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마다 막내 동서가 기름세트를 선물로 주곤 했다. 이번 명절에도 "형님 기름 좋으시죠?" 하기에 기름은 당연히 환영이라고 답을 했다. 이럴땐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보다 환영의 뜻을 표하는 것이 선물을 하는. 입장에서 훨씬 기분 좋을 것 같아 나 나름대로 고심하여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추석 명절을 보내러 시댁으로 향했다.
선물이란 것이 특성상 반복되다 보면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매번 때가 되면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라고 말이다. 사람 맘이란 것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오던 선물이 안 오면 서운한 맘도 살짝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나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시댁에 도착하자 우리 보다 먼저 와있던 동서가 나를 동서 방으로 살짝 부른다. '아... 기름 주려고 그러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근데 이것저것 들어 있는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 꺼내고서는 내게 그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꺼내어 건네준다. 핸드크림 두 개, 화이트닝 크림 하나, 미역귀 한 봉지, 욕실에서 쓰는 분무형 세제까지 들어있었다.
형님.. 이거요~
이거요~
이거요~
"어머나 뭘 이렇게나 많이 줘~~"
일단 고마움을 환한 얼굴로 표현하고 돌아 나오는데 생각났다. 혹시 가져왔는데 여러가지 챙기느라 깜빡했을까봐 물었다.
"근데 기름은?"
"아, 형님.. 이번에는 기름을 못 샀어요~"
아.. 그랬다. 순간 나만 아는 민망함이 밀려왔다.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난 몇 년 전부터 동서가 건네는 명절 기름 선물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동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나온 거를 내게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난 직장생활을 안해서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 회사에서 선물이 나온거를 되팔기도 한다는 뉴스를 본적도 있고...암튼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잘 왕래가 없는 우리 시댁 분위기에서 나를 위해 일부러 선물을 준비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당연하듯 받아 들었던 선물이 진짜'선물'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혼자 느끼는 이 민망함을 어쩔 것인가!
동서 덕분에 '미역귀'란 것을 다 먹어보게 되었다. 처음 접하게 된 식품이라해도 요즘은 상관없다. 손안의 컴퓨터에게 물어보면 되니까.요녀석은 모르는 것도 없다. 검색해 보고 미역국에 넣어서 끓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뒤 미역국을 끓이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러곤 잊고 있다가 갑자기 오늘 생각이 나서 동서에게 톡을 보냈다.
마음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 특히 이렇게 '의도와 상관없이' 가족으로 엮인 사이에선 더욱 필요한 것이다. 동서들과 내가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관계를 맺는 사이까지 발전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적당한 거리에서 예의를 갖춰야 하는 어려운 사이다. 각자의 남편들로 이어진 비의도적인 관계. 그래도 잘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시댁에서 겪는 어려움을 가끔 내게 상의하는 동서에게 난 대하기 편안한 형님이고 싶다.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소함이 쌓여 커다란 무게로 남게 되는 사람이고 싶다.