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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게 Nov 15. 2023

5억 줄게 손주 다오

현금 5억 날린 썰 푼다.

"시부모님께서 손주 보고 싶단 말씀 안 해?"


결혼 7년 차에 아직도 아이가 없는 데다가, 남편이 외아들에 2대 독자라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시부모님이 나를 가만 냅두는지(?)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가만 냅둔다. 


우리 시부모님은 참 세련됐다. 

1980년대 그때 그 시절 서울- 명문대 경영학도 아버님과 아름다운 미대생 어머님은 미팅을 통해 만났다.

두 분은 영화 <쎄시봉>에 나올 법한 낭만 데이트를 즐기며 연애결혼을 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내 남편-만 낳아 번듯히 키우며, 주말이면 테니스, 수영,  골프, 등산 등 건강한 여가 생활을 즐겼고, 젊어서는 물론 지금도 시간이 나면 다양한 나라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지방에서 맞선으로 만나, 아등바등 맞벌이 생활로 나와 내 동생을 키워내느라,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라곤 tv 보기밖에 없는 것 같은 친정 엄마 아빠에 비하면, 시부모님은 내게 '세련됨' 그 자체였다.  


결혼 후 우리 부부를 볼 때마다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애는 언제 갖니?'라고 묻는 우리 엄마에 비하면,

세련된 시부모님은 그런 말은 함부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이 처음 마주한 상견례 자리에서도 주책맞은 우리 엄마는 아이 타령을 했고,

이에 시아버지는 '2세 계획은 두 사람이 결정하는 거죠~ 우리 신경 쓰지 말거라, 아이 안 낳아도 상관없다. 허허허' 하며 참으로 세련된 답변을 하셨다. ('나는 솔로 - 시부모 편'이 있다면 자기소개 때 저렇게 답변을 한 시아버지는 며느리들에게 몰표를 받으며 일약 스타가 됐을게 분명함!) 

순진한 예비신부였던 나는 그 말씀을 오래오래- 결혼 3년 차까지 고지 곧대로 믿었다. 


아버님 생신 기념 설악산 등반의 추억



신혼이라고 칭하기엔 애매해진 결혼 3년 차쯤. 시부모님은 처음으로 2세 계획을 물었다. 

사실 그전에도 (대뜸 주변의 임신과 출산 소식을 중요 소식인 양 꼬박꼬박 알려준다거나, 길 가다 아기들을 만나면 "저 아기 좀 봐라~ 너무 귀엽지 않니~? 응~?" 하실 때 등) 나의 세련된 시부모님도 손주를 기다리는 보통의 할아버지, 할머니 구나.. 생각하곤 있었다. 다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으실 줄은 몰랐을 뿐.


'지금의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큰 변화를 겪을 준비가 아직 안된 것 같다' - 우리는 솔직히 답변드렸고, 

이에 두 분은 '그게 얼마나 좁은 생각인지', '왜 부부에게 아이가 있어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우리로썬 이해가 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일부 있었으나, 토를 달아봤자 설명만 길어질 뿐- 돌고 돌아도 답은 정해져 있는 조언이었다.


뭐든 처음만 힘들다고 했던가. 2세에 대한 말씀은 이후 점점 잦아졌다.

답은 정해져 있기에, 우리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건 포기했다. 그저 "네 알겠습니다." 할 뿐



그렇게 시간은 어영부영 흘러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사건은 터졌다.  

당시 우리는 '이번에야 말로 전세 생활을 청산하고 내 집을 마련하겠다!' 결심해 부동산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2년 단위인 전세 재계약 때마다 집을 사려고 결심했었으니- 벌써 세 번째 다시 한 결심이었다. 

(여담이지만 지난 두 번 결심이 무산될 때마다 집값은 수억씩 올랐다. 당시 뉴스에 나오던 '벼락거지'가 바로 우리였다)


우리 부부가 5년째 집을 사려고 노력하다 무산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시아버지께서는 정말 감사하게도 '5억'이라는 큰돈을 집 사는데 보태주기로 결정했고, 덕분에 우리는 그 5억을 포함한 예산으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여담이지만 촌스러운 우리 친정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자기들은 그렇게 큰돈을 보탤 수 없어 미안해하며 5억 보다는 훨씬 적지만 이사할 때 쓰라며 모아둔 목돈을 한사코 보내줬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내 집마련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집 계약을 하기 전 우리는 큰돈을 도와주시기로 한 아버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시댁에 갔다. 

그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어쩌다 그런 비극적인 전개로 흘러갔는지 세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아버지께서는 대화 말미에 '1년 안에 손주를 보여주면 축하 선물로 5억을 주겠다'는 폭탄 발언을 하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벙쪘고, 남편은 욱했다.


남편은 갑자기 달린 조건에 당황했는지 (어리석게도)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그런 아들의 태도가 시아버지 입장에선 괘씸했을 것이다. 그렇게 5억 지원은 없던 일이 됐다.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남편을 대신해 나는

부모가 돈이 있다고 해서 자식에게 그 돈을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5억을 주든말든 그건 우리 돈이 아니라 부모님 돈이니 당연히 부모님께서 결정할 일이고,

처음 큰돈을 흔쾌히 주시려고 했던 마음 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아이를 낳길 바라는 것 또한 우리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기에 그 또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부자간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 한말이 아니라, 정말 나의 100퍼센트 진심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대화는 잘(?) 마무리 됐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일까, 혹은 시간이 꽤 지나서일까. 이제는 흐릿해진 사건이지만, 이렇게 가끔 떠올릴 때마다 마음 깊숙이서부터 아려오는 상처가 하나 있다. 

그건 시아버지의 '1년 안에 손주 낳으면..' 발언도 아니고, 손에 쥐었다 사라져 버린 '5억'도 아닌,

그날 내 곁을 지켜야만 했던 남편의 표정- 슬픈 것도 같고, 화난 것도 같았던 남편의 옆모습.. 

그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파, 수년 전 그날엔 꾹 참았던 눈물이 고인다.   


만약 내가 "네 아버님! 열심히 노력해서 1년 안에 예쁜 손주 안겨드릴게요~" 해맑게 대답했으면 우리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다가, 그래도 지금이 우리의 최선이라 자부해 본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나와 내 남편은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또 어떤 뜻밖에 사건들을 겪게 될까?
모두에게 똑같이 '당연한 건 없다'라고 생각하는 유별난 나 조차도, 사실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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