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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Feb 05. 2024

ep.3 동네 슈퍼와 '레드 라이언 커피'

첫 외출, 첫 쇼핑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식료품점, 그로서리 스토어는 두 곳이 있었다.

조금 먼 곳의 프랜차이즈 마트도 있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많이 걸을 기분은 아니었기에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두 가게가 몰려있었는데, 하나는 이름도 정직한 '뉴 크로스 식료품(New Cross Grocers)'.

다른 하나는 같은 블럭 끝에 위치한 '프라묵 컨비니언스 스토어(Pramukh Convenience Store)'.

둘 중 하나는 성공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경로 설정.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인 7시가 넘기를 기다렸다가 출발!

네모네모 계단을 내려가 아파트 1층의 현관문을 열었다.

어제의 어두운 골목은 어디가고 평범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덩달아 가벼워진 내 마음 때문인지 잭 더 리퍼가 튀어나올 것 같은 위협적인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멀끔한 모습의 집 앞 골목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길을 걸었다.

내 옷차림에는 조금 쌀쌀한 느낌.

골목을 나와 다시 어제의 메인 도로가로 나왔다.

아직 이른 아침인 건가?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다.

바로 이 느낌.

아침을 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느낌.

서울에서도 잘 느끼지 못하던 것을 런던에 와서 느끼니 확실히 일상에서 멀리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가 말하는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도로 아래로 전철이 다니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목적지였다.

아침부터 전철은 부지런히 사람들을 나르고 있었다.

내가 어제 타고 온 전철이 바로 저것이렸다.


한 블럭에 인접한 두 가게.

우선순위를 두었던 뉴크로스 식료품점은 문을 열지 않았다.

구글맵에는 오늘도 7시에 오픈이라고 나와있었는데!

오픈 준비 중이기는 커녕 안에 인기척도 없었다.

순 거짓말쟁이군.


다행히 옆의 프라묵 컨비니언스 스토어는 7시 오픈이라는 구글맵과의 약속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안도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흔히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편의점을 컨비니언스 스토어라 배운다.

그래서 한국의 편의점 같은 느낌을 예상했지만 이곳은 그것과 조금 다른 느낌의 매장이었다.

런던 여행을 검색하면 수 많은 후기들을 접할 수 있는 유명한 '세인즈버리'나 '테스코'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이 한국의 편의점에 가깝고, 이곳은 골목에서 보이는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이나 좀 더 작은 규모의 편의점 브랜드 같았다.


이곳 동네의 특성답게 가게의 캐셔도 아랍계열 사람으로 보였다.

하긴 프라묵이라는 이름부터 쉽게 접하기 힘든 느낌이 났다.

약간 경계하는 것 같은 직원의 눈빛을 무시하고 느긋하게 가게를 돌아 괜찮은 가격의 생수 1L 묶음과 체리맛 요거트를 구입했다.

에비앙 2리터짜리가 1.8파운드였는데, 네슬레 퓨어 1리터들이 6병 묶음이 3.6파운드로 더 저렴해서 네슬레로 결정.

요거트는 1.5파운드였다.


공중전화가 낙서와 쓰레기 투성이다. 여기 뿐만 아니라 동네 전체가 이렇다 / 지금은 망했는지 지도에서 사라진 프라묵 컨비니언스 스토어


간단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룰루랄라 요거트를 냉장고에 넣으려고 하는데 달갑지 않은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요거트의 유통기한이 며칠 지나있었다는 것.

물론 꼼꼼히 안 살피고 구매한 나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재고 관리가 엉망이네!

순간적으로 밤 사이 많이 가라앉았던 부정 에너지가 불쑥 솟아오르려는 느낌을 받았다.

흠, 어쩐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 교환이나 환불을 받기에는 너무 귀찮고 험한 길처럼 보였다.


요거트가 진열되어 있던 냉장고가 시원히 잘 작동하고 있던 것에 희망을 걸고 개봉해 보았다.

다행히 크게 이상이 없어 보였다!

원래는 내일 아침메뉴였지만 이렇게 된 거 빨리 해치우고 싶어져서 오늘 아침식사로 계획 변경.

솔직히 맛은 훌륭했고, 탈도 나지 않았다.


아니 이건 좀... 그래도 맛은 좋았다.


네슬레 사의 생수는 무난히 합격이었다.

물맛이 깨끗하고 목에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러웠다.

벌컥벌컥 들이켜고 본격적인 외출 준비를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나를 이 뉴 크로스에 묵게 만든 카페, '레드 라이언 커피(Red lion coffee)'이다.

뉴 크로스에는 오버그라운드와 국철 역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뉴 크로스'역이고, 하나는 여기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뉴 크로스 게이트(New Cross Gate)'역이다.

카페는 바로 뉴 크로스 게이트 역 근처에 있다.


우리 동네 뉴 크로스 역 인근, 마커 표시 된 곳은 내가 방문한 곳이다.

 

카페로의 가장 빠른 길은 숙소 남쪽의 도로가를 따라 아침에 들렀던 슈퍼마켓을 지나는 것이었지만, 나는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여행 방식이다.

이 런던 구석의 평범한 마을에 엄청난 관광 포인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충분히 걸으면서 동네를 발견하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평범한 것도 적어도 한 순간만큼은 아름다운 모습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어제밤의 비 때문일까.

조금은 젖어있는 마을을 걸었다.

여전히 깔끔하다고는 못할 동네였지만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니 내 눈의 긍정 필터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역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니 역 방향으로 전철을 타려는 사람들의 행렬을 역주행했다.

어느 도시건 아침의 역 주변 풍경은 비슷하다.

전철을 타고 도심으로 나가려는 사람들과 부지런한 주말 아침 산책 인파가 섞여있었다.


한 지붕 아래 두 집이 좌우를 나눠 쓰는 구조의 주택
우리나라의 주말농장을 떠올리게 하는 주민들의 텃밭
작은 근린공원
앗! 야생의 도마뱀이 나타났다? / 신이 나서 다가가 보니 장난감 악어였다.


머리에 넣었던 지도를 더듬어 가는 것이 조금 부정확했던지 마을을 조금 헤맸다.

작년부터 기억력이 감퇴되는 기분이 든다.

젊은 나이에 치매의 위기감을 느낀다는 것은 조금 서글프다.

조심해야겠다.

어쨌든 조금 헤맨 덕분에 원래 루트라면 볼 수 없었던 장소를 조금 더 볼 수 있었다.


(아마도)폐성당과 동네의 작은 교회
두들리 패거리가 나타날 것 같은 다리 밑


마침내 바른 길을 찾았다.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구글맵을 켰기 때문.

지도를 다시 보고 방향을 수정했다.

금방 '포덤 공원'이 보였다.


근방에서 가장 큰 녹지로 보이는 이곳은 주말을 맞아 유소년 축구 교실들이 열리고 있었다.

여러 그룹으로 진행되는 이런 축구 교실은 앞으로도 런던 여기저기를 다니며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역시나 축구 종가라는 것인가.

축구에 대한 열기가 남달라 보였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룹 수업을 듣지 않고 공원 구석에서 홀로 연습 중인 친구. 이 아이에겐 어떠한 사정이 있었을까?
유소년 축구 교실이 한창
포덤 공원의 전경
moonshot
앞 녀석은 상당한 말썽꾸러기임이 틀림없다.
new cross inn






드디어 레드 라이언 커피에 도착했다.

실제로 와 본 소감은.

'매우 훌륭하다'였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결코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높은 층고에 적절한 인테리어로 계속 오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공간이었다.

이 좁은 공간을 거의 메우고 있는 현지의 손님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런던 여행을 온 사람이 이런 동네까지 올 확률은 적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깔아두었다. 이에 이곳의 95%가 로컬들이라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1.5층에는 베이킹 공간과 간단한 굿즈가 진열되어 있는(+화장실) 공간이었고, 아래의 1층은 카운터와 테이블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 커피만 마시기는 아쉬워 크루아상을 하나 함께 주문했다.

롱 블랙 한 잔과 크루아상 하나가 5.1파운드.

주문 받는 점원도 인상과 태도가 좋았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직원들은 모두 나긋나긋하고 친절했다.


레드 라이언 커피는 런던에 현재 총 3개의 지점이 있었다.

세 곳 정도라면 모두 가 볼 수 있겠는걸?

이번 체류동안 세 곳을 모두 마스터해 보자는 나만의 작은 도전과제를 만들었다.


좋은 토요일 오전을 만들어준 카페에 감사하며 카페 사진들과 함께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자리에서 보는 카운터와 1.5층 공간
주말 오전을 즐기는 손님 한가득
높은 층고에 모빌이 자리하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에 사용된 표시일까 어떤 아이의 키를 잰 표시일까.
양이 부족할 것 같지만 우선은 내 점심
카페 내부 벽
간간히 매장을 밝게 채우는 그의 웃음소리
1.5층에서 보는 매장 내부
느낌 있는 매장의 아이콘들. 둘 사이가 제법 좋아 보인다.
굿즈들





ep.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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