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 나 Apr 03. 2024

사랑을 위한 작은 소묘

누군가 나에게 사랑의 형태를 그려보라면 주저 없이 너를 그려낼까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그러다가도 널 완벽히 묘사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아서 백지를 내겠다고 결정했다. 그림을 대신하여 글로 그려보는 오늘의 소묘는 오로지 너, 너에 대한 이야기다.


넌 우선 귀엽다. 아니 어쩜 강아지가!! 이렇게나 귀엽지? 모든 반려동물은 반려인의 눈에만 제일 이뻐 보인다는 말로 이성을 부여잡지만 아니 솔직히 우리 강아지 너무 귀엽지 않나? 이렇게 귀여워서 될 일일까? 어떻게 도대체 세포 분열 과정에서 뭘 겪으면 저런 귀여움이 나오는 거지? 어떻게 낮에도 귀엽고 자다가도 귀엽고, 밤에도 귀엽고 그냥 다 귀엽지? 하루종일 봐도 지겹지 않은 귀여움이 실존한다니! 솔직히 길 가다가 네 사진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자랑하고 싶던 마음이 들던 순간이 많았다. 저기요 우리 강아지가 이렇게나 귀여워요!!! 쉴 틈 없이 백번은 말해볼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팔불출 진짜 싫어했는데 어느새 난 팔불출이다.


넌 짧은 털을 가졌지만 자다 일어나면 묘하게 그 털들이 눌려있다. 너의 볼은 물을 마셔도 젖지 않아서 보송하고 보들하다. 기분이 좋으면 뒤로 눕는 귀는 뒤에서 보면 양갈래 머리를 한 모습 같다. 잠이 오면 강아지도 잠투정을 한다는 걸 알려준 너는 낑낑거리는 모습조차 밉지 않다. 자다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팽팽 뒷 발길질을 하는 너의 뻔뻔함마저도 살풋하다. 사랑을 담아 부르면 폭 몸을 기대 오는 네가 따끈하다. 동글하고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면 퐁퐁 마음속에 샘이 생긴 것 같다. 왜 사랑스럽다는 말은 사랑스럽다는 말이 최선일까. 매분 매초가 사랑스러운 널 묘사하기에 글솜씨가 너무 좋지 않다. 아, 책을 좀 더 읽어볼걸


나는 이전에 강아지 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별로 답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내 가족인데 종이 뭔지 왜 중요한가? 애초에 우리 편하자고 만든 분류를 너에게 감히 붙이고 싶지 않은걸. 그런데 치와와의 이름값이란 게있더라. 넌 아주 앙큼하게도 이름값을 하는 강아지였다. 편의에 따라 널 분류하고 싶지 않지만 너의 앙증맞은 분노를 설명하는 데에는 치와와라는 말만 한 것이 없었다. 너 덕분에 강아지 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이제 제법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 되었다. 종종 장난스럽게 널 부르면 넌 뉘앙스를 알아먹는 건지 기대에 부응할만한 앙증맞은 분노를 내보인다. 네가 아마 도베르만이었다면 우리는 그런 장난도 못 치지 않았을까? 어쩜 그렇게 작은 몸에서 무시무시하고 흉폭한 분노가 나올까. 아휴 무서워라.


집에서 당당한 넌 밖에만 나가면 어쩜 그리도 겁이 많은지. 왜 부모님들이 대답도 못 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쉴 새 없이 하는 건지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겁 많은 네가 봄볕을 봤으면, 꽃도 좀 구경했으면.. 다른 강아지랑 평등한 인사도 좀 해봤으면 좋겠어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더라. 심지어 다른 강아지한테도. 상대편 반려인이 친절한 덕분에 나는 그 분과 사람으로서는 아니지만 강아지로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은 아마 강아지가 옆에 없는 인간이실 때는 그렇게 높은 목소리는 아니시겠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귀여운 목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으셨을 거야... 물론 그건 나도다. 그 노력을 다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네 언니가 산책하다가 간혹 새된 소리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건 너로서 대화를 나누는 거니 협조 바란다.


네 이름만 불러도 기분 좋은 티를 내는 너의 행복은 뭐가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다. 네 이름이 뭐라고, 귀찮아서 누워있으면서도 꼬리를 살랑거리는 투명함에 무심코 부르던 목소리를 고쳐 애정을 잔뜩 담아 불러본다. 네가 좋다면 나도 좋은 거다. 언젠가 네 언니들끼리 네가 만약에 이름을 직접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이름을 골랐을까 말해봤었다. 이름 선택지로 보들이, 몽순이, 예삐 등등 존재하는 모든 마음들을 막 내어보다가 그 어떤 이름이라도 넌 좋아해 줄 것 같아서 지금 두 자의 이름이 너무 소중해졌다. 그 이름을 네게 붙여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이름이든 네가 가져서 중요한 거란 걸 알게 되었다. 의미가 생긴다는 건 그런 거였다. 난 너와 한 글자라도 겹치는 이름의 다른 친구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네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는 노르스름하고 따끈한 냄새가 난다. 냄새에도 온도와 색채가 있다니. 과장이 아니고 넌 좀 특별한 것 같다. 네가 싫어해서 몰래 하고 있지만 자고 일어난 자리 냄새를 맡으려고 난 네 작은 언니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지금까지는 내가 좀 더 빨랐다. 운동을 좀 한 게 유일하게 뿌듯한 순간이다.


햇볕 아래에서 눈을 자물시게 뜨는 넌 유독 불거진 눈과 볼이 매력적이다. 햇볕을 짧게 반사시키는 너의 털들과 반짝이는 외양, 번지는 듯한 붉은 콧잔등이 눈에 선하다. 입술은 완벽하게 ‘ㅅ’ 모양이라 또 얼마나 신기한지. 털이 짧아서 그런가 네 입모양은 이상하게도 표정 같다. 변태 같지만 네가 간혹 짓는 어이없다는 눈빛과 심통이 난듯한 입매를 정말 좋아한다. 귀여운 자식 고작 간식 작은 것 준 게 온 얼굴을 써서 표정을 지을 일인지. 아주 어이없게 귀엽다.


톡 튀어나온 눈을 두 발 위에 얹고 쌔근쌔근 자는 모습을 보면 그 작은 얼굴에 눈이 얼마나 무거워서 저렇게 자는가 생각하곤 한다. 또 어쩜 털은 저렇게 완벽하게 보드랍고 윤기가 나는지. 참기름을 바른 듯 맨질거리는 너의 털이 눈 주변에만 안 난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누구라도 10초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무진장 귀여우니까.


넌 엄청 작은데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다. 밥 먹는 건 다 목소리로 가나..? 힘껏 짖는 널 안고 진정시킬 때면 귀가 먹을 것만 같다.  쬐깐한 네가 짖은 게 하필이면 날 지키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란 걸 느끼면 먹먹해진 귀를 문지르면서도 뭉클하다. 근데 몽이야 진짜 그 아저씨는 그냥 좀 보행자로 가까이 자전거 탄 사람이었어.. 진짜 언니한테 뭘 어떻게 한 사람이 아니었어.. 덕분에 걸어 다니며 사과하는 사람이 되었어 언니가.


밥을 다 먹고 칭찬해 달라며 밥그릇을 소리 나게 긁어대는 넌 지나치게 맹랑하다. 당당하게 칭찬을 요구하다니, 심지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든 너에게 관심을 돌릴 거라 장담하는 모습이 아주 깜찍하다. 우리를 너무 잘 아는 게 분명하다.


본가로 가면 넌 다짜고짜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와 자랑한다. 놀아줄 테니 달라고 하면 절대 놓지도 않으면서 자꾸 자랑은 왜 하는 걸까? 그간의 기쁨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사실 넌 별 생각이 없어 보이긴 하는데 그냥 내가 의미 한 번 부여해 봤다. 나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바쁘게 장난감을 찾으러 가는 토독툐독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너는 내가 얼굴을 파묻고 우는 것 같으면 팔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때면 너는 힘껏 웃는 흉내를 내는 것만 같다. 꼬리를 흔들고 얼굴을 가린 손을 긁으며 끝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나보다 몇 배는 작으면서 나보다 더 큰 위로를 전하는 넌 아무래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것 같다.


네가 잠꼬대로 젖 먹는 시늉을 할 때면 꿈에서나 만날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가 가족이 되겠다는 선택에 정작 너의 의사가 없었다는 걸 네 보드라운 꿈을 통해서 깨달았다.  우리의 첫 만남은 우리의 기쁨이자 너의 슬픔이었겠구나. 절대로 위로할 수 없을 이별에 자는 너를 깨우지 않도록 아주 조금 네 곁에 붙어 앉아 이불을 덮었다. 그 밤의 꿈에는 그리움 없이 행복함만 있길, 꿈에서는 엄마와 네가 아주 오래 이별을 유예하고 있길 바라는 수밖에. 꿈을 벗어난 낮의 일과는 외롭지 말아라. 사랑 속에서 잠들어라. 깨어나는 순간도 서럽지는 말아라.

네가 아프고서 우린 네가 아프다는 사실을 담담히 말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독한 약을 매일 챙겨 먹고도 이따금 아파하는 널 보면서 난 강아지를 버리는 사람들을 한 순간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를 아끼는 마음을 미루고 미루어서 길가에 핀 꽃도 사랑할 수 있었는데 고작 더 이상 귀엽지 않고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이 그 모든 사랑을 포기할 이유라니. 그들은 정작 자신이 이 세상과 사랑으로부터 버려질 거란걸 모르는 것일까.


장난처럼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네가 우리가 죽기 딱 3일 정도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족이 없는 외로움을 경험하는 건 네가 아니라 우리여야만 한다. 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건 기쁨보다 슬픔을 떠올릴 일이 많다는 걸 말간 네 눈망울을 통해 느낀다. 밀려올 상실을 알면서도 한 존재를 끌어안을 용기를 내야만 하는 일이란 것을 너의 가는 숨소리를 통해 떠올린다. 외로움을 감당할 다짐을 내어보는 것이 사랑의 한 유형이라는 걸 네 체온을 통해 생각한다. 상상가능한 모든 최악의 변수 끝에서도 끝내 떠오르는 건 오직 너. 너뿐이다. 네 작은 몸이 우리에게는 이 세상 모든 사랑의 광대한 편린이다.


넌 끝내 다 묘사할 수 없을, 사랑의 형태이다. 우리가 가질 마음이 무한한 사랑이길 바라 글로도 그림으로도 이루 다 해낼 수 없을, 너를 위한 소묘는 우리가 그릴 사랑의 기초, 이 우주의 사랑을 위한 소묘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무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