 삶의 흐름이 데려다 줄 어떤 미래를 위한 아내의 선견지명이었을까? (잠이 많은 아내는 혹시 꿈속에서 무엇인가를 보는 것일까?) 어찌 되었건 삶의 흐름 혹은 전지전능한 아내의 계획에 따라 글쓰기에 대한 호기심의 씨앗을 현실적인 계획으로 싹 틔우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그동안 겪었던 일들과 읽었던 책들 그리고 고민했던 경험들 온갖 생각들을 이리저리 돌려 깎고 다듬어 가며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하나의 글을 조각했다. 프로젝트의 과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쓰고자 했다면 절대 완성하지 못했을 글이었다. 조잡하고, 실수 투성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경험과 생각을 모으고 여러 차례 퇴고를 한 끝에 한 편의 짧은 글이 세상에 태어났다.      


작가로서(글을 쓰는 순간은 모두가 작가라고 하기에 부끄럽지만 스스로 작가라고 칭해보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치곤 생각보다 깊은 울림이 마음에 일렁였다. 스스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던 것이 아닐까?라는 물음표가 생소함과 동시에 슬픔과 안쓰러움으로 다가왔다. 단단한 재료를 어설픈 솜씨로 조각하는 고된 작업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어떤 관념으로 10대, 20대, 30대를 보냈는지, 지금의 나와는 무엇이 다른지 사색하는 기회였다. 또 책을 읽으며 접했던 철학적 사고들을 되새김질하며 지난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비추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무엇보다 값진 경험은 글을 쓰는 순간, 마음과 생각을 되짚어 보며 문장으로 재생산하는 동안 그 많던 잔소리꾼들이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항상 주변을 맴도는 불안과 걱정들을 물리치고자 명상, 운동, 필사, 손글씨 연습 등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쉽사리 머릿속은 비워지지 않았다. 불안과 걱정,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끈질기게 마음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단어를 생각해 내기 위해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눈을 감은 순간 도저히 몰아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잡념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명상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예상치 못한 너무나도 큰 수확이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글 쓰는데 할애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나를 찾고, 깊이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모습의 '명상'이었다.      


*감히 작가라고 칭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이은경 선생님과 조교님, 매니저님,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주시는 2기 동기님들 그리고 독서와 브런치프로젝트를 제안해 준 탁월한 선견지명의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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