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 칸에 책상 달랑 하나 내어서 아이들에게 수학,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것도 1:1로만 만났다. 학원이나 공부방을 운영할 정도의 공간도 시간도 내겐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뇌졸중으로 누워 계신 엄마가 계신 방에서 적당한 상을 하나 펴놓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다.) 곁에서 엄마를 돌볼 수 있었으니 좋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또한 좋았다.그렇게 나의 평생 업이 시작되었다.
엄만 침대에 누워 계시고 그 침대 아래방바닥에 상을 폈다. 어느 땐 엄마의 대소변을 아이들이 있을 때 봐드려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나의 학생들은 모두 날 믿고 잘 따라주었다. 선생님도 학생도 서로의 사정을 봐주면서 공부하는 미덕이 있었다.
선생님이 타주는 커피가 먹고 싶다고 지나가다가 불쑥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모습이 이뻤다.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공부가 어려운 아이도 나를 잘 따라주었다. 누나가 배우고 동생을 데려오기도 하고 친구 따라오기도 하고 쌍둥이가 같이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난 절대 두 명도 같은 시간에 몰아서 시간표를 짜지 않았다. 무조건 한 아이에게 맞춤교육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신조였다. 온전히 그 시간은 그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나의 수업 방식이다. 결혼 후에는 돈을 좀 더 벌고 싶은 욕심에 다른 시도를 해 본 적도 있었지만 원래 방식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한 아이가 피해 보는 상황을 난 눈 감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요즘은 여기저기 학원이 이 좁은 동네에도 들어찼다. 어느 학원은 정기적인 테스트를 통해 성적 미달로 학생을자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런 학원에서 잘린 아이가 오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공부가 힘든 아이들과의 만남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처음 과외를 시작하던 때는 공부를 좀 하는 소수의 아이들이 과외를 했었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학원 안 다니는 아이가 더 드문 세상이 되었다.) 그 많은 아이들이 같은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몰아서 같은 속도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그래서 윤정이가 돈을 못 버는 거야~"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난 내 방식을 고집할 것이다.
여느 학원 선생님들처럼 모든 아이들에게 "너도 100점 맞을 수 있어~!"
"너도노력하면 1등급 맞을 수 있어~!"라고 말을 하진 못한다. 나 스스로가 그건 불가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마다 능력의 한계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번에 알아차리는 아이, 두세 번은 반복해야 하는 아이, 열 번을 해도 모르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능력치가 어디까지인지는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 한계치까지 노력해 보자는 것이 나의 지도 원칙이다.
시도조차 해볼 수 없을 만큼 시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난 도움을 주고 싶다. 이렇게 한 번 한 걸음씩 나아가 보자고.. 나의 방향키대로 한번 따라와 보라고... 그러다 보면 한계라고 느꼈던 부분이 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결과물도 좋지만 과정 속에서도 충분히 자신감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일 테다.
한 달 전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아이가 지금 내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공부가 힘든 아이, 기초가 부족한 아이, 하지만 잘해보고 싶은 욕구가 분명한 아이다. 수업 시간에 졸리면 세수하고 오는 노력을 보여주는 아이다. 그 아이에게 성취감을 맛 보여주고 싶다. 작은 것부터 이루어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처음 우리 집에 들어설 때보다 표정이 좋아지고 있다. 낯선 장소에 익숙해지는 과정도 있겠지만 난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