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한진 Mar 07. 2024

ep.9 숙소열전 2 - 맥신의 러브하우스

집 주인과 함께 지내는 첫 번째 에어비앤비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이삿길에 오르기 전에 호스트인 맥신에게 에어비앤비 메신저로 도착 시간을 알려줬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거래가 대다수인 에어비앤비라서일까, 호스트와 게스트의 소통에 중요한 메신저 기능도 나름 탄탄했다.)

그녀의 알겠다는 답변과 함께 자신이 뭔가 바쁜 일이 있으니 체크인 하기로 한 시간에 되도록 늦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시간 약속을 지켜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재차 지각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느낌에 혹시나 너무 까칠하거나 깐깐한 성격의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밤에 내가 복도를 살금살금 걷는 소리도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사람이라면? 화장실 세면대를 이용하고 물들을 모조리 닦고 검사 받으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아침인사 대신 어젯밤에 내가 코고는 소리 때문에 못 잤다고 짜증을 낸다면?(물론 나는 보통 코를 골지 않는다.)

과거에도 몇 번의 에어비앤비 경험이 있었지만, 호스트와 함께 지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잔뜩 긴장했다.

어쩌면 런던에서의 첫 숙소가 안겨준 초반의 불안감과 그것의 잔해가 조금 남아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늦지 않기 위해 열심히 캐리어를 끌며 걸었다.

분전에 대한 보람이 있게 다행히 약속 시간에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후, 다행히 지각은 피했구만.

첫날부터 호스트와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교회 맞은 편에 핑크색 문이 눈에 띄었다.

저긴가?

주소와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건물에 붙은 명패의 번지수도 일치했다.


바깥의 낮은 검정색 철문을 열고 그녀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마침 위층에서 들리기 시작한 개 짖는 소리.

나 때문일까?

그래도 아랑곳않고 문 앞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즉각적인 응답은 없었다.

차분히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내가 기대한 호스트의 반응 대신 위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만 점점 더 커졌다.

그러다 마침내 덜컥.

창문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호스트 맥신의 얼굴이 창밖으로 튀어나왔다.

뭔가 정신없어 보이는 얼굴, 그러나 굉장히 친근한 인상의 중년여성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달링."


"오, 오케이."


나야 급한 건 없었기에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달링'이라니.

언젠가 영화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부르는 장면을 본 것 같았다.

뭔가 중년의 여성 캐릭터가 직장 후배동료들을 그렇게 불렀었던가?


잠시 후 우당탕탕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내 두 번째 호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형광색의 운동복 차림이었다.

과거 유행한 에어로빅 비디오에서 방금 튀어나왔다해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인사와 함께 사실 지금 요가 클래스에 가야 하는 시간이라 체크인에 늦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복장이 이해되었다.

4, 50대로 보이는 맥신의 첫인상은 불안감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더욱이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푸근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 좀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숙소생활에 대해 설명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들리는 맹렬히 짖어대는 개소리.

아까부터 들리던 개소리의 주인이 바로 너로구나!

바로 그녀의 강아지, '보스(Boss)'였다.


Boss, the awesome maltese


녀석은 아직 낯선 사람인 나를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환영하는 건지 열심히 짖어대며 맥신의 설명을 방해했다.

그래서 맥신은 집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조용히 하라고 호통을 쳐야했다. (물론 호통은 그닥 효과가 없었다.)

보스의 방해에도 그녀는 설명을 무사히 마무리 하고는 급히 요가 클래스로  떠났다.

조금 정신없는 체크인 과정이었지만 필요한 것은 모두 들었다.

그녀 덕분에 '왓츠앱(What's app)'도 설치해야 했다.

에어비앤비 메신저보다 유럽의 카톡인 왓츠앱을 더 선호한다고 하니 따를 수 밖에.


나는 짐 정리를 하면서 이 집에 보스 녀석과 단 둘이 남겨지게 되었다.


주인이 사라지자마자 태도가 돌변하여 내게 친한 척 하는 녀석




숙소열전



1. 위치


성 존스 교회 맞은 편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성 존스 국철 역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로 역세권이라 할 수 있겠다.

버스만 타고 다녀서 역을 이용한 적은 없지만 2존에 위치해 전철 생활을 하기에도 좋아 보인다.


'브로클리(Brockley)'나 '루이셤(Lewisham)'에 가까운 곳.

이곳 동네는 이 전에 머물렀던 뉴 크로스 역인근과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게들과 술집이 몰려있는 뉴 크로스 쪽보다 주거용 택지들이 대부분.

그만큼 편의점이나 상점, 식당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거리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첫 번째 숙소보다 마음의 안정감이 드는 곳이랄까.

상업시설이 필요할 때도 뉴 크로스나 루이셤 인근으로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라 주거에 나쁘지 않은 위치라 생각했다.

원래 상업시설과 멀어질수록 거리가 깨끗해 지는 것일까?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아도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주민들 생활에 불편하지 않게끔, 가게나 펍이 한 블럭에 하나 정도의 밀도로 분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늦은 밤의 경우에는 나를 상당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빛이 부족해 주변이 극도로 어둡고 사람도 적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는 했다.

괜히 긴장하게 된달까.

과거 잭 더 리퍼가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 배경으로 꽤나 어우러진다.

가끔씩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면 두 주먹과 다리에 잔뜩 긴장을 넣으면서 지나가게 된다.

여차하면 도망치거나 대응을 해야하니까.



조용한 주택가. 대신에 퇴근시간이 지난 밤에는 엄청나게 어둡고 조용해진다.



2. 건물


위 사진과 같은 형태의 3층짜리 주택.

맥신은 2층과 3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1층과 반지하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단 한번도 거주자를 마주친 적은 없었다.)

부동산의 소유 형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집 주인은 따로 있고 각 층 거주자들이 임대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맥신이 건물주이고 아랫층 사람에게 임대를 내어주고 있는지, 혹은 반대인지.

그녀에게 물어볼 걸 그랬다.


핑크색 현관문을 열면 바로 1층 집으로 들어가는 문과 좁고 길쭉한 계단이 2층 맥신의 집으로 이어져있다.

복도가 매우 좁고 계단은 가팔라 대형 캐리어를 옮기는 데에 편하지는 않은 환경.

목제 계단으로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삐걱삐걱 소리가 재미있다.

언제쯤 지어진 건물인지도 물어볼 걸 그랬다.


2층의 구성은 넓은 거실과 부엌/식당 그리고 3층으로 가는 계단 옆에 있는 2.5층의 작은 화장실 1개.

3층에는 메인 욕실 1개와 방 3개가 있다.

방은 마스터 베드룸 하나와 작은 방 두 개가 있는데, 맥신은 방 3 개를 모두 침실로 꾸며 모든 방을 에어비앤비로 활용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침실을 모두 임대 주고 맥신 본인은 2층의 거실 공간에서 지낸다는 것인데, 당연히 가장 넓은 마스터 베드룸을 주인이 사용하는 줄 알았건만 2층 거실의 소파베드가 밤에는 맥신의 침대로 변신을 한다.


당연히 건물내에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없다.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직접 캐리어를 3층 게스트 룸으로 옮겨야 한다.


창문도 한국인이라면 상당히 생소한 방식.

슬라이딩 방식인데 그 슬라이딩의 방향이 위아래 방향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스타일.

손잡이를 잡고 창문을 위로 올린다.

올라간 창문을 고정시키는 걸쇠가 따로 없기 때문에, 창문의 무게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아래로 떨어져 닫히거나 깨지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도 창틀이 굉장히 뻑뻑해서 그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뻑뻑한 만큼 창문을 여는 것에도 힘이 상당히 든다.



3. 호스트


뭔가 전형적인 시트콤에 하나 정도는 꼭 등장할 것 같은 전형적인 캐릭터의 맥신.

다정하고, 말 많고, 먹을 것을 좋아하며, 절친과 함께 운동을 가는 영국의 중년 싱글 여성이다.

결혼을 했었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여기에 살게 되었는지 등의 그녀의 과거사는 듣지도 묻지도 않았기에 그녀의 화려한 과거사는 온전히 내 상상력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녀는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점.


첫 번째 숙소를 떠나며 느꼈던 약간의 아쉬움도 맥신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자마자 모조리 사라졌다.

첫 숙소에서 보낸 3박을 여기에서 보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으니까.


밤에 나를 불러 쥐어준 그녀의 '동안의 비밀' 마스크팩 / 가득가득 들어찬 냉장고


그리고 이 집이 사랑스러웠던 이유 하나는 바로 '집에 먹을 것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먹을 것에 진심이라는 그녀의 식당 테이블에는 늘 간식거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감자칩, 초콜릿,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일.

특히 커다란 보울에 여러 종류의 과자들이 부어져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한 줌씩 집어 먹기에 딱이었다.

평소 군것질을 하지 않는 나지만 먹잘알 맥신의 신들린 과자 셀렉션에 나도 모르게 보울을 동내고 있었다.

너무 자주 부엌을 들락거린 탓에 과자 보울이 바닥을 보인다면 과자 봉투를 찾아 티 나지 않게 리필해 놓자.

서양인들의 통통한 체형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가.

식당을 지날 때마다 과자로 향하는 내 손을 억제하느라 힘들었다.


※막간 영어 교실 by Maxine : 서양인들에게 사랑받는 감자칩의 미국식 영어는 chips, 영국식 영어는 crisps라고 한다.


조식포함 옵션의 숙소인데, 조식은 알아서 부엌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어 먹는 방식이었다.

냉장고 뿐만아니라 찬장에도 먹을 것들이 많았다.

싱크대 옆의 조리테이블 위도 물론이다.

게스트들의 아침을 위한 빵들과 시리얼 트레이는 주방 한 구석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주로 개별포장 되어있는 공산품 크루아상을 베이스로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커피 머신도 네스프레소 버츄오 모델로 함께 구비된 캡슐이 가득하다.

내가 체크인하기 며칠 전에 새로 구매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맥신은 식비 절약을 위해 샌드위치나 빵쪼가리를 먹고 다니는 나에게 숙박 옵션에 포함되지 않은 저녁 간식들을 제공해 주었다.

한 번은 직접 구워 만든 베이글 칩, 어떤 날은 한식을 만들어 준다며 만들었던 떡볶이(빨간색 양념의 떡볶이었지만, 고추장이 아닌 토마토 베이스로 만들어진 떡볶이었다) 등등.


저녁을 대충 먹고 들어온 나를 위해 준비한 맥신의 간식, 라즈베리 잼과 베이글칩, 방울 토마토
어제 먹다 남은 라즈베리 잼과 바나나를 하나 꺼내어 만들어 본 아침 식사
문제의 과자 보울 / 아침을 만들어 볼까?
하루는 리코타 치즈와 방울 토마토를 이용해보았다.




4. 인테리어, 숙소의 컨디션


특이점 없는 평범한 가정집.

이라고 함부로 평가하기엔 내가 본 가정집의 모수가 작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다 끝내고 돌아봐도 불편한 점 없는 훌륭한 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깨끗한 편.

화장실 마저 깨끗하다.

2.5층의 작은 화장실에도 작은 샤워부스가 있어 간단히 샤워가 가능하고, 3층의 메인 욕실에는 욕조도 있어 반신욕도 가능하다.

세면대와 변기, 욕조 등의 욕실도기들이 디자인틱해 집을 꾸미는 데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메인 욕실


청결 외에도 숙소 컨디션은 굉장히 잘 관리되어 있다.

여성 호스트라 그런걸까 주인이 함께 사는 곳이라 그런걸까.

확실히 첫 숙소와는 관리의 결이 달랐다.

게스트가 바뀔 때마다 청소부가 와서 청소를 하고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내가 체크아웃 하는 날에 내 방을 청소하는 청소부를 만날 수 있었다.

청소부는 젊고 친절한 흑인 여성이었는데, 맥신과 서로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보여 함께 일한 것이 완전 최근은 아닌 모양.


내가 이용한 침실도 침구부터 가구들까지 모두 청결했다.

침대도 푹신해서 푹 잘 수 있었다.

추울 때를 대비해서 여분의 담요도 비치되어 있었는데 사용한 적은 없었다.


방에 구급상자나 물병, 커피포트, 커피, 티백, 간단한 간식들 모든 것이 구비되어있다.

원하면 방 밖으로 많이 안 나갈 수 있을 정도.

그러나 나는 맥신의 보물창고인 주방을 더 애용했다.



내가 지낼 동안 방 3개에 모두 손님들이 있었다.

나와 함께 숙소를 공유한 다른 투숙객들은 가장 큰 침실의 인도인 회사원, 그리고 두 번째 큰 방의 한국인 여학생, 그리고 가장 작은 방의 나.

나를 빼고 두 명은 모두 장기 투숙 중.

지내다 보니 나도 장기 투숙 하고 싶어지는 곳이라 납득이 되었다.



5. 기타


이 집의 알파이자 오메가, 강아지 보스.

Boss, the awesome maltese.

이름 그대로 어썸하다.


고양이와의 동거 경험은 나름 몇 년 되지만 개와 살아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지내는 며칠간 개의 매력이 푹 빠져버렸다.


문을 닫고 쉬고 있으면 짧은 다리로 계단을 도도도도 올라오는 소리에 이어 내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나는 문을 살포시 연다.

녀석은 문틈으로 고개를 밀어 문을 열며 들어온다.

침대에 발을 올리며 나도 침대에 올려달라고 의사표현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녀석을 들어올려 침대로 올려준다.

그럼 내 옆에 붙어 자리를 잡고 눕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의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와 이 집의 못다 푼 사진들은 따로 또 사진집으로 정리하겠다.


만져도 되겠니?
침대 위로 올려달라고?
원하신다면!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강아지용 간식 봉지. 맥신 몰래 하나를 주니 후다닥 숨어서 먹는다. 안 뺏어먹어 이녀석아!



ep.9, 숙소열전 2 끝

이전 16화 ep.8 뎁포드 역, 그리고 첫 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