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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런 Nov 17. 2023

글 쓰는 아저씨의 꿈같은 이야기

편안함에 이르렀나?

새벽 6시 30분.. 눈치 없는 아침해가 세상을 깨우려 할 때 좀 더 편히 쉬라고 토닥이듯 하늘을 덮고 물러날 줄 모르는 어둠이 고맙게 느껴지는 겨울 초입의 이른 아침.. 잠이 들긴 했었는지 뒤척이기만 하다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밤 잠을 설쳤음에도 눈이 일찍 떠졌다. 정확히 말하면 밤새 기분 좋은 설렘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아침을 기다렸다.


”자기야 일어나! 다녀와서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서둘러야 해! 내일도 바쁘잖아~! “


자도 자도 졸리다 던 아내가 이미 깨어있는 나를 재촉하는 게 낯설지 않은 날이다. 매일같이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는 아들도 오늘만큼은 기상부터 준비까지 척척 해낸다. 이상하리만큼 부지런한 둘째는 이미 입을 옷까지 골라 놓았다. 보육원에 가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다려지는 날이 되어 있었다.

내일 있을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감사함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이번달은 한주 정도 이른 방문 일정을 잡았다. 3년 전부터 우리 가족이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작은 규모의 보육원. 올해 최저 기온을 갱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혹한을 한 달여 앞둔 시기엔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한 두툼한 옷가지들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가난은 겨울에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연을 맺어 온, 이제는 가족 같은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마음이 쓰여 올해엔 평소엔 구경도 잘하지 않는 브랜드의 매장에 들러 소위 말하는 ‘등골 브레이커’ 여러 벌을 구입했다.




5년 전 아내의 권유로 시작했던 작가 활동이 마음의 여유뿐만 아니라 생활의 여유도 가져가 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불안과 걱정을 다스리고, 순간순간의 작은 행복으로 삶을 채우며 지난 5년을 그 어느 때보다 안정을 느끼며 살았다. 남은 삶도 편안한 파스텔톤으로 색칠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조금씩 물들어감에 충분히 감사했다. 작가 활동을 통해 버는 돈은 많고 적음을 떠나 내 삶의 그릇에 굳이 담지 않아도 되는 과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풍족하다곤 할 수 없지만 주말엔 밥솥을 쉬게 해 주었고, 아이들은 종종 해외여행의 추억도 쌓고 있다. 우리 부부는 기념일이면 호캉스를 즐기기도 한다. 궁핍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두 번째 선물은 마음의 흐름에 따라 더 필요한 곳에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브런치 작가 수입을 포함한 글을 쓰는 일로 버는 돈을 모두 보육원에 기부하기로 한 것은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몇 안 되는 완벽하게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사실 기부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무형의 어떤 것을 더 많이 얻고 있어 어찌 보면 기부를 통해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이 순항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째 아들은 보육원만 가면 아이들에게 맏형 같이 때로는 막내 동생 같이 최근 집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밝은 웃음으로 일관한다. 어느덧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최근 존재에 대한 고민과 자아를 찾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30여 년 전 내가 겪었듯이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거친 후 에야 격렬한 내적, 외적 변화가 끝날 것임을 알기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무언의 신호로 소란스럽지 않은 든든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보육원 아이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비추어 보면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한 단계 성장한 것이 아닐까? 나와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이미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잘 헤쳐나가고 있는 것 같아 곧 보육원에서의 밝은 웃음을 집에서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누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8할이 글쓰기였다. 독서가 30대 후반 남은 인생의 항로를 정함에 있어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해주었다면, 글쓰기는 그 항로를 크게 이탈하지 않고 항해할 수 있도록 키를 잡아 주었다. 정확히 5년 전 11월 10일..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내기 위해,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었다. 막연한 다짐이었지만 진심 어린 노력은 삶의 흐름과 함께 더 이상 막연하지 않은 삶의 중심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내일은 또 다른 설렘이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는 날이다. 그리 대단한 집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곳이다. 경기도 외곽 작은 단지로 조성된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저층에 40대 중반인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아파트. 굳이 이 아파트를 고집부린 이유는 꼭대기 층이 복층으로 되어 소박하지만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옥상 야외 테라스의 존재였다. 비록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은행과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이 집에 사는 모습을 오랫동안 그려왔던 우리 가족에겐 내 집 마련 그 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지휘하는 어스름한 시간, 푹신한 의자와 모던한 스타일의 테이블, 행복한 결말의 책과 그에 어울리는 청량한 음악이 공존하는 우리 집을 상상한다. 그리고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기억하고 있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며 잠이 든다.

“편안함에 이르렀나?”

“그래!”




“자기야. 일어나 지각하겠어”


깊은 잠에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깨워주기 귀찮다는 듯 늘어지는 아내의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떠 핸드폰을 확인한다. 7시 30분.. 지각이다. 23년 11월 10일 금요일.. 오늘은 전시회 개최를 위한 마지막 서류 작업을 마쳐야 하는 바쁜 날이다. 허겁지겁 일어나 면도와 양치로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꿈이었다. 하지만..

그저 대뇌 피질 세포의 활성화에 의한 단순한 꿈(Dream)이 아닌, 이뤄내고 싶은 현실적인 꿈(Vision)이었다.


급한 마음에 출근 준비는 우당탕탕이지만, 지난밤 꿈속에서 그렸던 5년 후의 지극히 평범하지만 안정된 공기와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진 일상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인 오늘, 꿈이 이끄는 대로 읽고 쓰는 삶을 다짐해 본다.


급한 출근길에 까지 내린다.

그렇다면 오늘 무지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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