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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Feb 08. 2024

ep.4 테이트 모던

영국 모던 아트를 쉽게, 그러나 대단하게 즐기고 싶다면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집 돌아가는 길에 만난 자전거 아저씨
뉴 크로스의 틈새


레드 라이언 커피를 나와 잠깐 집에 들렀다.

동네를 벗어나 도심으로 멀리 들어가기 전에 가방을 조금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플랫에 출입하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

전자 도어락 방식이 아닌 잠금장치도 처음엔 영 익숙지 않다 싶었지만 이제는 척척 열었다.

오래되어 잘 돌아가지 않는 열쇠를 돌리는 데에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다.


잠깐의 정비를 마치고 다시 집을 나왔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 뉴 크로스를 조금 더 볼 수 있었다.

아까와 달리 차들과 버스들이 다니는 메인 도로가를 걸었다.

가게들, 사람들, 차들.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눈이 이리저리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틈에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피자집과 치킨집을 눈여겨봐 두었다.


뉴 크로스 거리의 풍경. 아시아 음식점과 중동의 음식점이 심심찮게 보인다.
Think big... Eat greek!!!


2파운드 피자집과 7파운드 패스트푸드 밀박스


구글맵이 알려주는 경로대로 움직여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구글맵으로 경로를 찾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를 느꼈다.

신뢰도가 상당히 높았다.


길을 건너 도착한 이곳은 제법 많은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정류장.

노선이 많은 만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조금 있었다.

나는 21번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곳 옆에 바로 대학교로 보이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골드스미스?

당연히 들어봤을 리 없는 학교지만 호기심이 동해 일단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다.

나중에 한 번 구경 가봐야지.


런던의 버스 정류장은 이렇게 생겼다.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알리는 전광판 시스템은 꽤 믿을만하다.
골드스미스 대학의 부속건물


나를 도심까지 안내할 버스에 탑승했다.

이번 여행 내 비장의 무기 트레블월렛 카드는 무사히 버스요금을 계산했다.

1층에도 빈자리들이 여럿 보였지만, 당연히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런던 하면 2층 버스, 2층 버스 하면 런던이지 않나!

그 아이코닉한 빨간색 2층 버스에 이번 여행 처음으로 오른다!


버스 대부분의 좌석들은 모두 2층에 있다.

물론 1층에도 꽤나 앉을 좌석들이 있지만, 넓은 공간을 유모차나 휠체어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메인 객석은 2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감상은 이 버스는 상당히 높다는 것.

밖에서 봐도 상당히 높지만 실제로 2층에 올라가면 시선의 높이가 차원이 다르다.

마치 키 190cm 이상의 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간접 체험하는 느낌이랄까.

혹은, 다른 승용차들을 내려다보는 덤프트럭 기사의 시선이라던지.

2층 좌석에 앉아서 옆의 창문을 보면 버스 정류장의 지붕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래서 인류 역사상 왕들의 자리가 신하들을 내려다볼 수 있게 높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new routemaster, 뭔가 했더니 신형 버스의 코드네임인듯하다 / 버스 2층 내부 모습
Please open window, 창문을 열 수 있다 / 2층의 높이는 생각보다 높다


'유니언 스트리트' 정류장에 내렸다.

뉴 크로스에서 유니언 스트리트로 가까워질수록 거리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은 완벽한 런던 도심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

오래된 건물들과 새로운 건물들의 조화.

길을 걸으면 계속해서 현대적인 빌딩들이 줄 지어 나타나고, 느낌 있는 가게들과 마켓들이 사람들을 품고 있다. 

방금 내가 있던 곳과 정말 같은 도시인지 의심이 갈 정도.


도시에 막 도착한 시골쥐처럼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고 움직이기로 했다.

여기서 테이트 모던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런던 시내 구경을 하며 총총 걸어갔다.


런던 도심, 곰돌이 패딩턴도 보인다.
트렌디한 푸드 마켓. 입구에는 시큐리티 가이도 서 있다.
상당히 도시도시 하다.


드디어 영접한 테이트 모던은 매우 거대했다.

영국은 퇴역한 탬즈 강변의 화력 발전소를 엄청난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래서 특유의 독특한 내부 구조가 나올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조금 더 다가갔다.

가까워진 상태로 올려다보는 테이트 모던은 더욱 탄성을 짓게 했다.

높이가 엄청나다!

나중에 내부에 들어가서 즐기게 되는 공간은 더욱 어마어마했다.

런던에 오기를 잘했다고 느껴버린 순간.

옳은 선택이었던 거야!


광각으로 보는 테이트 모던. 실제로는 더욱 거대하다.
특별전이 한창이다.
Tate modern, 런던의 빌딩들은 서울의 것들보다 훨씬 다채롭다.


이 엄청난 테이트 모던으로의 입장을 앞두고,

결국 크루아상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던지 내 위는 미술관 관람 전에 에너지 보충을 할 것을 요구했다.

마침 눈앞에 들어온 테이트 모던 앞의 '레옹' 매장.

레옹을 쉽게 설명하자면 '웰빙'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매장은 런던 도심에, 그것도 테이트 모던이라는 트렌디한 명소 앞에 있는 만큼 매장 규모와 인테리어가 매우 훌륭했다.


Leon. 목이 좋아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다.
안에서 보는 테이트 모던 앞의 풍경
런던의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키오스크 주문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부족한 양이었지만 빵을 먹고 오기는 했으므로 과하게 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선택.

바로 Black bean 비빔밥.

건강 비빔 컵밥 느낌으로 후루룩 먹고 나왔다.

나도 모르게 짜장밥의 맛을 기대하면서 주문했지만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맛이었다.

맛은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하면서 구수한 맛.

자극적이지 않지만 자꾸 먹고 싶은 맛이었다.

양은 사진처럼 많지 않아서 지금 나의 상황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


간이 과하지 않고 은근한 매력이 있었다.



허기를 잠재운 다음 드디어 테이트 모던 내부에 입성했다.

입구 오른편에 바로 아트샵이 나를 맞이해 준다.

본디 관람을 끝내고 나가는 길에 들르는 것이 옳은 순서인가 고민했지만,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갔다.

볼 것이 다양했다.

현재와 과거의 특별전 굿즈들, 미술 서적들, 일반 서적들 등등 휘황찬란했다.


드디어 입장한다.
아트샵
사진책자가 마음을 빼앗는다.
영국의 자랑, 호크니 굿즈


아트 샵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 지하로 내려갈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아직까지 이 건축물의 구조가 머릿속에 담기지 않았다.

일단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도 전시실이 있다면, 맨 아래에서부터 출발하여 위쪽 방향으로 테이트 모던을 완벽히 점령하는 동선을 그려보았기 때문.


지하부터 벌서 현대 미술들이 잔뜩이었다.

감탄을 하며 이리저리 카메라와 마음속에 담았다.

샤르자에서 본 현대 미술들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요즘 현대 미술가들은 영상 매체로, 비디오로 작품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영상의 주제는 오래된 역사부터 현대의 사회문제까지 다양했다.

예술가들은 음향, 음악, 미술, 연출, 구도, 스토리 등의 집합인 종합예술품 영화처럼, 짧거나 긴 영상에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간혹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모호하고 애매해야 현대예술이겠거니 하고 넘어가자.)


건물 개요도


지하에 내려가서야 이 거대한 건물의 구조를 직접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들어온 입구와 아트샵은 건물의 B 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건너편 N 동으로 지하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 

물론 유일한 연결 통로는 아니고 그 위로도 또 다른 연결통로인 하늘다리가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비어있는 곳은 천장까지 텅 비어있는 아트리움 형태로도 볼 수 있는데, 그 높이가 어마어마해서 대단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공동의 한 부분에는 천장에서 아래까지 거대한 흰 천을 걸어두었다.

나는 늘 예술에는 규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오고 있다.

내가 말하는 예술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소, 건축, 군무 등도 포함이다.

크고, 많으면 본능적인 압도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로스코의 작품도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보다가 큰 캔버스에 담긴 작품을 영접한다면 작품이 뿜어내는 위용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천장에서 아래로 흘러져 내려오는 저 흰 천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저 높은 천장 쪽 부분은 다 보이지도 않는다.

저 천들도 누군가의 작품이겠지?

찾아보면 작품의 이름과 작가가 적혀있는 명판이 있을 것 같았지만 찾아보지는 않았다.


저 아래를 보면 펜스로 구분된 공간 안에서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미술 프로그램도 열리고 있다.
거대한 공간감이 잘 전달되기를...


미술관은 겉보기만 큰 것이 아니라 각 층의 갤러리도 역시나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갤러리는 많은 인파에도 층고가 높고 넓은 공간에 작품들 사이의 간격이 좁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없었다.

작품의 큐레이션도 잘 되어 있다.

상설 전시 외에 진행 중인 특별 전시들.

그중 하나인 '쿠사마 야요이' 전시는 유료지만 이미 오늘의 입장표가 모두 매진되어 있었다.


사진과 회화작품뿐만 아니라 설치미술까지도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대형 박물관, 미술관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하는 멋진 관내 카페도 잘 준비되어 있었다.

손님들이 가득 차 있어 커피를 사더라도 마실 자리가 없다.

붐비는 사람들을 비집고 테라스로 나가면 탬즈강변의 모습도 즐길 수 있다.


한강에 비하면 폭이 좁은 탬즈강
Coffee by tate


다른 시설로는 테이트 멤버스 바와 레스토랑도 있다.

멋진 건축물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나로서는 구경을 안 가볼 수가 없다.

잠깐 들어가 구경을 해보았다.


테이트 멤버스 바. 멤버가 되면 이런 관내시설 이용권한 외에도 특별전 티켓 예매에도 어드밴티지가 있는 듯하다.


테이트 모던의 폐관시간은 저녁 6시.

지하에서부터 싹 다 훑어보리라는 계획은 결국 실패였다.

오늘 전부 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절망할 필요는 없었다.

또 오면 되니까.

이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이번 체류에서 최소 세 번은 방문할 거라는 직감이 왔다.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있다.

다음에 오늘 못 본 곳을 다 섭렵하리라.


방대한 규모에 지친 다리를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6시가 되자 직원들의 안내와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인파를 보니 폐관시간까지 남아있던 관람객들의 수도 어마어마했나 보다.

파도에 떠밀려 가는 콜라병처럼 인파에 쓸려 밖으로 나왔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버스를 타기 전에 밀딜로 내일 아침을 미리 구매해 가기로 결정.

아침에 불의의 사고로 미리 먹어버린 체리 요거트를 대체할 것을 찾아야 한다.

주변 마트를 찾아 걸어갔다.



어딜 가던지 열심히 구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며 마트에 도착.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밀딜 매대를 발견했다.

내 식음 예산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녀석, 밀딜.

3.9파운드라는 감동적인 가격에 감동적인 구성.


러나 더욱 감동적인 것을 발견했다.

이곳 런던에서는 유통기한 임박 식품의 경우 가격 인하, 즉 떨이 판매를 파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1파운드 대에 한 끼 뚝딱 가능한 샌드위치를 구매했다.

내일 간단한 아침으로 제격이었다.


앞으로 애용하게 될 밀딜 매대
앞으로 더 애용하게 될 Reduced 제품들, 사진의 Korean style은 전혀 Korean style이 아니었다.



즐거운 쇼핑을 마치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아까 이용했었던 유니언 스트리트 정류장을 다시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도 동일한 21번 버스를 탈 예정.

정류장으로 가며 나의 시선으로 본 런던의 일부를 공유한다.


건축 사무소의 쇼윈도
Love Not Hate
Hayward gallery
이제 집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뉴 크로스로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 아까 오늘의 저녁으로 점찍어둔 7인치 피자를 구매했다.

7인치라면 손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

양이 많은 사람은 두 판을 사거나 10인치대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참고하시길.


가게에는 아랍계 직원들이 잔뜩 있었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좌우로 좁은 가게에 홀은 작았고, 주방이 길게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다들 비슷하게 보여서 형제들이랑 운영 중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도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

계산을 안 했는데 계산을 했다고 착각한 아랍계 직원은 내게 피자를 건네주며 잘 가라고 했다.

3초 정도의 짧은 순간에 엄청난 내적갈등이 일어났다.

그냥 가? 말아?

하지만 이 싸움의 승자는 내 양심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직 계산을 안 했다고 실토했다.

스무스하게 결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잘 선택했어.


맛은 역시나 무난한 피자 맛.

피자라는 메뉴에는 실패가 없다.

어제 한 번 해봤다고 조금 익숙해진 샤워를 끝내고 런던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앙증맞은 사이즈




ep.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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