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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Feb 29. 2024

ep.8 뎁포드 역, 그리고 첫 이사

'Mouse tail coffee'에서의 모닝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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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다 보면 호스트가 이런 식으로 여행 정보를 비치한 곳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첫 번째 숙소로 체크인 할 때 식탁 위에서 발견한 파일철 하나.

짐을 풀고 파일철을 열어 보니 집과 시설에 대한 설명과 체크인 방법, 인근 로컬 추천 가게들 등이 있었다.

그대로 덮어두고 있다 문득 파일철에 대한 생각이 났다.

오늘은 아침 시간을 보낼 카페를 이 리스트에서 하나 골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 아파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기도 했으니 주인장의 추천 가게를 찾아가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세 가지 옵션 중에서 선택된 곳은 바로 'Mouse Tail Coffee'.

'Bread and Butter'나 'Mughead Coffee'도 이름이 제법 귀여웠지만 아쉽게도 우승에는 실패했다.

물론 최종 선택의 결과가 이러했던 것에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왠지, 조금 더, 눈꼽만큼 더 끌리는 선택을 했을 뿐.

그나저나 Red lion에 이은 Mouse tail이라... 나 어쩌면 동물 애호가였을지도?


숙수로부터 최단거리는 500미터. 그러나 실제로 걸음했을 때 대충 머릿속에 나만의 경로를 그리며갔다가 막힌 길을 만나버렸다. 지도에는 뚫려있는 길이었다 해도 하소연 할 곳은 없다.


카페는 인근 '뎁포드(Deptford)' 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뎁포드 역은 국철 역으로 지하철 역과는 아이콘이 조금 다르다.

그래도 튜브와 동일하게 트레블월렛 카드나 런던 교통카드로 탑승 가능하니 참고.


지금 되돌아보면 세 가지 옵션중에서 카페를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카페가 아니었다면 저런 역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숙소에서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아침 산책도 겸할 수 있었다. 


맑다. 그러나 공기는 여전히 쌀쌀한 런던의 아침


오늘도 아침부터 푸르른 날씨.

4월의 런던은 날씨가 한 달에 절반 가까이는 비라고 하는데, 도착날 예방주사를 단단히 맞았는지 아직까지는 맑은 날의 연속이었다.

싸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종종걸음으로 뎁포드 역에 도착했다.


뎁포드 역의 마켓구역
카페, 레스토랑 등 식음업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느낌의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있다.


역 인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예상외의 모습을 마주했다.

뉴 크로스 역같이 칙칙하고 위험해 보이는 공간을 상상했었는데, 뎁포드 역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거나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기획되어 만들어졌는지 깔끔하고 팬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벽돌로 지어진 모습은 서울 근교의 아울렛들을 떠올리게 했다.

'Deptford Market Yard'

머리 위에 달린 조명들을 보면 야경도 귀엽고 따뜻할 것 같은 느낌.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 들을 보면 이벤트성으로 작은 파티도 열리기도 하나 보다.

심지어 야외 스테이지도 작게 있는 것을 보니 크지는 않아도 마을의 종합 문화 공간 역할을 기대하고 만든 걸까.

기획에 비해 실제로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오늘 하루만 방문할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기자기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Mouse Tail Coffee
좌측 사진의 우측하단에 보이는 검정 두 보온 디스펜서가 Batch 손님을 위한 것이다. / Batch 로 커피를 받아 마신 컵



그리고 뎁포드 역 아래에서 목적지인 마우스 테일 커피를 발견했다.

카페는 다른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좁고 긴 형태의 공간으로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나오면서 보았던 다른 가게들처럼 마냥 좁지도 않았다.

알뜰히 들어찬 구조물들과 사람들은 로컬의 카페라는 친근한 느낌을 주기에 적합했다.

80% 정도의 자리에 이미 주인이 있었다.

정말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카페일지도?

마침 혼자 후다닥 마시고 가기에 좋은 바 형태의 자리가 있어 나도 얼른 둥지를 틀었다.


쌀쌀한 아침 기온을 뚫고 온 터라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블랙커피를 주문하려다 'Batch'라는 메뉴가 동일한 가격으로 있어 어떤 놈인지 직원에게 정체를 물어보았다.

마찬가지로 블랙커피이지만 카운터에 있는 거대한 보온 디스펜서에서 직접 받아먹는 커피라고 했다.

블랙커피와 정확히 무슨 차이가 있기에 메뉴판의 서로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까지는 이해 못 했지만, 신기해 보이므로 우선 batch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검은색 커피 컵을 받았고, 주문 시에 안내받은 대로 디스펜서에서 커피를 뽑았다.

내가 batch 메뉴 이행을 옳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직원도 그런 나를 보고 말리지 않으니 다행히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개의 디스펜서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원두로 내려진 커피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모닝커피를 즐겼다.

왼쪽 것을 골랐는지 오른쪽 것을 골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엇을 골랐든 나는 만족했을 것이다.


커피가 식을 때 쯤 잔이 비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이만 자리를 정리했다.

혹시 무한 리필 개념이었나?

용기를 내어 릴필을 해볼 걸 그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마지막 기념 사진을 남겨본다. // 안녕, 내 첫 숙소!


이제 이사를 할 시간이다.

처음에는 내게 무거운 마음의 짐을 선사한 곳이었지만 며칠 밤을 보내면서 적당히 친숙해진 공간.

그 무게에 짓눌렸던 마음도 이제 한결 가벼워 지려던 차에 이별이라니.

인생이란 늘 아쉬움이 따르는 법.

아마 죽는 순간에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겠지.

짐 정리를 마치고 다시 올 일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다음 숙소까지는 약 20분을 걸어서 가는 거리.

구글맵 검색을 해보니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어째 총 소요시간은 걷는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걸어서 간다!

오늘 날씨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걸을 수 있는 거리는 걸어도 좋았다.


큰 캐리어를 끌고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간다고 생각하니 잊고 있었던 범죄에 대한 긴장감이 상기되었다.

뭐, 문제없지.

괜히 강한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캐리어도 그런 나를 따라 덜컹덜컹 어딘가 강한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KFC가 아닌 LFC다. 다행히 저 가게는 어제의 가게와 달리 유리창이 무사하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
폐기물 종류에 따라 쓰레기통이 다르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거침없이 헤쳐나가며 목적지를 향해 다가갔다.

또 다른 국철역 '성 존스(St. john's)'역을 지나면...


성 존스 교회 맞은편에 나의 두 번째 숙소, 맥신의 러브하우스가 나타난다. 


성 존스 역과 뒤로 보이는 교회
맥신의 집. 문의 색깔마저 러블리하다.




ep. 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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