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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계 Nov 05. 2023

살아생전(生前), 혹은 생전의 의미

살아생전, 혹은 생전(生前)의 의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살아생전에’, 혹은 ‘생전에’ 무엇 무엇을 했다. 혹은 무엇 무엇을 말했다 등의 표현을 많이 쓴다. 생전이란 표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살아 있는 동안이라고 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문으로는,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 생전에 통일이 되는 것을 꼭 보고 싶다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살아-생전’에 대해서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이라고 하면서 예문으로는 ‘살아생전에 손자를 보고 싶다’, ‘살아생전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과 같은 것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자어인 生前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이라는 뜻을 나타낼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알쏭달쏭해진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자의 뜻에서 生은 살아 있음이고, 前은 앞이므로 직역하면 살아있는 앞으로 되어 태어나기 전으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보아서는 도저히 알기 어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生과 前이 가지는 깊은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生은 나무와 풀 같은 것이 땅을 뚫고 나와서 싹을 틔우는 것을 본래의 뜻으로 한다. 이 글자의 맨 아래의 부분은 땅을 나타내고, 위의 것은 가지와 싹이 나오는 모양을 나타낸다. 풀과 나무의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본뜬 것이라 하여 태어나다, 생기다, 살다, 만들다, 삶 등의 뜻을 가진다. 살아 있다는 뜻을 가지는 관계로 제사에 쓰는 희생제물을 나타내는 牲(살아 있으면서 희생제물로 쓰는 동물)과도 통해서 쓰기도 한다. 어떠게 쓰더라도 이 글자는 살아 있는, 태어나는 등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전에서도 그런 정도의 뜻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은 生과 반대되는 것이면서 生 이후를 나타내면서 살아 있는 기운이 없다는 뜻을 가진 死(죽을 사)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前은 앞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하지만, 이 말속에 담겨 있는 것이 매우 복잡하다. ‘앞’은 공간을 지칭할 때는 방위를 나타내어 앞을 나가다로 되고, 존재에 대한 것을 가리킬 때는 대면하고 있는 방향의 운동을 나타낸다. 즉 물체의 앞쪽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또한 시간을 나타낼 때는 과거, 미래를 모두 나타낸다. 이것이 사람과 결합되면 선조, 후손 등도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前은 ‘앞으로 나가다’로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즉, 배를 나타내는 舟와 사람의 발을 나타내는 止가 아래 위로 결합하여 사람이 배 위에 있으니 직접 움직이지 않고 앞으로 가다(歬)로 된다.     

그러나 前의 원래 뜻은 무엇인가를 잘라내다, 없애 버리다. 멸망시키다, 잘라내어 가지런하게 하다 등이다. 글자의 모양이 처음 나타난 갑골문에서는 舟와 止가 결합한 것이 아니라 밥이나 물 등을 담은 둥글면서 길쭉한 큰 그릇(대야 같은 것)에 발을 나타내는 止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대야에 발을 담그고 씻어서 더러운 것을 없애버리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을 본뜬 글자일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비록 배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舟는 둥글고 길쭉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왜 칼을 나타내는 刀가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저분하거나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없애 버린다는 것에 착안하여 잘라내는 것으로 발전했고, 刂가 아래 오른쪽에 가미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前은 가위로 자르다는 뜻을 가지는 剪의 본래 글자가 된다. 前이 앞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면서 잘라 내기 위해서는 힘을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 力을 아래에 넣어 자르다, 죽이다, 멸망시키다 등을 뜻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면 된다.     

이제 生前으로 돌아가 보자. 生과 前의 본래 뜻을 중심으로 이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살아 있는 것을 잘라서 없애버리는 순간이 된다. 즉 생을 잘라 버려서 목숨이 끊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의미가 바로 생전이라는 표현이 지닌 본뜻이 된다. 그때까지는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전의 뜻은 ‘살아 있는 동안’으로 된다. ‘동안’은 어느 때에서 다른 한때까지의 시간의 길이를 의미하므로 생전은 이런 뜻이 되는 것이다. 생전은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되는 것이고, 사후는 죽어서 막 시작하는 순간이 된다. 따라서 생전과 사후는 서로 다른 세계를 말하지만 떨어져 있으면서도 붙어 있는 아주 묘한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말에서 살아생전이라고 하는 말은 살아있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되는 셈이 된다. 아마도 생전이라는 표현이 매우 어려워서 이렇게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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