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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Feb 01. 2024

ep.2 : 숙소열전 1 - 처음엔 많이 당황했어요

뉴크로스역 인근 독채 아파트를 빌리다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드디어 당도한 뉴 크로스 역.

역 출구 앞에 서서 잠깐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여기 왜 이렇게 어두워?

역 바로 앞의 골목은 가로등도 없어 칠흑 같았다.

차가운 비는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지도를 열어 다시 숙소의 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머릿속에 숙지했다.

숙소는 멀지 않았다.

3, 4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


머릿속 이정표를 따라 어두운 골목 끝에 빛이 보이는 도로로 움직였다.

약간 경사진 오르막에 캐리어 가방이 힘겹게 끌려 올라왔다.

여느 길처럼 도로 양 쪽으로 가게들이 있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그곳은 다행히 역 앞 골목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그래도 런던은 내가 마음을 놓는 것을 아직 원치 않았는지 방금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슬럼

거리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더러웠다.

벽과 가게에 낙서가 잔뜩 되어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깔끔과 세련됨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곱지 않은 표정에 심술 나 보이는 사람들은 실수로라도 엮이고 싶지 않은 부류로 느껴졌다.

어쩌면 내 마음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쌓인 탓에 삐뚤어진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변명을 해 보자면) 긴 비행을 마치고 왔고, 큰 짐을 끌고 있고, 낯선 곳에서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로 돌아와 잠깐 멈췄던 움직임을 재촉했다.

차가운 거리를 따라 발걸음 속도를 올렸다.

메인 도로가의 가로등 불빛을 잠깐 맛보고 다시 어두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로 본격적인 주택가 단지로 이어지는 방향이었는데 이 골목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관리가 영 안 되어있는 보도와 땅은 이리저리 심하게 파여있었고, 이는 곧 내리는 빗물에 물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길도 어두웠기에 이 녀석들은 여기저기 퍼져있는 접경지역의 지뢰들처럼 거슬렸다.


조심조심 드디어 숙소가 있는 골목에 다다랐다.

숙소 바로 앞 길도 어둡기는 매한가지였다.

아파트 입구를 찾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전달받은 체크인 방법으로 열쇠를 찾아 무사히 방으로 갈 수 있었다.


거실 / 주방 / 침실 의 투 베이 구조


숙소의 내부는 에어비앤비에 올라와있는 사진과 같았다.

예상보다는 좁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부동산 어플들처럼 왜곡 심한 광각렌즈를 쓴 것도 아니어서 그럭저럭 참작가능한 수준이었다.

최소한 의도적으로 거짓말은 안 했군.


허나 집을 둘러보면서도 여전히 부정적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았다.

혼자 사는 독채 숙소인 만큼 간단한 식기류나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도 가능하다고 표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처참했다.


나 집에 돌아갈래 ㅠㅠ


대부분의 가전들이 사용하기 싫은 상태였다.

샤워기의 온도 조절 레버도 부러져 있어 조작이 매우 힘들었다. (다행히 적절한 온도로 설정되어 있어 크게 건드릴 일은 없었다)

냄비나 컵들에 설거지를 한동안 안 한 건가 싶은 흰 얼룩들이 있고(다음 날 안 사실이지만, 이는 아마 영국 특유의 석회가 섞인 수돗물에 의한 자국이었을 것이다), 침대 옆에서 벌레 삼 형제를 때려잡고 나서는 내가 여행을 떠나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여행 자체에 대한 회의도 잠깐 들었다.


침대 오른편 벽, 같은 위치에 같은 벌레가 일정한 시간 텀을 두고 세 번 나타났다. 인생 삼세판이라는 건가.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이 벌레는 다행히 첫날 이후에 나타나지 않았다.


벌레를 때려잡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구상태를 확인했다.

예전부터 유럽이라면 진드기, 베드버그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 샅샅이 살폈다.

다행히 매트리스나 이불, 배게는 깨끗하고 포근했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그만.

간단한 점검을 마치고 이만 쉬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힘든 몸을 뉘어 잠을 청했다.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할 때에는 잠을 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적응하기를.



좋은 아침!




그리고 역시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금방 새 환경에 적응하고 잘 살아갈 거라는 것을 말이다.

아침에 눈이 떠진 것은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 30분경.

시차 때문인지 일찍 일어났다.

샤르자였다면 아침 9시 30분인 시간.

일어날 때가 되긴 했네.


침대 옆의 블라인드로 어렴풋이 밝아지는 런던의 새벽하늘이 보였다.

어제의 부정부정한 기운은 많이 없어져 있었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집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거실로 나갔다.


새벽의 숙소



냄비에 물을 끓여 혹시나 챙겨 왔던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밝아지는 창밖 풍경에 마음이 더욱 차분해졌다.

위장에 들어온 따땃하고 익숙한 맛의 음식물이 평온을 되찾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없는 머리는 해야할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필요한 생필품을 사야 했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 것들과 가장 중요한 생수를 구매하러 나가기로 했다.

내일도 아침을 인스턴트 라면으로 해결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나는 물을 굉장히 많이 섭취하는 편이라 당장의 생명수가 필요했다.

수돗물을 마신다는 선택지는 영 선택하기 싫었다.


지금 열려있는 식료품점을 찾아 집을 나섰다.


라면 하나 먹는 사이 많이 밝아진 밖, 비포 / 애프터




숙소열전


아파트 정문의 모습



1. 위치


지도상 뉴 크로스 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역에서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블록을 한 바퀴 돌아서 가야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역에 대한 접근성은 뛰어나다.


문제는 이 뉴 크로스라는 곳이 생각보다 따뜻한 동네가 아니라는 점.

길을 걷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혹은 식당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안 좋게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꽉 잡게 된달까.


그래, 이 마저 편견일 수도 있다.

이곳에 머물며 피자, 치킨, 샌드위치 등등 완전 로컬의 허름한 가게를 주로 이용했었다.

점원들은 겉 보기에 거리의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함께 하는 데에는 별 문제 없었다.

가게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에는 서로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면, 가게를 나서는 순간은 신나서 '땡큐, 땡큐'를 외치며 나왔다.

물론 그들의 영어가 워낙 독특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던 점은 있었다.

나도 영어를 못하는데 상대도 혀 짧은 소리로 슬랭을 뱉어대니 'sorry'와 'pardon'의 연속일 수밖에.

그래도 끝내 서로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같은 블록, 바로 옆에 병원이 있었다.

그래서 밤에 간간이 사이렌 소리가 들렸던 걸까?

병원의 뒷 텃밭 같은 곳이 보기 좋았다.

지그재그로 달려있는 창문들도 있고, 건물의 색감도 그렇고 건축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바로 옆의 병원



2. 건물


4층 높이의 플랫(영국식 영어로 아파트를 플랫으로 부른다고 한다).

연식은 어느 정도 된듯하다.(어디까지나 내가 빌린 아파트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샤워 손잡이가 저렇게 되려면 몇 년 정도가 지나야 할까?)

1층 정문 앞에 잠금장치가 있는 쓰레기 배출 장소가 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지만 남자인 나에게 대형 캐리어 하나 정도를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복도는 깨끗했다.

복도 계단의 모습



3. 호스트, 숙소의 컨디션


중동계 남자 호스트였다.

아맷? 마호매드? 같은 느낌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체크인 날에 도착 시간 정도를 물어보았다.

비행기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것으로 대화는 종료되었다.


부러져있는 샤워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 메시지를 보냈더니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혹여 내게 책임을 물을까 걱정했었는데 편협한 나의 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체크아웃까지 딱히 연락할 일은 없었다.


체크아웃도 셀프로 무사히 마치고 2박 3일의 대여가 완료되었다.

서로 교환한 후기도 무난했다.



이번 에피소드 내용처럼 전반적인 집기들의 상태가 깔끔하지는 않다.

장기투숙을 계획했다면 난감했을 것 같다.



4. 인테리어


아늑한 1인가구 집이다.

혼자 산다면 적당한 면적의 공간.

아마 우리나라 평수로 환산하면 8평 정도 되려나?

패브릭 소파는 청결도가 의심되었지만 하는 수 없이 깨끗한 부분을 찾아 괜찮을 거라 자기 최면을 걸며 앉았다.

뭐든지 시작이 어렵지 이후로는 편하게 앉았다.

그래, 나는 뭐 얼마나 깨끗하다고.

다행히 이후로도 관련해서 크게 문제가 된 일은 없었다.


HET! 어느 나라 포스터지? / (관리가 안 되어 있어서 그렇지)인테리어 자체는 나쁘지 않다





5. 기타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방의 느낌이 좋았다.

은근히 코지하다






ep.2, 숙소열전 1 끝


숙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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