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42.195km 그리고 사색
첫 도전 그리고 절반의 성공
마흔 살이 되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 기록을 갖게 되었다. 기록의 좋고 나쁨을 떠나 30km 이상 달려 본 경험 없이 ‘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만으로 감행했던 첫 도전이었던 것과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음에 완주 메달을 받아 혼자 쩔뚝거리며 대회장을 나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쨌든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감격스러움은 스스로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 하프 코스(21.1km) 완주를 목표로 러닝 연습을 시작했고, 나름의 노력으로 3개월 후 쉬지 않고 20km 정도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초보임을 증명하듯 이름 모를 자신감이 나를 등 떠밀었고, 겁도 없이 첫 대회를 풀코스로 신청했다. 무지로부터 오는 용감함이었는지, 어차피 힘들 거라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보자는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 앞에서 물러서고 싶진 않았다. 주말 새벽 5시 30분 마라톤 클럽 사람들과 12km ~ 18km, 사랑하는 가족이 잠든 후 밤 10시 넘어 10km ~ 21km, 틈틈이 집 주변 및 학교 운동장에서 5km 등 주 1~2회 정도의 훈련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대회 당일.. 30km까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이상의 거리를 뛰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29km까진 평소보다 빠른 Sub4(3시간 59분 59초 내 완주)를 여유 있게 달성할 수 있는 페이스(5분 11초/km)로 달렸다. 욕심을 부린 탓인가, 그렇게 30km를 지나는 순간 양쪽 허벅지가 "조금만 더 뛰면 근육 경련을 일으킬 거야! 그만 멈춰!"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10km 남짓만 더 달리면 목표했던 완주 아닌가.. 꼭 완주하고 오라는 아들의 응원에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었기에 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근육 경련이 슬금슬금 시작된 이후로 뛰다 걷다를 반복하고, 틈틈이 스트레칭으로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 많은 다리 근육을 달래 가며 나머지 10km를 달렸다. 35km 지점을 지나며 시간을 확인했을 때 남은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야만 3시간 59분 내 완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목표 기록(Sub 4)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근육 경련이 시작되면 완주도 포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4시간을 넘게 달려 피니쉬 라인을 넘었다. 4시간 10분 29초.. 완주하는 것과 동시에 내심 4시간 안에(Sub4) 완주해 보자는 목표도 갖고 있던 터라 첫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결국 절반의 성공으로 끝마쳤다.
마라톤은 결국 OO과의 싸움
35km 지점 이후 뛰다, 걷다를 반복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렸다. 처음엔 추월당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대해선 승부욕이 강했던 터라 지는 걸 싫어했다. 2015년도 동호인 배드민턴 대회 준비 중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겪은 이후로는 승부에 집착하기보단 운동 자체를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즐겁게 운동하고 있지만,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다리가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Sub 4 페이스 메이커와 함께 달리고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도 나를 지나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갔다.
목표한 기록 달성은 다음으로 미룬 채 완주를 위해 멈추지만 말자는 생각이 유일하게 머릿속에 남은 순간, 나를 앞질러간 사람들 그리고 내 뒤에 남은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달리고 있을까? 하는 물음과 동시에 그들 모두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달리기를 업으로 삼은 엘리트 선수들을 제외하면 마라톤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와의 경쟁이 아닌 스스로의 목표를 향해, 지난날의 나를 뛰어넘기 위해 달린다. 출발선을 지나는 순간부터 결승선에 도착하는 순간까지의 경쟁 상대는 대회에 참여한 1만 명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자신뿐이다. 누구는 OO 시간을 기록했던 나를, 누구는 완주하지 못했던 지난 대회의 나를, 누구는 당장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나를 그리고 누구는 도전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나를 넘어서기 위해 육체 그리고 내면의 한계와 조용하고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것이 스스로와의 대결임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호흡에, 심장 박동에, 내딛는 발에 집중하게 되었고, 주변 풍경과 다른 선수를 바라보던 시선도 당장 한 발 한 발 달려야 할 눈앞의 도로와 멀지 않은 결승선만을 향했다. 육체와 의지의 한계에 다다른 순간 오히려 높아진 집중력으로 잡념이 사라졌다.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하면서 잡념이 사라졌던 것과 유사한 또 다른 방식의 명상을 경험한 것이다.
그렇게 목표를 향해 마지막 5km를 달리는 동안 무언가 뭉클함이 가슴속에 일렁이면서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삶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